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작은 불상

기자 2024. 5. 1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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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축하 현수막을 내건다거나 연등을 하나쯤 밝힌 교회당이 있다. 과거 내가 시골 교회에 목사로 부임해 주변 절집 스님들과 친하게 지낸 일들, 낯선 풍경이라 사탄 연탄 번개탄 소리를 얻어들었다. 세상살이 눈으로는 절집이나 교회나 동종 업계이니 피차간 잘되면 좋은 일. 목사가 관대하고 그릇이 크면 신자들 말수가 고와지고 표정도 편안해진다. 적개심을 키웠다간 결국 그 칼끝이 제 몸에 쓱 박히지.

목사가 주의할 3가지가 있는데, 1. 설교를 길게 하지 말 것, 2. 비싼 시계를 차지 말 것, 3. 성경 외에는 아는 체하지 말 것. 한 번은 목사가 설교를 곱절로 길게 하고 마치면서 “교회 뒷벽에 시계가 없어 설교가 길었네요. 암튼 은혜받으신 줄 믿습니다!” 예배 뒤에 ‘물주’ 장로님께서 한마디, “뒷벽에 달력은 그나마 걸어둬서 다행입죠. 날 새는 줄 알았습니다. 내년부턴 다른 교회에서 아주 맘껏 길게 설교하십시요~.” 아무리 좋은 소리도 석자리 반이라 했다.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뜬 일철 스님이 언젠가 선물로 주신 두어 뼘 크기의 불상이 있다. 산속에 사는 ‘불쌍’한 사람 집에 불상 한 점 기본적으로 괜찮아. ‘평화 교육’ 삼아 불자들은 성경과 십자고상을 한 점씩 집에 두고, 크리스천들은 작은 불상 한 점 집에 앉히는 것도 좋겠구나 싶다. 그렇다고 순교자 집안의 목사인 내가 뜬금없이 개종을 하겠는가. 사실 집에 불상이 있는지 없는지 의식하지 않고 산다. 한 번은 가까운 스님이 와서 왜 저 보물이 여기 있느냐며 묻더라. 스님 눈에는 불상이 제일 먼저 보였던 모양. 글쟁이나 화가, 노래하는 이들은 벽이 없이 자유로울 때 보편적인 감정과 감동을 나눌 수 있다.

종교인도 사실 제 종교의 전문가일 뿐 이웃 종교에 대해선 문외한 초보자 수준. 말을 아끼고 무례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전쟁 연습을 하는 그 이상으로 평화 연습을 하자.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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