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빈의 플랫폼S] "뮌헨서 동독 사투리 쓰면 승진에 애로?"

이광빈 2024. 5. 1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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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에너지 전환·군비·이주민 사회통합 '삼중고'
"옛 동서독 지역 격차 감소에도 커지는 불만"…틈새 파고든 극우
한독통일자문회의 개최…처방전은 '공동의 기억' 복원, 청년 챙기기

[※편집자 주: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S'입니다. 지속가능과 공존을 위한 테크의 역할과 기후변화 대응, 이와 관련한 사회적 갈등 조정 문제 등에 대한 국내외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한독통일자문회의 주재 중인 문승현 통일부 차관(오른쪽)과 카르스텐 슈나이더 독일 연방총리실 정무차관. 통일부 제공. 무단 사용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아직도 옛 동독지역 사투리를 쓰는 외지인이 뮌헨 같은 바이에른 지역으로 많이 가지만, 성공 과정에서 어려움도 따릅니다."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2일까지 부산에서 열린 제13차 한독통일자문회의에서 카르스텐 슈나이더 독일 연방총리실 정무차관이 한 이 말에는 독일 통일의 후유증과 과제가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옛 동독지역의 젊은 인력은 부유하고 일자리가 많은 옛 서독 핵심지역으로 향해왔다. 옛 서독지역 경제 성장에 이들이 기여해왔지만, 기업에서 임원에 오르는 비율은 여전히 옛 서독지역 출신과 비교해 낮다. 옛 동독지역의 인력 유출은 지역소멸의 위험성을 높이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연방정부의 집중 지원 속에서 옛 동독지역의 경제력과 임금은 상당히 올라갔지만, '2등 시민론'은 도리어 커져만 간다.

특히 독일에서 지속되는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감소는 이민자 증가와 상관관계가 높은데, 극우세력은 이방인에 대한 낯섦과 막연한 두려움을 자극해 '혐오'를 불러일으켰다.

통일 34년을 맞은 독일의 현재 고민이지만, 분단 79년인 한국 사회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을 듯한 풍경이다.

초저출산을 겪는 한국 사회에도 이민자 확대는 예고돼 있다. 향후 이주민들의 사회통합은 상당한 난제가 될 수 있다. 당장에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에 따른 갈등 격화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극단주의와 혐오의 '독버섯'이 자라기 쉬운 토양으로 변해가고 있다.

더구나 향후 북한과 관련된 변수는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북한 급변 사태 시 대규모 난민이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7년 시리아 난민 100만 명, 최근 2년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난민 100만 명 이상을 받아들인 독일의 경험을 한국 사회가 들춰볼 법하다.

경제 체질도 독일과 한국은 각각 라인강과 한강의 기적을 이룬 데다 제조업, 수출 기반이라는 공통된 기반을 갖추고 있다. 현실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독일 통일을 둘러싼 주변국의 역할은 컸다.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교훈을 넘어 통일 문제를 둘러싸고 한독 양국 간 접점이 넓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 회의에 이어 두 번째로 자문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이번 정례회의에서도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8년 8월 독일 동부 켐니츠에서의 극우주의자들 시위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통일 34년…경제격차 해소에도 커지는 후유증은 왜?

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비용 증가, 이주민 유입과 동독지역 지원 등으로 인한 사회통합 비용 증가,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군사비 증가. 슈나이더 차관이 토로한 독일 사회의 '삼중고'다.

자문회의에선 독일 사회가 중대한 도전에 응전하고 있지만, 극우 세력이 '전환'에 두려워하는 이들의 정서적인 빈틈을 자극해 파고들고 있다는 데 우려가 컸다. 슈나이더 차관은 "굉장한 긴장감에 놓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자문회의에 참석한 독일 정치인들과 학자들이 공통으로 지목한 건 동서독 지역 간 격차 감소가 정치적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일 정부 조사에서 2022년 옛 동독지역 주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옛 서독 주민의 79%였다. 통일 초기 30%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일 34년 만에 격차가 상당히 줄어든 셈이다.

그런데, 왜 동독 지역에선 극우 세력의 성장세가 빠를까. 유타 귄터 브레멘대 총장은 "옛 동서독 지역 간 실제적 불평등이 줄어드는 것과 역행해 사회적 격차는 커지고 있다"며 "옛 동독지역 주민의 자의식이 성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5년 전 베를린에서 만난 당시 롤란트 얀 슈타지문서기록소장도 이에 대해 옛 동독지역에서 전체주의 체제가 민주주의로 바뀐 뒤 자기 목소리나 불만을 자유롭게 표출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분석한 바 있다.

그는 "통일 후 동독지역에서 시민사회가 제대로 형성되기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하엘 마르텐 독일 연방총리실 미래센터 과장(오른쪽)과 펠릭스 포커트 연방총리실 동독특임관실 비서실장 [부산=연합뉴스] ※무단 사용 금지

처방전은 '공동의 기억' 찾기…'에너지 전환' 등 미래 동력으로

'2등 시민론'에 대한 독일 사회의 진찰은 최근 몇 년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처방전은 단순히 경제적 격차 해소에 그치지 않는다. 정서적인 차이와 오해 극복을 더 큰 과제로 삼는다.

'독일 통일과 유럽 전환을 위한 미래센터'(이하 미래센터)는 독일 사회가 마련한 답안지 중 하나다. 연방정부가 2030년 개관을 목표로 중부도시 잘레에 마련 중이다.

미래센터에선 독일 통일의 가장 중요한 내적 동력이 동독의 '민주화 혁명'이었고, 그 주역은 동독 주민들이었다는 점을 정답으로 설정해 놓는다. 통일 주체로서의 '자기 효능감'을 불러일으키면서 '2등 시민론'을 불식시키려는 작업이다.

미래센터는 옛 동독지역 시민만을 대상으로 기억을 소환하려 하지 않는다. 옛 서독지역 시민들에게도 '대화'와 '논쟁'의 기회를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공동의 기억'이란 정답을 찾아가는 일종의 '문제 풀이 과정'에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셈이다.

미하엘 마르텐 연방총리실 미래센터 과장은 "지금도 사투리가 선입견과 차이를 만들기도 하는데, 분단기에도 동서독 간에 통일에 대한 기대치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면서 "미래는 과거에서 시작되는 작업 과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개개인의 과거, 평생 성취를 인정하고 민주적으로 대하면서, 이들이 사회를 함께 일궈왔다는 점을 일깨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독일 연립정부의 연정 서약서에도 건립 공약이 명기된 미래센터는 연간 예산만 4천300만 유로(한화 633억원)에 달하고, 연간 목표 방문객도 100만명으로 설정될 정도로 연립정부가 힘을 주고 있는 사업이다.

미래센터는 과거에서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데만 국한하지 않고 '미래'란 키워드도 강조한다. 탈탄소화 등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도 '용해의 플랫폼'에 담으려 한다. 화석연료 산업이 퇴장하는 지역 주민들이 그 대상이다.

마르텐 과장은 "삶의 터전을 일궈 온 평생의 성취가 사라지지 않게 하면서 미래를 위한 탈탄소화를 어떻게 이뤄낼지 함께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문회의를 주재한 문승현 통일부 차관은 마르텐 과장의 발제가 끝난 뒤 이틀간의 회의 총평 겸 '플랫폼'으로서의 미래센터 계획을 주목하면서 '열린 시각'과 '집단지성'을 강조했다.

마르틴 둘리히 작센주 경제·노동부 장관(오른쪽 첫번째) 등 자문회의 참석한 독일측 인사들 ※ 통일부 제공. 무단 사용 금지

옛 동독지역에 '반도체 클러스터'…걸림돌은 '극우'?

자문회의에선 옛 동서독 지역 간에 정서적 차이뿐만 아니라 경제적 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점도 강조됐다. 독일 고위 관료들은 인텔과 TSMC 같은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옛 동독지역에 클러스터를 만들고 있고, 수소 산업도 발아되고 있는 점을 설명했다. 옛 동독지역이 삼성전자에도 매력적인 반도체 투자처라며 구애를 펼치기도 했다.

첨단산업 유치를 위해선 기술인력 확보가 필수다. 마르틴 둘리히 작센주 경제·노동부 장관은 이민자 유치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통일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한 이런 시도는 후유증에 발목이 잡히는 아이러니도 낳는다. 옛 동독지역에서 극우세력의 성장은 기술 이민자들의 정착을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리히 작센주 장관은 "옛 동독지역에선 아직 외국인을 접한 경우가 적어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주민들에게 미래가 나아질 수 있다는 신뢰를 주면서 이민자를 품을 수 있는 환경을 빠르게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옛 동독지역은 이런 측면에서 작은 성공을 이뤄나가기도 한다. 지난해 베를린 자문회의 중 견학 일정으로 찾은 옛 동독지역 소도시 바이스바써는 석탄 산업의 쇠락과 함께 인구 소멸의 길을 걷다가 최근 몇 년간 반전의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앞장서서 신나치 세력을 추방하고 이주민들이 안전하게 지역사회에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간 데다, 이제는 해외 자본과 외국인 유치에도 적극 뛰어들 정도로 탈바꿈했다.

독일 바이스바써 지역의 갈탄 탄광 [바이스바써=연합뉴스]

독일도 한국도, '청년'이 키워드…"통일 시 비전 제시 필요"

독일 사회가 옛 동서독 지역 간 정서적, 경제적 차이 해소에 나서면서 가장 공을 들이는 세대는 청년층이다. 미래센터도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문회의에선 지난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청소년(13∼18세) 대상 여론조사에서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답변이 53.8%로, 성인보다 19.9%포인트 낮은 결과가 나온 점이 소개됐다.

이에 대해 독일 측 인사들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분단기 서독 역시 시간이 갈수록 통일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낮아졌고, 특히 젊은 층에선 상대적으로 그런 경향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만, 독일 측은 통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독일 통일조약 실무책임자였던 클라우디아-디터 슈납아우프 전 내무부 실장은 "통일이 준비한 대로 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독일 측 인사들은 통일 문제와 관련해 청년 세대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둘리히 작센주 장관은 "통일된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이 필요하다"면서 "통일 한국에서 주역이 될 청년들이 그 비전을 알아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귄터 총장도 자문회의에 옵서버로 참여한 '통일부 2030청년자문단'을 좋은 사례로 들면서 "젊은 층이 통일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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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통일자문회의 참석자들 ※통일부 제공. 무단 사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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