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끝나고 나면 [크리틱]

한겨레 2024. 5. 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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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어디로 갈까.

2017년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했던 박지혜 작가는 당시 나무를 톱질해 작업했는데, 전시가 끝나고 나면 작품을 만든 톱으로 작품을 잘게 잘라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렸다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7월까지 진행하는 '가변하는 소장품'전에 설치된 이주요 작가의 '5층 타워'(Five Story Tower, 사진)는 그런 고민을 담은 개방형 창고 개념의 작품으로, 조립식 행거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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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요, 파이브 스토리 타워, 2019~2020, 국립현대미술관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어디로 갈까. 수많은 미술 전시를 보면서도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였다. 2021년 광주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았던 이태헌 작가는 두 달간 공들인 5m 너비의 설치를 재단 입구에 전시하고 일주일 만에 철거하면서 철제 프레임을 중고사이트에 올려 무료나눔을 했다. 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였던 작품이 장식을 다 떼어내고 닭장 신세가 됐다는데, 고철로나마 생을 이어가는 예술이라 다행인 사례일까.

2017년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했던 박지혜 작가는 당시 나무를 톱질해 작업했는데, 전시가 끝나고 나면 작품을 만든 톱으로 작품을 잘게 잘라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렸다고 한다. 그럴듯한 공간에서 전시된 한때의 예술은 소장처를 찾지 못하면, 다시 말해 팔리지 않으면 길어야 10여 일 전시 끝에 쓰레기가 된다. 국공립 미술관 또는 문화재단에서 역량 있는 신진작가로 선정돼 작업하는 작가들도 작품을 만들고 폐기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의 영예를 안았던 이주요 작가는 후배 작가에게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어디에 두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버린다”는 대답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느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작가로서 안정적인 자리에 오른 선배마저 작품을 폐기하는 현실에 후배는 절망한 듯했고, 이주요 작가는 그제야 남겨질 수 없는 작품과 그런 작품을 제 손으로 폐기하는 작가들의 상처를 보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7월까지 진행하는 ‘가변하는 소장품’전에 설치된 이주요 작가의 ‘5층 타워’(Five Story Tower, 사진)는 그런 고민을 담은 개방형 창고 개념의 작품으로, 조립식 행거를 닮았다. 철근 구조의 창고 각 층에는 후배 작가들의 작품이 보관돼 있다. 5층으로 쌓아 올릴 수 있게 설계됐지만, 공간 높낮이에 따라 가변한다. 작가는 2019년부터 작품 제작 이후 폐기까지의 유통, 보관 시스템을 고민했고, ‘당신의 창고를 사랑하라(Love your Depot)’란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주요 작가는 일련의 프로젝트에서 사려 깊은 폐기를 제안한다. 어떤 작품을 남길 것이냐는 문제에서 결정권은 주로 시장이 갖지만, 소위 팔리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란 보장은 없다. 예술성을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지난한 미술계에서 초기작을 보관하고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부피 큰 설치 작업이 남아 있을 경우의 수는 0에 수렴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니 당장의 폐기를 보류하고 작품을 적극 알리는 동시에 가치를 판단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보관 시스템을 갖춰보자는 취지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설치된 이주요 작가의 러브 유어 디포_강남파빌리온 전경. 두 개의 창고조형물 중 뒤편의 낮은 영상설치는 5월12일 현재 작동하지 않았다. 사진 강혜승

창고 프로젝트는 확장 중이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 궁마을공원에 ‘강남파빌리온’이라는 이름으로 설치된 창고 시스템 속에서 작가 30여 명의 작품이 시민들을 만나며 보관 중이다. 최근 찾은 작품 주변은 무성하게 수풀이 자라 있었고, 영상 설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2021년부터 강남구와 문화재단이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는데 이쯤 되면 보관보다 방치에 가깝다. 다행히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10여 작품이 최근 소장처를 찾았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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