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하나 붙지 않는, 침묵의 캠퍼스 [김누리 칼럼]

한겨레 2024. 5. 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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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학이 세계의 모든 고통과 억압에 항의하며 ‘시끄러운’ 반면, 한국 대학은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조용하다’. 독일 대학이 중요한 정치적 공론장이라면, 한국 대학은 정치의 무풍지대다. 거기선 세상에 무슨 비극이 벌어져도 대자보 하나 붙는 일이 없다.
지난 7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가자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면서 한 참여자가 경찰에 의해 끌려나가고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대학이 시끄럽다. 학생들이 ‘친팔레스타인 항의시위’를 위해 대학의 강의실, 건물, 광장을 점거하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이번 주 메인 칼럼(Leitartikel)의 첫 문장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과 학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세계 대학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작금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지금 내가 연구 학기를 맞아 방문교수로 와 있는 함부르크대학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최근 이스라엘군의 학살에 항의하고 전쟁 종식을 요구하는 크고 작은 시위가 잦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국제적인 연대 시위의 열기보다도 내게 더 큰 감동과 충격을 준 것은 대학 게시판에 빽빽하게 붙은 각양각색의 포스터와 전단들이다. 강연회와 토론회, 집회와 시위를 알리는 전단들이 독일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강조하는 포스터가 유독 많았다.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생존’을 위한 보수가 아니라 ‘생활’을 위한 보수를”, “인종주의와 분열에 반대한다. 공동 결정과 국제 연대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단 두 포스터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모든 대학의 종사자여, 단결하라! 조교와 강사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하여 거리로 나서자!”는 포스터도 보였다.

인상적인 것은 함부르크대학 총학생회의 맹렬한 활동을 보여주는 포스터들이다. 총학은 각종 사회적 현안에 개입해 강연회나 집회를 조직했다. “기후운동을 위해 자동차 산업을 사회화하라!”는 주제하에 연속 강연을 개최하는가 하면, 함부르크 지역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여, 예컨대 함부르크의 항만 관련 공기업이 사기업에 인수될 위험에 처하자 이를 저지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나아가 ‘함부르크 재산몰수’(Hamburg Enteignet)라는 시민단체와 손잡고 악화되는 주거 문제에 대한 혁명적 해법을 내놓았다. 그것은 “함부르크에 있는 주택 500채 이상을 소유한 부동산 사기업의 재산 몰수와 사회화를 위한 주민투표”이다.

국제적인 문제, 특히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에 대해 비판하는 포스터도 여럿이었다. “평화의 외침이 왜곡되고 있다”는 제목을 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한 독일 정부의 태도를 성토하는 토론회를 알리는 전단, 이스라엘군의 즉각 철수와 독일 정부의 무기 제공 중단을 촉구하는 ‘항의 캠프’를 세운다는 전단도 보였다.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군사 쿠데타 50주년을 추념하는 음악회 홍보물도 흥미로웠고, 억압받는 이란 여성들을 위한 연대 시위에 동참을 호소하는 전단의 문구 “이란 여성들과 연대하자. 신정정치에 반대한다. 파시즘에 반대한다”에 가슴이 뭉클했다.

강연회도 대부분 사회 비판적인 것이었다. “유럽중심주의 이후의 정치이론”, “토지와 땅에 대해 누가 결정하는가”, “야생의 민주주의. 항의할 권리” 등의 강연회가 열렸고, 독일의 과거청산 문제를 다룬 “식민지배 기억의 빈자리”라는 연속 강좌도 진행됐다. 특히 “나미비아와 독일. 독일의 식민주의를 누가, 어떻게 기억하는가?”라는 강연이 눈길을 끌었다. “비판적 자연과학도를 위한 강좌”도 흥미로웠다. 자연과학도의 비판적 사회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개설된 이 연속 강좌에서는 “파시즘의 지주로서의 지리학”, “범죄의 통계학”, “사회 비판을 했다고 직업 금지?”, “정보학의 사례에서 본 전쟁과 평화의 사이에 선 학문” 등 다양한 사회 비판적 주제를 다루었다. 그 밖에도 생태, 젠더 문제 등과 관련된 강연과 토론, 집회와 시위도 부지기수였다.

독일 대학의 게시판을 보며 나는 “대학이란 가장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선취하는 소우주”라는 훔볼트의 말을 떠올렸다. 이곳에선 ‘유토피아를 선취’하려는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독일 대학이 세계의 모든 고통과 억압에 항의하며 ‘시끄러운’ 반면, 한국 대학은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조용하다’. 독일 캠퍼스가 뜨거운 정치적 공론장이라면, 한국 캠퍼스는 적막한 정치의 무풍지대다. 거기선 세상에 무슨 비극이 벌어져도 대자보 하나 붙는 일이 없다. 오히려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면, 예컨대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면, 시끄럽다고 수업을 방해한다고 고발하고 심지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곳이 한국 대학이다.

새가 지저귀지 않는 ‘침묵의 봄’은 생태 위기의 도래를 경고한다. 새가 침묵하면 다음엔 인간이 침묵한다.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캠퍼스는 정치적 파국의 도래를 경고한다. 대학이 침묵하면 민주공화국은 사망한다. 민주주의는 숨을 죽이고, 공화주의는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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