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부추긴 'AI기본법' 제정, 누구를 위한 것일까

금준경 기자 2024. 5. 1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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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국제경쟁 강조하며 시급한 입법 촉구
AI 위험성 견제 장치 부족해 인권위 제동 걸기도
해외처럼 법 마련? 정작 EU에선 엄격한 규제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생성형 AI로 만든 인공지능 이미지.

정부와 일부 언론이 AI기본법 제정을 압박하고 있다. 국제적 AI산업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법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보도는 AI 기본법의 '산업'에 방점을 찍고 '안전' 논의는 부각하지 않고 있다. 논쟁적인 상황이지만 산업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강한 반면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담은 보도는 찾기 어렵다.

'국제경쟁' 강조하며 AI 기본법 압박

보수·경제신문을 중심으로 국가별 경쟁 구도 속에서 AI기본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술경쟁 속 'AI기본법' 시급한데…여야는 나몰라라>(서울경제), <'AI 전쟁' 치열한데...국회 문턱 못 넘는 'AI기본법'>(전자신문), <AI '국가대항전' 열렸는데…바라만 보는 한국>(머니투데이방송), <정부 AI전사 1만3천명 육성, 국회도 AI기본법 통과 서둘러야>(매일경제), <한눈팔면 뒤처지는데…폐기 위기 몰린 'AI 기본법'>(중앙일보) 등이다.

매일경제는 지난 8일 사설을 통해 “(국회는) AI 기본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이고 있다”며 “정치권이 지원은커녕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매일경제는 “하세월인 국회를 보노라면 답답하기만 하다”고 했다. 전자신문은 지난달 9일 사설을 통해 “AI기본법은 AI 산업 발전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조항을 균형 있게 담았다”고 평가했다.

이는 산업계는 물론 정부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산업 발전뿐 아니라 신뢰성 확보 조항까지 담긴 균형을 갖춘 법이라 국민에게 다가올 위험을 해소할 수 있다”고 했다. 황종성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원장은 지난달 24일 기자들과 만나 “정치적 쟁점이 없는 인공지능법은 우선 만들고 순차적으로 정리해야 나가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5월 'AI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법안 처리를 압박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리하게 추진하다 인권위 제동, 논의 충분했나

AI기본법은 △AI 기술 도입·활용 지원 △AI 기술 개발·창업 지원 등 산업 육성 △AI 윤리 원칙에 따른 정책 수립 △AI 신뢰성 확보를 위한 근거 마련 △고위험영역 AI 고지의무 부과 등 AI 산업을 진흥하고 역기능에 대응하는 내용이 포괄적으로 담겼다. 산업 지원법의 필요성은 있다. 특히 챗GPT로 촉발된 AI경쟁에서 한국 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

▲ 지난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입장

그러나 법안의 '안전성' 관련 내용에는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지난해 국회에서 논의된 법안 초안에는 산업계 요구를 반영해 AI 산업과 관련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 을 담았으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해 8월 '우선허용 사휴규제 원칙' 폐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인권침해, 차별 등의 문제를 예방 및 규제하기 위한 규정이 미흡하다”고 했다.

주목할 점은 당시에도 일부 언론은 법안의 우려를 짚기보단 통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8월 동아일보 기사 <한국형 챗GPT나오는데... AI개념규정 법안도 못만든 국회>가 대표적이다.

과기정통부는 '우선허용 사후규제' 원칙을 폐기하고 AI 산출물에 워터마크를 도입하는 방안을 포함한 수정안을 냈기에 문제가 해소됐다는 입장이지만 논란의 소지는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시민사회도 법 제정에 반대하지는 않는다”며 “'우선허용 사후규제'는 문구 자체도 문제지만 전반적인 기조를 문제 삼았던 것이고, 실질적 룰이 될 수 있는 규율이 없는 점을 지적해온 것”이라고 했다.

오병일 대표는 “대표적으로 고위험 인공지능과 관련한 의무를 부과하거나 처벌을 하는 내용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전반적으로 법이 엉성한 면도 있다. EU법에선 '금지된 AI' 개념이 있는데 국내엔 없고 EU 법은 개발자, 유통업자, 활용자, 영향을 받는 사람 등 다양한 주체들을 고려한 반면 한국에는 이런 체계가 미흡하다. 범용AI는 어떻게 규율할지도 부족하다”고 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AI법을 제정한 EU 사례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EU의 AI법은 엄격한 규제를 담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U의 AI법은 사람의 잠재의식 조작, 노인과 장애인 등의 취약성 악용, 정치적 의견 등 민감정보를 유추하는 생체인식 분류, 공공장소의 실시간원격 생체인식 감시, 예측 치안 등을 금지하는 구체적인 규제를 담았다. 또한 고위험 인공지능의 경우 위험평가, 데이터평가 및 인권영향평가, 기술 문서화, 투명성 의무, 인적 감독,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의무를 부과했다. 의무 위반시 과징금 조항도 있다. 반면 한국의 AI기본법은 규제가 구체적이지 않고 처벌조항도 없다.

이번에도 우려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등 14개 단체가 지난 10일 AI법안 처리를 강행하려는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지만 포털 네이버 검색 결과 한국NGO신문 한 곳만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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