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몰라” vs “속도 줄여야”…‘황색등 정지’ 대법원 판결 이유는?

김범주 2024. 5.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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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정지선을 얼마 안 남기고 황색 등이 켜졌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나요?

계속 가자니 신호를 위반하는 것 같고 멈추자니 뒤따라오던 차가 추돌할 위험이 있을 것 같아 이러기도 저러기도 애매한 구간, 운전자들은 이 구간을 '딜레마존'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황색등 딜레마'와 관련한 대법원의 판단이 지난달 12일에 나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법원 재판부는 교차로 진입 전 황색등이 켜졌다면 어떤 경우에도 멈춰야 하고, 멈추지 않으면 "신호 위반"이라고 판결했습니다.


■ 1·2심 판결과 엇갈린 대법원 판결, 이유는?

운전자 A 씨는 2021년 7월 경기 부천시의 한 교차로에서 정지선을 넘기 전 신호가 황색등으로 바뀌었지만 좌회전을 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와 충돌했고, 오토바이 운전자 등 10대 2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그런데 1심과 2심 재판부는 "신호 위반이 아니고, 오토바이의 출현을 예측할 수 없었다"며 운전자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상 '황색의 등화' 내용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운전자가 황색 신호를 보고 정지했더라도 속도를 고려하면 정지 거리가 15미터에 달해 사거리 한복판에서 멈추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주요 근거였습니다.

‘황색의 등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6조 제2항 [별표 2])
차마는 정지선이 있거나 횡단보도가 있을 때에는 그 직전이나 교차로의 직전에 정지하여야 하며, 이미 교차로에 차마의 일부라도 진입한 경우에는 신속히 교차로 밖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특히 2심 재판부는 "무조건 즉시 제동을 요구할 경우 교차로 내에 멈추게 되면서 교통사고 발생 위험이 생길 수 있는데,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신호 준수를 요구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1심·2심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대법원 재판부는 "규정에 의하면 교차로 진입 전에 황색 신호로 바뀐 경우 정지선이나 교차로 직전에 멈춰야 한다"며 선행 판례를 따라 도로교통법상 문언적 해석을 강조했는데요.

그러면서 "해당 상황에서 차량의 운전자가 정지할 것인지, 또는 진행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할 수 없다"고 못 박기도 했습니다.

사고차량 블랙박스 (한문철TV 제공)


■ 일부 운전자 "현실을 모르는 판결" 비판

대법원의 원칙적인 판단이 담긴 이번 판결에 일부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 등에서는 "운전 현실을 모르는 판결"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교차로 한 가운데 정지할 경우 교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뿐만 아니라, 정지선을 앞두고 무리하게 급제동할 경우 화물차량 등 후방차량에 추돌 위험이 크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른바 '딜레마존'에서 급제동하는 바람에 큰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변호한 한문철 변호사도 "이번 사건에서 정지선 전에 멈추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법원과 경찰이 상식에 맞게 사건을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딜레마 존은 과속 차량에 한정된 개념" 반박

이번 판결과 관련해 대법원의 한 연구관은 "이번 사건은 결국 신호를 위반했냐, 안 했냐를 따져야 한다"면서 "딜레마 존은 교차로에서 속도를 내는 차량에 한정된 개념일 뿐, 법원은 딜레마 존이라는 개념을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운전자가 정지선을 앞두고 속도를 줄였다면 충분히 멈춰 설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에서도 운전자가 규정 속도 40km를 초과한 61.5km로 달렸기 때문에 정지선 앞에서 멈출 수 없었다는 예상이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경찰 관계자 역시 "황색 신호는 적색 신호의 예비 개념이기 때문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위반 사항”이라며 "대법원의 판례는 정확히 도로교통법상 명시돼 있는 신호 의미를 지키라는 취지”라고 강조했습니다.

의정부역 서부 교차로 ‘차량 신호등 잔여 시간 표시 장치’ (세계일보 이정한 기자 촬영)


■ 도로 신호등에도 카운트다운 타이머를?

일각에서는 도로 신호등에도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등처럼 ‘카운트다운 타이머’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타이머를 통해 운전자들이 미리 감속을 할 수 있도록 돕자는 건데, 한편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신호를 건너려고 과속하면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 정부는 ‘차량 신호등 잔여 시간 표시장치’를 지난달까지 경기 의정부시에서 시범 운영했고, 경찰청 교통안전심의위원회를 거쳐 올해 안에 도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결국, 지금 상황으로선 도로교통법상에 명시된 것처럼 모두가 교차로를 통과할 때 특별히 더욱 주의 의무를 가지고 감속 서행하는 것이 가장 교과서적인 정답입니다.

물론 이 기사에도 우리나라의 운전 현실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일이 가능하겠냐는 댓글이 달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이 '황색등'의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했고, 경찰도 관련 단속을 강화한다면 교차로에 진입하기 전 속도를 줄이는 운전자가 서서히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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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주 기자 (categ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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