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첫목회’ 밤샘 토론 “공정·상식 무너지는데 우린 비겁하게 침묵”

김승재 기자 2024. 5. 1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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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의 원외(院外) 소장파가 중심이 된 ‘첫목회’ 회원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연구원 앞에서 22대 총선을 평가하고 국민의힘의 활로를 모색하는 밤샘 토론을 한 뒤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곽관용(경기 남양주을), 서정현(경기 안산을), 박상수(인천 서구갑), 이재영(서울 강동을), 이승환(서울 중랑을) 당협위원장, 김은희(21대 비례대표) 의원, 한정민(경기 화성을), 류제화(세종갑) 당협위원장./뉴스1

14일 밤 8시 30·40대 남녀 10여 명이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 회의실에 모였다. 국민의힘의 원외(院外) 소장파가 중심이 된 ‘첫목회’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오늘은 밤을 새울 각오”라며 자리를 잡고 수첩과 노트북, 태블릿PC 등을 책상에 풀어놓았다. 김재섭(서울 도봉갑) 당협위원장이 20분 정도 늦게 회의장에 도착하자 한 참석자가 “육아 때문에 바쁜가 봐”라며 인사를 건넸다. 김 위원장은 옅은 미소만 짓고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김 위원장은 첫목회 회원 20여 명 중 유일하게 22대 총선에서 당선됐지만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첫목회 회원들은 이날 22대 총선을 평가하고 국민의힘의 활로를 모색하는 14시간 마라톤 밤샘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 4·10 총선 때 국민의힘에 험지로 꼽히는 서울 강북 등 수도권 지역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들은 밤샘 토론을 마치고 15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공정과 상식을 복원하는 게 살길”이란 결론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집권했지만, 이런 가치가 지난 2년간 퇴색하면서 국민의힘이 총선 참패에 이르렀다는 반성이었다.

이들은 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참패한 원인부터 진단했다. 밤샘 토론을 통해 추린 패인(敗因)은 5가지. ‘이태원 참사에서 비친 공감 부재의 정치’ ‘연판장 사태로 비친 분열의 정치’ ‘강서 보궐선거로 비친 아집의 정치’ ‘입틀막으로 비친 불통의 정치’ ‘호주대사 임명으로 비친 회피의 정치’였다. 이들은 토론 후 언론 브리핑에서 “국민이 바랐던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정부는 부응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무기력했으며 우리는 침묵했다”면서 “우리의 비겁함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보수 정치의 재건을 위해 용기 있게 행동하겠다”고 했다.

첫목회 회원들은 토론을 시작할 때만 해도 국민의힘 혁신을 위한 새로운 강령을 만들어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밤이 깊도록 회의는 공전했다. 한 회원은 “여권의 현 상황이 실타래처럼 얽힌 탓인지 혁신 방향을 두고도 의견이 갈렸다”고 했다. 그러다 김병민(서울 광진갑) 당협위원장이 “결국 (현 정부에서) ‘공정과 상식’이 깨져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 아니냐”고 했고, 대다수 회원이 이에 동의했다. 국민의힘이 탄핵으로 실권(失權)한 지 5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동력이 됐던 윤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 가치가 퇴색했다는 데 진단이 일치한 것이다.

국민의힘의 원외(院外) 소장파가 중심이 된 ‘첫목회’ 회원들이 14일 밤 서울 종로구의 한 회의실에서 22대 총선을 평가하고 국민의힘의 활로를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기흥(인천 연수을), 정우성(경기 평택을) 당협위원장, 김은희(21대 비례대표) 의원, 곽관용(경기 남양주을), 박상수(인천 서구갑), 이재영(서울 강동을), 김병민(서울 광진갑), 이승환(서울 중랑을), 류제화(세종갑), 서정현(경기 안산을), 한정민(경기 화성을) 당협위원장./첫목회 제공

비공개 토론에선 이런 진단을 뒷받침하는 사례도 거론됐다고 한다. ‘김건희 여사 관련 이슈’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잼버리 사태’ ‘해병대원 사망 사고’ ‘호주대사 임명’ 등 30여 개나 됐다고 회원들은 전했다. 첫목회 회원들은 토론 후 발표한 입장문에도 “오늘을 우리가 알고 있던 공정이 돌아오고,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 돌아오는 날로 만들겠다”는 문장을 담았다. 윤 대통령이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때 했던 말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야권 인사인 설주완 변호사가 나와 국민의힘 총선 패배 원인도 진단했다. 새로운미래 당원인 설 변호사는 “이번 선거는 ‘정권심판론’이란 광풍이 뒤덮은 선거”라며 “국민의힘에서 수도권 전략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내세운 것과 관련해서는 “잘못된 공격 무기였다”고 했다. 일부 첫목회 회원들이 “왜 조국혁신당이 선전했다고 보느냐”고 집중적으로 묻자, 몇몇 회원은 “조국혁신당 인사들과 대화해보니 합리적인 사람도 있더라” “조국혁신당 공보물이 세련됐더라”고 거들었다. 한 회원은 통화에서 “우리의 심판 대상이던 조국혁신당의 돌풍 이유를 규명하는 작업은 계속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첫목회 회원들은 국민의힘 재집권 방안도 논의하고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박상수(인천 서구갑) 당협위원장은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는 인간 고유의 본성인 출산을 포기할 정도로 절망에 빠져 있다”며 “그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회의 사다리를 파격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국민의힘의 전략적 대안으로 “과다 대표된 조직화한 소수보다, 소외된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할 정치 세력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첫목회 회원들은 15일 아침 밤샘 토론회를 마치고 인근 국밥집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논의를 이어갔다. 이 자리에서 몇몇 회원은 “총선 패인을 너무 강조하면 오히려 내부 갈등을 키우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 22대 총선 당선자 108명이 원내에서 제대로 싸우려면 선거에 떨어진 우리가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입장문을 발표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첫목회 간사인 이재영(서울 강동을) 당협위원장은 “첫목회는 앞으로 보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치열한 노선 투쟁을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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