지리산 ‘꽃스님’이 말하는 ‘불교는 왜 힙한가’

김영화 기자 2024. 5. 16.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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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엄사 범정 스님의 또 다른 이름은 ‘꽃스님’이다. 인스타그램 계정(@kkotsnim)의 팔로어는 3만2000명이 넘는다. 부처님 법향을 전하는 ‘꽃다운 수행자’가 되고 싶어 스스로 붙인 별명인데, 수려한 외모로 ‘꽃미남 스님’의 준말인지 자주 질문받는다. 그가 소속된 화엄사의 사찰 탐방 프로그램 ‘화야몽’이 접수 4시간 만에 마감되는가 하면, 최근 방송인 홍석천씨가 유튜브 ‘홍석천의 보석함’에 꼭 초대하고 싶은 인물로 그를 언급하기도 했다. 2024 서울국제불교박람회 홍보대사였던 범정 스님과 4월23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힙해지는 불교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꽃스님’으로 유명한 범정 스님은 힙해지는 불교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연합뉴스

SNS 포교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나?

승려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 보니 내가 당장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없겠더라.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에는 오지 말아야 할 존재처럼 여겨지지 않나. 조금씩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스님은 이런 사람이구나’ 부담 없이 다가가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선택했다. 그걸 불교에서는 ‘방편’이라 부른다. 불법(佛法)을 전하는 데 방향만 같다면 어떤 도구든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집착만 안 하면 된다.

법명 대신 ‘꽃스님’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남이 뭐라 하든 내 갈 길을 가야겠다고 여겼다. 그런 저를 두고 처음엔 스님들이 걱정을 많이 하다가 지금은 “스님 같은 분이 더 나와서 불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더라. 저를 통해 꼭 불자가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불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다.

불교계에 어쩌다 변화의 바람이 불었나.

젊은 세대들은 ‘굳이 종교를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크다. 사실 그런 생각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책을 읽으면 삶에 보탬이 된다고 하지 않나. 내가 생각하는 종교의 입지도 그 정도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 불교를 하나의 선택지로 둘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민이 불교계에 있어왔다. 특히 조계종의 어른 스님들께서 ‘그래 우리 한번 변화해보자’며 크게 마음을 내주셨다. 그 덕분에 불교계 안에서도 여러 변화가 생겼고 그 정점을 찍은 게 이번 불교박람회였다.

불교가 포용적인 종교라는 인식이 커졌다.

불교는 보자기 같은 종교다. 어떤 것이든 불교라는 천으로 감싸면 그 안에 뭐가 있든 포용할 수 있다. 이번 불교박람회에서 ‘불교를 믿으면 이런 게 좋다’고 홍보하는 부스는 하나도 없었다. 그 대신 ‘우리는 이런 거 합니다’ 보여줄 뿐이었다. 불교계의 변화를 알리는 장이었지, 신자 수를 늘리거나 포교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다른 종교와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의 권유로 10대에 출가해 화엄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15세에 절에 들어왔다. 학교 다녀야 하는데 새벽 예배도 해야 하고 3~4시에 일어나야 하고, 밥도 정해진 시간에만 먹어야 한다. 밖에 나가서 이런 거 하면 된다, 안 된다는 계율도 얼마나 많던지(웃음). 그런게 힘들었는데 매년 수행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선지지범개차(善知持犯開遮)’라는 구절이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계율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19세 때 처음 그 말을 들었는데 속이 뻥 뚫렸다. 갑갑했던 불교가 더 이상 갑갑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승려가 된 저에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불교박람회 강연 주제가 ‘힙한 불교’였다. 불교는 왜 힙한가?

10년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힙하다’밖에 없더라. 한때 〈쇼미더머니〉를 즐겨 봤는데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었다. 승려의 삶도 사실 비슷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공부하기 위해 속세를 떠난 사람들이다. 성직자라는 단어가 썩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승려에게는 ‘수행자’라는 단어가 붙지 않나.

2030 세대에게 불교의 어떤 가르침을 주로 전하나?

삶과 죽음, 사후 세계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종교만이 가능한 영역이다. 지금 삶에 집착하지 않고,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으며, 순간에 집중하는 것. 한 번쯤 일상을 살면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순간이 언제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을 때, 무난한 하루하루를 보낼 때. 그 순간이 불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의 행복이다. 우리는 이미 궁극의 행복을 느끼고 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작은 것에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불교의 역할 아닐까.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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