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두려워’한 뷔페, 그 세계로 한 걸음 더 빠져들다

2024. 5. 15.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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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뷔페전’ 개막…광대를 사랑한 천재의 작품 한자리에
1958년 라르크 성에서 베르나르 뷔페와 아나벨 뷔페 / 한솔비비케이 제공



‘피카소의 대항마’로 불렸던 천재 화가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1928~1999)가 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뷔페의 두 번째 대규모 회고전 ‘베르나르 뷔페전’이 지난 4월 2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문을 열었다. 전시의 부제는 ‘베르나르 뷔페-천재의 빛: 광대의 그림자’다.

뷔페에게는 ‘비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한다. 피카소와 비견될 만한 재능이라 평가받았고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미술계에서 추상 미술이 주류가 되면서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2019년에야 처음으로 회고전이 열렸다. 그러나 뷔페의 매력은 단숨에 한국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당시 15만명이 첫 번째 회고전을 찾았다.

이번 전시에는 단테의 <신곡>을 캔버스에 재현한 폭 4m를 넘는 대형 유화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을 포함해 총 120여점이 소개된다. 5년 전 첫 회고전이 한국 관객들에게는 낯설었던 뷔페를 소개하는 자리였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주제별로 작품을 구분해 뷔페의 세계에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다. 유화뿐 아니라 수채화, 판화, 잉크 드로잉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뷔페의 작품들이 한국을 찾았다.

베르나르 뷔페의 ‘자화상 - Autoportrait 2)’(1981년, Huile sur toile, 116x81㎝) / (C) Bernard Buffet



날카로운 직선을 사용한 뷔페의 작품에서는 ‘어둠’이 먼저 감지된다. 뷔페의 삶이 그랬다. 뷔페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불안한 공기가 조국 프랑스를 감싸고 있었고, 17세에는 어머니마저 잃었다. 그 후 뷔페는 몇 년간 세상과 담을 쌓고 그림만 그렸다.

뷔페는 19세에 첫 개인전을 열었고, 20세에 프랑스 최고 권위의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27세에는 매거진 ‘콘느상스 데 아츠(Connaissance des arts)’가 전후 최고의 예술가로 선정하고, 30세에 뉴욕타임스가 ‘프랑스의 멋진 젊은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비평가들에게는 찬사를, 대중에게는 사랑을 받으며 명성을 높였다.

이번 전시는 ‘천재의 빛’과 ‘광대의 그림자’ 두 부문으로 나눠 관객을 맞이한다. ‘천재의 빛’ 부문에서는 인물화를 주로 선보인다. 뷔페는 ‘나는 무엇이고 어떻게 존재하느냐’라는 실존적인 질문을 인물화로 그려냈다. 뷔페의 그림은 당대에 비슷한 그림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했고, 대중도 곧 반응했다. 프랑스의 작가 장 콕토(1889~1963)는 “피카소가 두려워하는 것은 뷔페의 재능뿐이다”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베르나르 뷔페의 ‘광대의 얼굴(Tete de clown)’(1955년, Huile sur toile, 73x60㎝) / (C) Bernard Buffet



‘광대의 그림자’ 부문에서는 제목 그대로 광대의 그림들이 주로 전시된다. 뷔페는 유독 광대란 주제를 사랑했는데, 그 속에는 전후의 공허와 불안, 분노 등이 다층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뷔페는 광대를 사랑하는 이유로 “온갖 변장과 희화화로 자신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르나르 뷔페의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1976년, 캔버스에 유채, 250×430㎝) / 한솔비비케이 제공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이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뷔페는 문학이나 종교, 신화 속 인물들도 즐겨 그렸는데 그중에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도 있다.

베르나르 뷔페의 ‘돈키호테-양 떼(Don Quichotte - Les troupeaux de moutons)’(1989년, Lithographie, 78x56㎝) / (C) Bernard Buffet



뷔페는 1997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자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1999년 10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림은 뷔페가 평생을 천착한 주제였으며 존재 이유였다. 전시는 올해 9월 10일까지 이어진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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