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째 ‘2인 체제’…방통위 파행 끝이 안 보인다
야 추천 인사 이유없이 임명 거부
자신이 추천·임명한 2인 체제로
YTN 민영화 결의 등 ‘방송 장악’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9개월째 ‘2인 체제’로 파행 운영 중이다. 5인 상임위원의 합의제 기관인 방통위에는 현재 윤석열 대통령이 추천·임명한 2인을 뺀 나머지 세 자리가 비어 있지만, 추천권을 쥔 여야는 21대 국회 막바지에 접어든 최근까지 관련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특히 4·10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방통위의 ‘형식적 정상화’보다는 2인 체제에서 의결된 와이티엔(YTN) 강제 민영화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와 독단적 운영을 막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먼저라는 태도다. 22대 국회가 개원하더라도 방통위가 당분간 2인 체제를 해소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4·10 총선 이후 ‘식물 방통위’ 전락
14일 방통위 설명을 종합하면, 5인 상임위원 체제에서 매주 수요일 전체회의를 열어 주요 안건을 심의·의결해 온 방통위가 올해 들어 대면회의를 연 것은 이날까지 9차례에 그친다. 2023년도 지상파 방송사업자 재허가와 와이티엔 최다액출자자 변경승인 등 주요 안건은 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이 직접 회의를 열어 처리했지만, 나머지 일반 안건 처리는 서면회의를 통해 이뤄지거나 보류되고 있다. 김 위원장과 이 부위원장은 모두 윤 대통령 추천을 받았다.
방통위 2인 체제의 시작은 지난해 8월 윤 대통령이 이동관 전 위원장을 임명하면서부터다. 당시 야당에서는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최민희 국회의원 당선자를 추천해놓은 상태였는데, 윤 대통령은 최 당선자에 대해 뚜렷한 이유없이 임명을 거부한 채 자기 몫의 추천권만 행사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법)을 보면 방통위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2인(위원장 포함)과 국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나머지 3인(여당 1명, 야당 2명) 등 5인의 상임위원으로 꾸려지는 합의제 행정기관인데, 이 전 위원장 임명 이후 사실상 독임제 부처처럼 운영돼 온 것이다. 지난해 말 이 전 위원장이 국회 탄핵 직전 갑자기 사퇴한 뒤, 그 후임으로 김홍일 위원장이 임명된 뒤에도 2인 체제는 그대로 유지됐다.
2인 체제 방통위는 공영방송 야권 이사 해임과 보궐이사·감사 임명을 강행했다. 지난해 12월20일 법원이 이동관·이상인 2인 체제에서 이뤄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보궐이사 임명에 대해 ‘방통위법이 이루고자 하는 입법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제동을 걸었으나, 그 뒤에도 지상파 재허가 및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 재승인과 와이티엔 민영화 의결까지 2인 체제에서 속속 이뤄졌다.
‘방송장악 국정조사’에 위원장 탄핵도 거론
‘방송 장악’ 논란에도 거침없이 쟁점 안건 의결을 밀어붙인 방통위가 기류 변화를 보인 것은 여당의 참패로 끝난 4월 총선 이후다. 실제로 방통위는 지난 3월26일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는 유시춘 교육방송(EBS) 이사장에 대한 해임 의결 전 청문을 진행했는데, 그 뒤 두달 가까이 지나도록 해임안을 상정하지 못하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해 남영진 전 한국방송(KBS) 이사장과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을 해임할 때는 청문일로부터 열흘 남짓 지난 뒤 해당 안건을 신속하게 처리한 바 있다.
방통위는 유 이사장 해임 절차 중단과 관련해 “청문 이후 (유 이사장의) 진술내용 검증 및 제출 소명자료에 대한 분석·확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통위 2인 체제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조속히 상임위원을 추천해 2인 체제가 해소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와 달리, 언론단체와 민주당 등 야당은 합의제 기관인 방통위를 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 변화와 방통위를 앞세운 현 정부의 방송 장악 행태에 대한 국정조사 등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야당 몫의 상임위원을 추천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야당 일각에서는 와이티엔 강제 민영화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 위원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홍보실장은 “지난해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이후 2인 체제 방통위에서 와이티엔 민영화 결정을 비롯해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는 의결을 거듭해왔다”며 “앞으로 국정조사나 국정감사에서 절차상의 문제 등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해법을 함께 논의하면서 5인 체제를 다시 꾸린다면 모를까, 지금 상태에서 위원을 추천하면 야권 위원은 여야 3 대 2의 구도 속에서 또다시 거수기 노릇 밖에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인 조승래 민주당 의원도 “방통위 정상화를 위해선 방통위를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확고한 약속과 제도 개선 노력 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지난해 8월 방통위 회의를 열려면 적어도 상임위원 3인 이상이 출석해야 한다는 내용의 방통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5기 방통위원을 지낸 김현 국회의원 당선자는 “윤 정부 출범 이후 언론·미디어 환경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용산 비서실’로 전락한 방통위를 제대로 견제·응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22대 국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김 위원장 탄핵”이라고 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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