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관세폭탄? 호재는 맞는데…" K-배터리, 마냥 못 웃는 이유

김도균 기자, 최경민 기자 2024. 5. 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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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전기차 패권전쟁(下)
[편집자주]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전기차 분야로 옮겨붙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자 미국이 관세를 무기로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관세 폭탄을 매긴 미국의 속내와 이로 인한 자동차 및 배터리 업계 영향 등을 짚어본다.
'1300만원 중국 전기차' 인기더니 "관세폭탄"…'저가 전쟁' 잠시 안녕?
1분기 글로벌 전기차 인도량/그래픽=조수아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100%로 매기기로 하면서 중국이 주도해온 저가형 전기차 경쟁은 한풀 꺾일 전망이다. 업계는 당장은 저가 전기차로의 시장 전환이 다소 지연되겠지만 중국의 공급 능력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 대비가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15일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를 업체별로 보면 비야디(BYD)가 점유율 18.5%로 1위를 차지했다. 1만달러(약 1300만원)의 시걸 등 저가 차종이 잘 팔린 덕분이다. 2위를 차지한 테슬라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한 반면 3위 지리 그룹은 같은 기간 판매량이 59.1% 늘었다. 경형 전기차 '판다 MINI'가 2만3000대 이상 팔렸고, 볼보의 신형 전기차 EX30의 글로벌 판매량이 유럽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게 반영됐다.

중국이 저가형 전기차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높이자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덩달아 저가 전기차를 준비해왔다. 기아가 EV5를 중국 현지 공장에서 만들어 출시하면서 가격을 14만9800~17만4800위안(약 2700만~3100만원)으로 책정했다. 기아는 또 소형 전기 SUV EV3를 올해 하반기 출시한다. 가격은 4000만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는 지난달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내년 초 저가형 전기차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중국산 전기차 관세 확대로 저가 전기차 보급 속도는 다소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EU(유럽연합)도 최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등록 강화를 지시했고 연내 상계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이 대거 공급하는 저가 전기차가 시장을 독점할 것이라는 우려는 다소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완성차 업계가 촉발한 저가 전기차 경쟁이 완화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중형 이상과 프리미엄급 위주 차량 위주로 형성될 것으로 본다. 현대차, 기아는 아이오닉5, EV6, EV9 등 중형~준대형 전기차 시장을 주로 공략해왔던 만큼 한국 기업에 악재는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교수는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저가 전기차 시장이 열리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중국의 공급 과잉 추세를 보면 중장기적으로 저가형 전기차 보급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 중국이 내구소비재 소비를 확대하기 위한 이구환신(노후 자동차를 반납하면 신차 구매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자국 전기차 수요 증대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제조업 비중이 주요국 제조업 비중을 넘어서고 있어 중국 기업의 저가 밀어내기 수출은 필연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중국의 가격 경쟁력, 생산력을 생각하면 중국산 전기차는 미국의 관세 확대에 따라 당분간 인도, 동남아 등 신흥시장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신흥 시장은 인프라 면에서 전기차를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원천 봉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의 '초강력 中 관세'에 배터리 업계 "호재는 맞긴 한데…"
LG에너지솔루션 미국 공장

호재는 맞지만,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전기차를 향한 초강력 관세 부과를 지켜보는 국내 배터리 업계의 시선이다. K-배터리 선호도 상승에 대한 기대감과 국제 경제의 불확실성 증가에 대한 우려가 상존한다.

미국 정부는 14일(현지시간) 중국산 전기차에 붙는 기존 25%의 추가 관세율을 100%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배터리 및 그 구성품, 관련 주요 광물에 대한 관세도 상향된다.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관세는 올해 7.5%에서 25%로 올라가고, 비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2026년부터 이같이 상향된다. 배터리 부품 관세는 올해 7.5%→25%로 올라간다. 배터리 관련 주요 광물에 대한 관세율은 현재 0%에서 올해 25%로 상향되고, 역시 현재 관세가 0%인 천연 흑연과 영구 자석은 2026년에 25%의 관세가 붙는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일단 우호적인 환경이라고 판단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의 경우 중국 전기차에 납품하는 배터리가 없다. 보조금 없이도 1000만~2000만원 수준에 불과한 중국 전기차가 북미 시장으로 밀려올 경우 국내 배터리 3사의 주 고객인 현대차를 비롯해 GM, 포드, 스텔란티스, 토요타, 폭스바겐 등의 전기차 판매가 줄어들 여지가 있었다. 치킨게임의 가능성도 존재했다. 완성차 기업 입장에서는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부터 떨구려는 시도를 할 수 밖에 없다. 배터리 가격인하 압박이 거세지면서, 동시에 중국산 배터리 채택율이 높아지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었다. 배터리 3사가 가장 원치 않는 시나리오다.

일단 미국 정부가 관세를 통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장벽을 쌓은 모양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캐즘(Chasm, 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기) 상황에서 값싼 중국산 전기차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관세 조치를 통해 중국 전기차가 북미 시장에서 잘 팔릴 가능성이 낮아진 것이므로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3사는 중국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북미의 장벽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이 타이밍을 이용해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상 해외우려단체(FEOC) 지정을 통해 중국산 배터리 및 소재를 사용할 경우 전기차 보조금을 못 받게 규정했다. 여기에 100% 수준의 관세까지 더해진 것이다.

배터리 3사는 북미 현지화 드라이브를 거는 중이다. 미국 현지 전기차 공장에 대량의 배터리를 납품하고 IRA에 따른 생산세액공제(AMPC)도 챙길 수 있는 방식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지난해에만 IRA에 따른 AMPC(생산세액공제)를 각각 6000억원 넘게 수령했다. 올해부터는 '조 단위'의 수혜가 기대된다.

배터리 3사 북미 공장 예정/그래픽=윤선정

배터리 3사는 북미에만 총 600GWh 이상의 생산라인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 테네시, 조지아, 오하이오, 애리조나 등에 총 342GWh 규모의 공장건립을 추진중이다. 삼성SDI는 북미에서 2027년까지 100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추는 게 목표고, 추가 공장 설립도 검토 중이다. 현재까지 22GWh 규모의 생산라인을 보유한 SK온은 내년 블루오벌SK(127GWh)과 현대차 합작공장(35GWh)을 더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중 갈등의 심화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 전기차·배터리 기업을 겨냥한 규제를 쏟아낼수록, 중국 정부 역시 대응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실제 미국의 관세 정책 예고에 중국 측은 "자국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보복을 시사했다.

배터리 밸류체인에서 중국은 원료와 소재 분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리튬, 흑연, 니켈, 망간, 코발트 등 이차전지에 필요한 핵심 광물 대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된다.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 불안이 증폭되면, 배터리 기업들은 원료 확보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 미중 무역갈등에 따라 중국이 이차전지 음극재의 핵심 원료인 흑연 수출 통제를 강화했던 사례도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관세 정책이 국내 기업들에 수혜를 줄 수도 있지만 미중 양국이 서로 보복성 정책을 쏟아내면서 불확실성이 늘어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SK온의 조지아 공장. 왼쪽이 조지아 2공장, 오른쪽이 조지아 1공장


김도균 기자 dkkim@mt.co.kr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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