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반도체·脫원전·재생에너지… 대만은 지금 ‘세 마리 토끼’ 노리고 있다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4. 5. 16. 00: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계 첨단 칩의 90% 만드는 TSMC
대만 전체 전력 소비량의 7% 차지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는 와중에
2025년까지 원전 완전히 퇴출 예정
대만 서부의 하이롱 풍력단지. /사진=대만 경제부 웹사이트

한때 대만은 우리에게 잊힌 나라였다. 하지만 최근 화려하게 국제 무대에 복귀하고 있다. TSMC가 대표하는 대만의 최첨단 파운드리 반도체 산업 때문이다. 2018년 본격화된 미중 무역 분쟁과 이후 이어진 공급망 갈등 속에서 현대 산업의 핵심적 반도체 상당량을 대만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을 많은 국가가 인식하게 되었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 갈등이 날카로워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으로서는 최첨단 칩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대만 반도체 산업은 중국과 갈등을 불사하고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중국의 끊임없는 군사적 위협을 받던 대만으로서는 TSMC를 비롯한 반도체 산업은 말 그대로 국가를 구원하는 실리콘 방패인 셈이다.

반도체 산업은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다. 실리콘 용해, 고출력 레이저 노광, 진공 형성 및 유지, 세정 등 생산 공정 전반에 걸쳐 막대한 전력이 든다. 2021년을 기준으로 TSMC가 사용한 전력량은 191억kWh로서 대만 전체 전력 소비량의 7.2%에 이르렀으며, 2025년에는 12.5%로 증가할 전망이다. 최첨단 반도체 제작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가 이전 세대 장비보다 전력이 10배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만이 반도체 산업을 유지하려면 고품질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그래픽=김하경

대만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97%를 해상 운송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체 전력 생산의 80% 이상을 석탄 및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이용한 화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다. 외부의 에너지 공급이 차단되면 즉각적으로 전체 산업이 중단되는 취약한 구조인 것이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만은 11일분의 천연가스와 39일분의 석탄만을 보유하고 있는데 중국의 해상 봉쇄 가능성을 고려할 때 대만의 에너지 안보는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이런 경우 원자력발전은 효과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소량 우라늄으로 전력을 안정적으로 대량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만은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발전 비율이 계속 낮아져 2022년에는 8.34%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2025년에는 원자력발전이 중단될 예정이다. 원자력발전의 감소분을 메우기 위해서는 대규모 천연가스 저장 시설 등의 건립이 필요하지만 이 역시 환경 단체의 반발 등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대만은 2017년 8월 15일 대형 LNG 발전소로 향하는 천연가스 공급 장치 고장으로 인한 가동 중단과 전력망의 연쇄 작용으로 대만 전체의 64%가 정전을 겪었는데 원전 비율 하락에 따라 전력 예비율이 10% 미만으로 낮아진 점이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하였다.

원전 퇴출에 따른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만 정부는 풍력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재생에너지 증설에 기대를 걸고 있다. 2022년 대만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 중립 로드맵’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비율을 2025년까지 20%로 확대하고 2050년에는 최대 6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1년 재생에너지 비율이 6% 미만이었던 것을 고려해보면 매우 야심 찬 계획임을 알 수 있다. 대만 정부가 이런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은 대만해협을 중심으로 한 대만 인근 해상이 풍력발전에 유리한 얕은 수심과 강한 풍속 등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첫 번째 해상 풍력 단지인 포모사1 가동으로 시작된 대만의 해상 풍력 시설 용량은 2025년 5.6GW를 거쳐 2035년까지 총 20GW에 도달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대만 정부는 재생에너지개발법을 통해 해상 풍력으로 생산된 전력을 20년간 고정 가격으로 구매하도록 함으로써 수익성을 보장해 주어 세계 최대 풍력 기업인 덴마크의 오스테드를 비롯한 많은 해외 개발사를 유치하였다. 태양광 역시 육상 및 수상 태양광발전소 확대에 나서면서 현재 11GW 수준에서 2025년 20GW, 2050년 80GW 규모로 증가시킨다는 계획이다.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시설 용량이더라도 가동률에 따라 실제 전력 생산량은 차이가 난다. 해상 풍력 시설의 가동률을 30% 수준으로 가정할 경우 20GW의 시설 용량은 실제 발전량으로 따져보면 1.4GW 원자력 발전소 7기의 전력 생산과 비슷한 수준이다. 대만의 재생에너지 확충 정책은 TSMC의 RE100 계획 달성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2023년 9월 TSMC가 RE100 달성 목표를 2050년에서 2040년으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한 데에는 대규모 해상 풍력 시설에서 안정적으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만은 첨단 산업 발전과 탈원전 그리고 재생에너지 확충이라는 세 토끼를 모두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살펴보면 여러 가지 위협 요인도 있다. 대만은 지난 3월 전력 요금을 평균 11% 인상하였는데, 대규모 사업장은 25% 인상하였다. TSMC 측은 25%의 전력 요금 인상은 큰 부담이 안 된다고 밝혔지만 향후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지속적 상승이 이루어질 경우 부담이 가중될 것은 분명하다. 또한 건설되고 있는 대형 해상 풍력 시설 대부분이 중국과 마주 보고 있는 대만해협에 밀집되어 있어 유사시 안보적 측면에서 취약하다는 지적도 미국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 육성과 재생에너지 확충의 길을 걷고 있는 대만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가 참조할 만한 좋은 사례다. 2000년대 초반까지 대만과 우리나라는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하며 치열하게 경쟁해 왔다. 이제 재생에너지를 통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반도체 산업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다시 대만을 유심히 바라볼 때가 되었다.

풍력 발전 유리한 얕은 수심·강한 바람… 원전 없는 나라 가능할까

대만의 원전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 대만 최남단의 마안산 1,2호기가 대만에 남아있는 최후의 원자력발전소다. 2025년 5월 17일 원전 가동이 중단되면 대만은 원전이 없는 나라가 된다. 강력한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한때 대만은 원자력 강국이었다. 1985년에 대만은 원자력발전소 6기를 통해 전체 전력의 51.7%를 생산했다. 1973년 오일 쇼크에 큰 충격을 받은 대만의 국민당 정부가 10년 만에 원자력발전소 6기를 건설하는 속도전을 벌인 결과였다.

하지만 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대만 원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난초섬에 1980년 비밀리에 건설했다는 사실이 1987년 드러나면서 원전 반대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1986년 출범한 신생 정당이던 민진당(DPP)은 원전 반대 운동을 주도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얻기 시작했고 2000년 처음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민진당은 당시 진행 중이던 원자력발전소 건립을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모든 것을 바꿔놓은 것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였다. 대규모 반핵 시위에 직면한 대만 정부는 2014년 완공 직전이던 룽먼 원전 건설을 중단시켰다. 2016년 총통 선거에서 ‘핵 없는 조국’을 내걸고 승리한 민진당은 전기사업법을 개정하여 40년의 설계 수명이 끝나는 원전에 대해 수명 연장 없이 가동을 중단하여 2025년까지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하였다. 거침없던 탈원전 움직임은 2018년 11월 24일 국민투표에서 역풍을 맞기도 했지만 2024년 1월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이 다시 승리하면서 1977년 시작된 대만의 원전 역사는 48년 만인 2025년 막을 내리게 되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