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사람에 충성 안 해"... 검사 윤석열의 전유물 아니다
“이러다 ‘제2의 조영곤 사태’가 나오지 말란 법 있나요?"
법무부가 13일 전격 단행한 대검검사(고·지검장)급 인사를 살펴 본 고검장 출신 변호사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언급한 ‘조영곤 사태’가 무엇이었는지를 돌이켜 보자. 때는 2013년 10월. 당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윤석열 검사(수원지검 여주지청장)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당시 국정원 수사를 강행하던 윤 검사는 "이렇게 된 마당에 사실대로 다 말씀 드리겠다"며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냐’며 반대했다”고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했다. 바로 이어진 말이 걸작. 바로 지금의 '대통령 윤석열'을 만들어 준 발언이다. "(조직을) 대단히 사랑합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윤 대통령은 바로 이 폭로 때문에 전국 고검을 돌며 좌천과 유랑생활을 거듭했지만, 국민들 뇌리 속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강골 검사'로 각인됐다.
당시 국정원 댓글 수사는 '박근혜 청와대'를 곧바로 노린 위협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명품 가방 의혹 사건 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까지의 전개 과정도 낯익다. 검찰 안팎에선 이번 인사를 두고, 김 여사를 조사하려 했고 신속하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지 않은 검찰 지휘부를 질책하는 '좌천성 승진'이었다는 해석이 분분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은 2년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 등을 지휘하며 윤석열 정부의 '조자룡의 헌칼’ 역할을 수행했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수사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고검장으로 이동했다. 명품 가방 의혹을 수사하던 김창진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도 검찰 내부에선 '한직'으로 꼽히는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검사장)으로 임명됐다. 김 차장검사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내정됐을 때 인사청문회 청문지원팀장을 맡을 정도로 가까웠지만, 인사 한 번으로 수사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수원고검 차장검사(검사장)로 옮겨 앉는 고형곤 중앙지검 4차장검사도 마찬가지다. 정권 교체 후 특별수사를 책임지는 4차장검사를 맡아 각종 수사를 진두지휘한 ‘믿을맨’이었지만,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의 대면조사 필요성을 주장해 ‘미운 털’이 박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방검찰청 간부는 “1·4차장이 다 승진은 했지만, 이동한 자리를 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며 “김 여사 사건의 처리 방향에 대한 책임을 물은 질책성 인사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새로 들어오는 서울중앙지검 지휘부는 과연 '용산'의 뜻을 충실히 이행할까. 임명권자 뜻을 따를 수도 있지만, 문제는 검찰 조직이 언제나 권력의 뜻에 휘둘릴 정도로 만만한 곳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친윤’으로 분류되는 검찰 간부들도 수사에 방해가 되는 외압 등을 맞닥뜨린다면, 언제든 '제2의 조영곤' 존재를 폭로하지 말란 법이 없다. 윤 대통령도 원래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발탁된 사람 아닌가.
한 검찰 고위 간부는 “검찰이 특정 인사나 세력의 뜻대로 수사를 하려할 경우 탈이 나곤 했다”면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사건 흐름에 따라 철저히 수사해온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도 이런 부분을 모를 리 없고, 그래서 수사 결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은 14일 이임식에서 “신임 이창수 검사장과 함께, 한마음 한 뜻으로 ‘국민을 섬기는 검찰’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가 처한 전후 사정을 감안하면 특정한 '사람'이 아닌 '국민'에게 충성하는 검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 읽혔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검사는 누구 한 사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역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권력의 과한 욕심은 대부분 뒤탈로 이어지는 법이니까.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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