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제동에 입지 좁아지는 ‘LNG 열병합’[박상영의 기업본색]

박상영 기자 2024. 5.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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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감도. 용인시 제공

SK E&S가 열병합 발전소를 통해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려고 했는데 산업통상자원부가 반대한다는 보도가 최근 잇따랐다. 반도체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정도로 막대한 규모의 전력량이 필요하다. 기업으로선 안정적인 전력 조달을 위해 발전소를 짓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지로 볼 수 있는데 정부는 왜 이를 막았을까.

정부는 SK E&S가 열병합 발전소를 짓는 것은 ‘자가 목적’에 해당하지 않아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자신이 소비할 목적으로 공장에 별도의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정부로부터 발전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 열병합 발전소를 짓겠다고 신청한 곳은 SK하이닉스가 아닌 SK E&S로, 정부 설명대로 ‘자가 목적’에 해당하지 않는다. 산업부에 따르면 SK E&S는 열은 SK하이닉스에 공급하되, 전기는 한국전력에 판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발전소 허가를 엄격히 심사하는 정부로서는 계획에서 벗어난 새로운 공급이 달갑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줄다리기 이면에는 조금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고 본다. LNG를 줄이려는 정부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명분으로 LNG를 확대하려는 기업 간의 입장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얘기다.

열병합 발전은 LNG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고, 이때 발생하는 열을 난방·온수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같은 연료량으로 전기뿐만 아니라 열까지 생산하기에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전에는 정부도 열병합 발전에 호의적이었다. 정부의 엄격한 통제 속에 사업 허가를 받았던 발전사와 달리, 열병합 발전은 열 생산이 주목적이었던 만큼 발전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했다.

열병합발전이 열과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 SK E&S 제공

그러나 최근 들어 정부 입장이 변화했다. 정부가 대규모 산업단지 내 LNG 열병합 발전소를 확대하는 데에 제동을 건 것이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발표를 앞두고 산업부는 최근 LNG 열병합 발전소 사업계획을 제출한 기업들에 ‘내년 LNG 열병합 발전을 위한 별도의 시장을 개설해 2030년 이후 신·증설할 LNG 열병합 발전 설비를 제한적으로 선정하겠다’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비중이 예전보다 확대된 영향이 크다. 실제 11차 전기본에 신규 원전 건설이 포함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원전 비중은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을 중심으로 수출 기업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태양광·풍력 공급도 확대해야 한다. 결국, 늘어난 원전·재생에너지 비중만큼 LNG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열병합 발전 몸집이 점점 커지는 점도 부담이다. 그동안 열병합 사업자는 열을 우선 공급하고, 전력은 부수적으로 생산해 발전량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그러나 석탄 열병합 발전설비를 LNG 열병합 발전설비로 전환하면서 열 수요는 그대로지만 발전 용량은 4~5배가량 늘어났다. 전력 수요와 공급을 일치하는 것이 목표인 정부로서는 갑자기 늘어난 공급이 부담으로 작용한 셈이다.

실제 한화에너지는 기존 석탄 화력 기반이었던 260메가와트(㎿) 규모의 여수·군산산단열병합을 500㎿급 LNG 설비로 증설하는 것에 더해 신규로 500㎿ LNG 설비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GS E&R도 석탄을 연료로 사용해온 구미 국가산단열병합을 LNG로 전환하면서 기존 설비를 98㎿에서 500㎿급으로 증설하겠다고 신청했다.

정부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라도 화석연료인 LNG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본다. 2022년 발표한 10차 전기본에서는 2018년 26.8%였던 LNG 비중을 2036년까지 9.3%로 줄인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11차 전기본에서는 목표치가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기업들은 전력 공급이 원활히 이뤄질지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인공지능(AI)과 첨단 반도체 산업 경쟁이 거세지면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데 비해 전력공급망 구축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향자 개혁신당 의원이 7차부터 10차까지 전기본별 송변전망 구축 사업을 전수조사한 결과, 적기에 준공된 사례는 7건에 불과했다. 83%는 평균 41개월 이상 지연됐다.

전력망 구축이 늦어지면서 동해안 지역 석탄화력 발전사는 경영난에 직면했다. 2022년 완공됐어야 할 동해안~수도권 송전망이 2026년으로 완공 시점이 미뤄지면서 가동률을 낮춰 운영하기 때문이다. 전기를 실어 나르는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송전망이 부족해 전기를 일부러 덜 생산하는 것이다.

특히 신한울 원전 1·2호기가 2022년부터 차례대로 가동함에 따라 이러한 송전 제약은 본격화됐다. 전력망이 구축되지 않은 채 발전량만 늘어나면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전력망 구축이 이처럼 늦어진 데는 주민 반대와 인허가 지연 등의 영향이 크다. 원전과 석탄발전소가 집중된 영동권과 수도권을 잇기 위해서는 대형 송전탑을 건설해야 하는데 지역 주민들은 전자파 등 환경 피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송배전망을 지하에 설치하는 지중화를 요구하지만, 재원 한계로 비율은 14.3%에 그치고 있다.

국가기간 전력망 체계.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이 때문에 정부는 용인 국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가 조성되면 2037년까지 산단 내 LNG 발전을 통해 3기가와트(GW)를, 전력망 건설을 통해 나머지 7GW 전력을 끌어온다는 계획이지만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력망을 이유로 LNG 퇴출 시기를 늦추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 공학부 교수는 10년 뒤에 폐쇄하면 모르겠지만 지금 새로 LNG 발전소를 짓겠다는 것은 탄소중립 달성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고 강조한다.

“지금 LNG 발전소를 건설하면 적어도 30년 이상은 운영해야 한다. 독일은 노후 석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해서 온실가스를 줄였다. 우리는 석탄을 LNG로 전환하면 당장은 온실가스가 조금 줄어들더라도 30년 넘게 운영하면 탄소중립 달성은 그만큼 힘들 수 있다. 노후 석탄에서 재생에너지로 바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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