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조각 양배추에서 中 ‘알테쉬’까지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2024. 5. 1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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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작황 부진으로 가격이 급등한 양배추가 진열돼 있다. 기상 여건 탓에 일부 채소류 가격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양배추는 포기당 4862원으로 한 달 새 25.4% 올랐다. 이는 1년 전, 평년 가격과 비교해 각각 28.1%, 32.2% 비싸다./뉴스1

변명 같겠지만, 최근에는 좀체 틈이 나지 않아 마트에 장을 보러 가지 못했다. 종종 부모님이 고향에서 키우신 야채와 반찬을 보내주셨기에 크게 모자람을 느끼지 못했던 탓이지만, 그마저도 바닥이 나 요 며칠 배달시켜 먹거나 대충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일상이었다. 금요일 퇴근길이 되어서야 빈 냉장고를 떠올리곤 주말의 나를 구하기 위해 급히 휴대폰으로 장을 보기 시작했다. 배달 앱으로 식재료를 주문하면 한 시간 안에 집 앞까지 배달이 오니, 마트를 갈 수 없을 때 애용하고 있다. 앱에서 5만원어치를 주문하면 배달료가 무료이기에 매번 금액을 맞추려 노력한다. 예전에 배달료 3000원을 아끼자고 필요도 없는 2만원짜리 프라이팬을 사놓곤 마침 필요했다며 자기 최면을 건 적이 있음은 비밀이다. 대수롭지 않게 최소 금액을 맞추고 배달시켰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집 앞으로 배달 온 봉투를 슬쩍 들어보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묘하게 이전보다 봉투가 가볍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봉투 속을 들여다본다. 특별히 비싼 걸 시킨 것도 아닌데 봉투 안에 든 게 5만원어치라 하기엔 조금 억울한 수준이었다. 삼겹살 조금, 당근 한 봉, 오이 한 봉, 버섯, 두부, 제로 콜라…. 뭐가 문제였을까?

양배추가 문제였다. 혼자 사는 처지에 양배추 한 통을 사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보니 보통 조각 낸 걸 사는 편이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크기를 확인하고 살 수 있으니 큰 무리가 없었는데 앱으로 주문할 때는 무게만 보고는 크기 짐작이 어려워 평소 구입하는 가격대의 조각 양배추를 주문했다. 그런데 정말로 주먹보다 조금 큰 수준, 과장해서 피자 한 조각 같은 크기의 양배추가 배달되었다. 내가 제대로 살피지 않고 주문한 잘못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번엔 물가가 문제였다. 같은 가격에 평소의 반의 반 크기도 되지 않는 한입거리 양배추밖에 살 수 없다니.

내 손으로 장을 본 지 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물가에 감이 떨어졌다는 게 조금 충격적이었다. 평소와 비슷한 금액만큼 주문했는데도 봉지가 예전보다 훨씬 작아진 것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스스로 조금 한심했다. 점심 식대가 1년 사이 훌쩍 늘어난 것도, 급할 때 이용하는 출근길 택시비가 적게는 2000원에서 많게는 3000원까지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도, 매달 이용하는 구독 서비스 요금이 모두 조금씩 올라갔다는 것도, 한순간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도대체 내가 신경 쓰지 못한 사이 내 통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비로소 온통 물가 이야기로 난리였던 뉴스들을 떠올렸다. 대충 알고는 있었어도 내 손으로 장을 보지 않으니 와 닿지 않아 못 본 체하고 있었던 소식들이었다. 고물가 뉴스와 함께 보이는 소식은 국내에서 중국 쇼핑 사이트 이용률이 굉장한 수치로 오르고 있다는 기사였다.

처음 중국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했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는 8년 전으로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을 때였다. 장비를 구입해야 하는데 한 달에 겨우 120만원 남짓 벌어 월세며 뭐며 떼고 나면 장비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았다. 그때 지인에게 중국 사이트를 통해 구입하면 한국에서 사는 것의 3분의 1 가까이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때 내게는 장비의 품질보다는 일단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 인지가 가장 중요했기에,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다른 옵션은 없었다. 유일한 선택지였다.

많은 사람이 알리나 테무, 쉬인 등 중국 쇼핑 사이트의 성장 속도에만 집중한다. 또 어떤 이는 중국발 제품으로 인한 환경 문제나, 개인 정보 도용을 문제 삼아 소비자를 지적한다. 문제는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값싼 물건을 찾는 것이 선택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면 이 문제는 다르게 읽힐 수 있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직장인들의 푸념은 이제는 웃어넘길 수준을 넘어섰다. 중국 쇼핑 사이트가 잘나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으니까. 결국 내릴 줄 모르고 오르는 물가와 떼어놓고 볼 수가 없다.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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