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우리 얼굴은 ‘가짜’

김지윤 디지털 에이전시 스텔러스 대표, '아이들의 화면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저자 2024. 5. 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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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의 다리 길이가 화제가 됐다. 170㎝ 넘는 키에 긴 다리를 가진 장원영은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릴 때 다리 길이를 일부러 줄인다”고 했다. 다리 길이를 짧게 보정해야 화면 속 자신이 더 조화롭게(?) 보인다는 것. 진짜 모습과 다리를 줄인 ‘가짜’ 모습이 담긴 사진의 차이는 확연했다.

사진 보정은 미디어 기술 발전에 따라 누구나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네이버의 사진 앱 ‘스노우’가 제공하는 인공지능(AI) 프로필 사진은 AI에 내 얼굴 사진을 10~20장 학습시키면 말끔하게 보정된 사진을 만들어주는 유료 서비스다. 스노우는 이 서비스로 연 매출 347억원을 달성했다고 한다. 월 구독료가 3300~6600원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이가 AI로 얼굴을 ‘재(再)창조’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젊은 층에서 AI 프로필 사진을 여권이나 주민등록증용 사진으로 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행정안전부에서 “AI로 보정한 사진을 신분증 사진으로 쓸 수 없다”고 공표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어차피 그동안 포토샵으로 보정한 사진을 신분증에 써왔는데, AI 프로필 사진을 금지할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얼굴’은 이제 화면 밖 진짜 얼굴과 화면 속 가짜 얼굴이 공존하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더 자주 보이는 얼굴은 진짜보다 가짜 얼굴일 가능성이 높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대면하는 사람보다 화면으로 만나는 사람이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아무리 가짜라도 가짜 얼굴이 나를 대변하는 게 아닐까. 그러면 가짜가 진짜에 버금가지 않나.

요즘 세대가 소위 가상 인간, 버추얼 아이돌에 열광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화면에 담긴 그들의 가짜 얼굴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내게 진짜처럼 여겨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급기야 가짜 얼굴을 내세운 인플루언서들까지 등장했다. 과연 어디까지 가짜일까. 저마다 자기 채널의 연출자가 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에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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