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조차문(弔車文)

남궁창성 2024. 5. 1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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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랜 친구를 떠나보냈다.

주인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신도시에서 낯선 광화문까지 친구를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그렇게 주인의 호주머니 사정도 살피는 배려심이 남다른 친구였다.

이제 자네의 은택으로 무탈했던 친구가 영전에 잔을 올리니 기쁘게 받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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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랜 친구를 떠나보냈다. 사람이 아니다. 17년 넘게 안전하고 편안한 나의 두 발이 되어주었던 차군(車君)이다.

이틀 전 아침 노쇠한 몸을 견인차에 맡기고 머리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폐차장으로 향했다. 큰 차에 매달려 저만치 골목을 돌아 나가는데 뒷모습이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하다 이내 사라져 갔다. 인간의 별리와 다르지 않았다. 차군은 잦은 방전으로 한 달 가까이 주차장을 지켜야 했다. 그동안 벚나무는 연분홍 꽃대궐을 이뤘지만 그는 봄비를 그대로 맞아가며 생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2002년생인 그는 2007년 1월31일 나에게 왔다. 22년 동안 무려 19만2046㎞를 달렸다. 지구를 다섯 바퀴 가까이 헐떡이며 쉼없이 뛰었다. 주인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신도시에서 낯선 광화문까지 친구를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한동안 청와대를 오갈 때는 경찰관들의 거수 경례를 받는 호사도 누렸다. 하지만 여름 휴가차 찾아갔던 바닷가에서는 주인의 무지와 게으름 탓에 거동을 못하는 심부전도 겪어야 했다.

차군의 주인 섬김은 지극했다. 17년 동안 그 흔한 접촉사고 한번 없었다. 주인의 운전 솜씨가 형편없이 서툴러도, 밤길 낯선 도로에서도, 비포장 산길에서도 항상 안전하고 편안했다. 그는 체질적으로 튼튼했다. 잔병치레 없이 늘 건강했다. 그렇게 주인의 호주머니 사정도 살피는 배려심이 남다른 친구였다.

나 역시 차군을 각별히 생각해 늘 벗으로 여겼다. 운전에 앞서 “안녕하신가. 잘 부탁하네”라고 인사를 잊지 않았다. 늦은 밤 장거리 운전을 마친 후에는 “고생하셨네”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주말 외부일정이 없는 금요일 오후에는 “지난 한 주 고생했네. 푹 쉬시게~.”하면서 우정을 이어갔다.

오호! 애재(嗚呼 哀哉)라. 더 말해 무엇하리오. 그대는 평생 안전으로 벗과 동행했으니 덕(德)과 선(善)이 넘쳐 내세는 생명을 얻어 환생하리라. 이제 자네의 은택으로 무탈했던 친구가 영전에 잔을 올리니 기쁘게 받으시게. 흠향(歆饗).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명경대 #조차문 #견인차 #폐차장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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