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사태가 ‘반일 선동’? 野 공세 맞서는 여권의 딜레마

구민주 기자 2024. 5. 1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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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매국 정부” 조국당 ‘독도 방문’ 맹공에 정부·여당 “반일 선동” 반격
‘친일’ 딱지 붙을까 대응 방안 골머리…野, 대안 없는 비난 ‘역풍’ 가능성도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13일 경북 울릉군 독도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를 비판하는 성명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인기 메신저 '라인'이 일본 기업에 넘어갈 위기에 놓이자 우리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취임 이후 줄곧 '대일 외교'를 강조해 온 만큼, 야권에선 정부의 외교 전체를 실패로 규정하며 맹공을 펼치고 있다. '친일 정부'라는 야권의 비판에 정부‧여당은 '선동'이라며 맞서고 있지만 싸늘한 여론 속 복잡한 속내가 감지된다.

야권은 일본 정부가 라인 운영사 라인야후에 네이버와의 지분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린 사태와 관련해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미온적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여당을 촉구했고, 조국혁신당은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 과정에서 야권은 정부를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빗대거나 '친일‧숭일 정권' 등의 표현까지 사용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의 상임위 협조를 촉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매국 정부, 매국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 과방위원들은 오는 16일 라인 문제 대한 현안 질의를 위해 개회요구서를 제출하겠다고 통보한 상황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합의 없는 일방적 회의"이라며 보이콧을 시사했다.

박 원내대표는 또 정부 관리가 국내 반일 감정 무마 방법을 일본 정부에 알려줬다는 보도를 거론하며 "우리 기업 네이버를 강탈하려는 일본 정부에 항의는커녕 협력했다는 뜻인데, 조선총독부나 할 일을 대한민국 정부가 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날을 세웠다.

야권은 독도 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로까지 전선을 넓히는 모양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같은 날 독도를 방문해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불과 2년 만에 다시 일본 식민지가 된 것 같다"며 "친일 정권을 넘어 종일(從日), 숭일(崇日) 정권"라고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여당은 네이버의 이익이 최우선돼야 한다며 야권의 '반일 프레임'은 사태를 꼬이게 할 뿐이라고 대립각을 세웠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해결을 위해 초당적 협력에 나서지는 못할망정 야당의 대표들이 라인야후 사태를 반일 선동의 소재로 삼는 자극적 언사를 이어가고 있다"며 여·야·정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제안했다.

성일종 사무총장도 전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지금 꼭 독도를 가야 할 이유가 있나"라며 "반일 감정의 영역으로 라인사태를 다루는 것이 과연 네이버에 도움 될지 신중히 고려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신중 대응을 강조하던 대통령실도 야당이 라인 사태를 정부의 외교 실패로 규정하자 "반일 조장은 국익 훼손"이라고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정치권에 대해서도 초당적 협조를 요청드린다"며 "일각의 반일을 조장하는 정치 프레임이 국익을 훼손하고, 우리 기업을 보호하고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5월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與 '친일 프레임' 갇히면 속수무책…尹 외교 불신도 누적

다만 여권 내에선 야권에 '반일 공세'에 반박하면서도 자칫 '친일 대 반일' 프레임에 갇혀버릴까 대응에 고심하는 기류도 나타난다. 총선 참패 후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정부 출범 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혹여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가 여론을 더 악화시킬 것을 우려해서다.

여당은 그동안 야권의 '친일' 공세가 벌어질 때마다 줄곧 민심에서 열세해왔다. 일례로 2019년 7월 일본의 무역 보복에 대한 반발로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일었을 당시, '일본과의 협상'을 외쳤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지지율은 폭락한 바 있다. '민주당이 죽창가까지 운운하며 반일 선동에 나서고 있다'는 한국당의 반격은 먹히지 않았다. 지난해 7월에도 현 정부와 여당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정국을 맞아 지지율이 추락하는 등 악몽을 경험한 바 있다.

'라인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미진했다는 공감대도 두터운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꽃이 지난 10~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라인 사태는 시장경제에 어긋나는 부당한 요구로 우리 정부가 막아야 한다'며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응답이 88.0%였다. '일본에서 사업 중이므로 일본 정부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4.7%에 그쳤다.(무선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전화면접조사(CATI) 방식과 무선(100%) RDD 활용한 ARS조사로 진행됐으며 응답률 13.2%,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p)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 2년 간 대일 외교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누적된 탓에, 민심을 달래기 더욱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한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물컵의 반을 먼저 채우면 일본이 나머지를 채워줄 거란 논리로 지난 2년 간 일본에 유독 저자세 외교를 이어왔는데, 그 결과가 이번 라인 사태와 일본의 계속되는 독도 도발"이라며 "그동안 '정말 대일 외교 성과가 있긴 한 거야' 의아해하며 인내하던 다수 민심이 이번 국면을 거치며 불신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야당의 총선 압승으로 정부의 대대적인 국정기조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외교 좌표에도 변화가 요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야권이 지나치게 대여 공세에만 몰두할 경우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야권에서 연일 쏟아진 공세 메시지를 보면, 현 사태를 해결할 실질적 대책보다 국민 감정을 고조시키는 발언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국익이 걸린 중대한 상황인 만큼 비난을 앞세우는 '팀킬'을 자제할 때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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