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울 집값은?…여성·노비도 집 있었다

이정은 2024. 5. 1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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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서울에 내 집 마련하는 일, 예나 지금이나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집값이 폭등하는 등 서울살이는 만만치 않았는데요.

300년간 이어진 조선 시대 부동산 거래 기록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추적해 봤습니다.

이정은 기잡니다.

[리포트]

조선 후기 작성된 낡은 종이, 1631년 복란이란 이름의 여성이 효생이란 사람에게 집을 팔며 쓴 계약서입니다.

매매가는 쌀 60섬 가격인 은화 150냥.

나이 들어 자식이 없고 병들어 생계를 위해 집을 팔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습니다.

집을 산 효생의 신분은 '노비'였습니다.

노비 효생은 4년 뒤 이 집을 은화 150냥에 되팔았습니다.

여성도, 노비도 경제 활동이 가능했다는 얘기입니다.

효령대군 후손이 소유했던 종로의 21칸짜리 기와집.

1724년, 은화 300냥, 동전 600냥이던 집값은 서서히 오르다가 1800년대 후반에는 동전 2만 8000냥까지 치솟았습니다.

100년 간 안정적이던 집값이 수십 년 사이 40배 넘게 뛴 겁니다.

구한말 화폐 교란과 잦은 외세 침략으로 인한 물가 상승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거래를 위해서는 지장이나 도장 대신 이렇게 손 모양을 그려 넣었고,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계약서를 이어 붙여 양도됐습니다.

이 미나리 밭 계약서는 150년 동안의 거래 이력이 12미터 길이에 달할 정도입니다.

[송철호/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이력이 쭉 200, 300년까지 이어져서 남아 있는 문서들은 사실 많지가 않아요. 당시 사람들의 어떤 그런 생활 모습, 경제 활동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는 데에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번에 책으로 발간한 조선 후기 한성 중부와 동부 자료에 이어, 새롭게 발굴한 나머지 자료 2백여 점도 조만간 공개할 예정입니다.

KBS 뉴스 이정은입니다.

촬영기자:홍병국/영상편집:김형기/그래픽:박미주/자료제공: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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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 (279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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