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22] ‘웅대한 이상’을 찾아서

장유정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원장·대중음악사학자 2024. 5. 1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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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실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세상에 알려지기도 한다. 우연히 또는 운명처럼. ‘웅대한 이상’도 그랬다. 처음 접하는 노래라 제목만으로는 어떤 노래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세월의 풍파를 묵묵히 견뎌낸 이 음반을 눈 맑고 귀 밝은 소장자가 처음 틀었을 때 저도 모르게 감탄이 새어 나왔으리라. ‘황성옛터’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황성의 적(跡)’ 곡조가 흘러나올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황성의 적’과 곡조가 같은 ‘웅대한 이상’은 전수린이 노래한 ‘광야(曠野)의 비(悲)’와 함께 유성기 음반에 실려 있다. 1931년 11월부터 한 달 정도 음반 광고를 한 것으로 보아 이 음반을 발매한 ‘디어레코드’는 설립하자마자 이내 사라진 듯하다. 여기서 36종의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현재 남아 전하는 음반은 고작 두세 장뿐이다. 그중 ‘웅대한 이상’이 실린 음반은 대중음악사에서 매우 희귀한 걸로 기록할 만하다.

‘웅대한 이상’을 부른 가수는 음반 표지에 한자로 ‘申佳羅悧娥’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바로 신카나리아다. 1932년에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이 빅타 음반 회사에서 발매되었고 같은 해에 윤백단의 ‘황성의 적’이 태평 음반 회사에서 발표되었으며, 1933년에는 같은 곡조를 사용한 이경설의 ‘고성의 밤’이 포리돌 음반 회사에서 나왔다. 또한 ‘황성의 적’ 곡조를 사용한 임생원의 ‘회상’이 1932년 태평 음반 회사에서 발매되었다가 1935년 ‘야명조’로 제목만 바뀐 채 기린레코드사에서 발표되었다. 같은 곡조를 사용한 노래가 1930년대만 여러 번 세상에 나올 정도로 인기가 있었는데, 이 중 ‘웅대한 이상’이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다.

당시 디어레코드는 ‘전기 취입’이라는 획기적인 녹음 방식을 도입하여 ‘품질 백 퍼센트’의 음반이라 광고하였지만 지금 상태로는 ‘웅대한 이상’의 음질이 좋지 않아 노랫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기 어렵다. 다만 “청춘은 꽃이다 인간 꽃이다 누구라 반기어 맞지 않으리”와 “보아라 들어라 유사 이래로 영웅과 태평은 이때였었다”라는 일부 노랫말을 통해 웅대한 이상을 품은 청춘을 예찬하는 노래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다행히도 ‘서울의 젊은이와 대중가요’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웅대한 이상’의 실물을 만날 수 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지만” 지나 보면 안다. 젊다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거라는 걸 말이다. BTS의 ‘For Youth’의 노랫말처럼 달리고 넘어지고 일으켜 주고 쓰러지다가도 몇 번이든 일어나는 게 청춘 아니겠는가. 웅대한 이상을 품지 않아도 좋다. 그저 찬란히 지금 여기서 빛나시길! 청신한 청년의 얼굴을 한 오월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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