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제어할 지능…수학자와 정치학자의 접점 [김민형의 여담]

한겨레 2024. 5. 15. 15: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영국 브레츨리 파크에서 열린 사상 최초의 ‘인공지능(AI) 안전 정상회의’에 참석한 주요국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 안전 정상회의 2023 누리집 갈무리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이번 학기에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를 방문하면서 2024년 ‘앨런 튜링 강연’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킹스 칼리지의 가장 유명한 졸업생 중 하나인 튜링의 발자취는 교수 회의실의 초상화와 올해 1월에 세워진 조각가 앤터니 곰리의 튜링상 등 교정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이곳에서 2017년 이후 해마다 한번씩 개최되는 기념 강연이다. 튜링은 1950년에 발행된 ‘계산하는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에서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처음으로 기술하면서 기계와 사고와 지능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함께 인공 지능 판별 테스트로 ‘모방 게임’을 제안했다. 그 이후 인공지능에 관한 철학·과학적 담론에서 그의 이름이 빠지는 일이 별로 없고, 인공지능이 모든 이의 관심을 끌고 있는 현시대에 사회 문제의 맥락에서 튜링의 여러 아이디어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올해는 정치학자 주드 브라운(Jude Browne)이 ‘인공지능과 정치적 책임’이라는 주제로 튜링 강연을 했다.

사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인공지능 연구는 다분히 과학적인 관점에서 ‘지능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기본 질문과 연관돼 있었다. 그러다가 공학적인 인공지능 즉, 사람의 작업을 놀랍게 모방하는 기계가 시중에 보급되고, 근본 과학보다 기술 발전을 도모하는 투자가 이뤄지면서 정치·경제적 질문들도 대두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지난해 발행한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에 의하면 챗지피티(GPT) 같은 제한적 능력의 인공지능만으로도 단기간에 40%의 직업이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인공지능으로 인한 거짓 정보의 파급, 정치적 부작용, 에너지 낭비, 특히 인간이 인공지능에 정복될 수 있다는 우려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어쨌든 지능의 정의 같은 추상적 질문보다는 이미 세상에 내던져진 현실적 문제 해결이 지금의 관심사이다.

킹스 칼리지의 또 다른 유명 졸업생이자 교수였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에 쓴 ‘우리 후손들의 경제적 가능성’이란 에세이에서 극단적 낙관주의를 드러냈다. 케인스는 기술발전 덕에 인류의 경제적 문제들이 2030년 쯤이면 해결되리라고 예언했다. 구조조정의 어려움은 당연히 있을 것이고 의식주에 대한 본능적인 걱정들이 심리적인 부작용도 일으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럼에도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여가와 창조적인 즐거움이 보통 삶을 이루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전히 끔찍한 뉴스가 세계 곳곳에서 전해지고, 기후 위기의 공포가 지배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상당히 의아한 예측이다.

무엇보다 케인스가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 지도 궁금하다. 튜링보다 약 30년 선배였던 케인스는 튜링이 킹스 칼리지에 임명된 1935년 당시 그를 만나본 뒤 총명함을 극찬했다. 그러나 그 다음해에 케인스의 명작 ‘고용, 화폐, 이자에 관한 일반 이론’이 출판되고 나서 그가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은 정치에 휘말린 생활을 했던 탓에 서로 학문적 의견을 나눌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브라운 교수의 강연은 ‘인공지능 규제를 위한 적절한 정부 기관 설립’이 주제였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전반적인 우려와 ‘성찰의 중요성’에 대한 막연한 이야기에 그치고 말았다. 지금도 ‘regulating AI’를 키워드로 구글 검색을 해보면, 학문적·정치적·사회적·교육적 관점에서 쓴 이와 관련한 글들을 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규제해야 한다’는 훈계보다 ‘어떤 규제를 어떻게 실행해야 인간 복지에 전반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가’가 요점인 오늘날에 이런 모호한 한탄은 여러 면에서 실망스럽다.

브라운 교수의 강의 중 한가지 동의한 부분은 인공지능 규제에서 민주적 참여의 중요성이었다. 물론 이것은 인공지능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의료, 경제, 산업, 교육과 관련된 대부분의 결정에 상당 수준의 기술적 지식이 필요한 현대 사회에서 민주성 원칙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이 분명하다. 강연을 듣는 중에도 일반인의 수학 교육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또 이것은 수학자와 정치학자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