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칼럼] 족집게 ‘엄문어’의 총선 예측은 왜 빗나갔을까

김윤덕 기자 2024. 5. 1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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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심판 바람의 근원은
정책 아닌 태도였다”는
김종혁 울분 일리 있어
공정·상식 이미지 사라지고
고집불통의 화신으로 추락
재래시장 대신 해병대 찾아가고
최대 ‘안티’ 20대 여성들 만나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엄경영은 지난 총선을 기해 ‘엄문어’에서 ‘엄주꾸미’로 강등됐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선거평론가인 그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선 여당이 완패할 거라 예측해 족집게란 뜻의 별명을 얻었지만, 22대 총선에선 국민의힘이 과반을 달성한다고 전망했다가 체면을 구겼다.

민주당 200석 전망이 나오던 3월 말에도 그가 국힘의 승리를 고집한 이유는 대략 세 가지였다. 4·7 재·보궐선거 이후 급속도로 보수화한 2030 남성의 표심이 국힘에 있다고 봤다. 이준석을 내친 대통령은 밉지만 한동훈에게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의료 대란도 국힘에 유리하다고 봤다. 윤석열의 뚝심 아니면 개혁은 어렵다고 믿는 국민이 더 많다고 판단했다. 조국당 돌풍이 최대 변수였는데, 이내 잦아들 것으로 내다본 게 결정적 패착이 됐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국민이 조국 대신 윤석열을 심판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엄경영이 적중하기만을 바랐던 보수는 패닉에 빠졌다. ‘범죄자’들에게 표를 준 우민(愚民)을 탓하고, 일부는 부정선거를 부르짖었다. 이재명+조국+양문석+김준혁을 합친 것보다 윤석열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역대 대통령 중 오만·불통 아닌 사람이 있었나? 경제가 어렵지 않은 때 있었나? 대통령 부인 중 결백한 이가 몇이나 될까?

총선 후 패배 요인을 분석하는 온갖 말들이 쏟아졌지만, 정곡을 찌른 건 김종혁이라고 생각한다. 경기 고양에서 낙선한 김종혁은 “이재명·조국보다 대통령 부부가 더 싫다는 유권자가 태반이었다”고 직격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콘텐츠나 정책이 아니라 스타일과 태도였다”고 했다. 정권 심판 바람이 거셌던 건 정책과 공약 탓이 아니라 대통령의 태도와 스타일, 2년 내내 추락을 거듭해온 대통령 이미지(PI·President Identity)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우직한 이미지 하나로 국민 마음을 얻은 윤석열은 어쩌다 역대 최저치 지지율을 찍은 대통령이 됐을까.

김종혁이 저격한 대통령의 스타일은 좋게 말하면 뚝심, 나쁘게 말하면 불통이다. 진짜 문제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한다는 데 있다. 그러니 설득보다는 지시하길 좋아하고, 잘못이 있어도 사과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무수한 비판이 따랐지만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한동훈과 김건희 이슈에도 불통으로 맞서 집토끼들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최대 우군이었던 7080 여성들마저 한동훈 비대위원장과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불거졌을 때 탄식을 자아냈다. 나락에 빠진 보수를 구하겠다고 삼각김밥 먹어가며 뛰는 한동훈을 대통령은 왜 그렇게 괴롭히냐는 말을 그 무렵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리투아니아 명품 숍 논란부터 양평고속도로, 디올 백 사건에 이르기까지 잊을 만하면 튀어나와 대통령 이미지를 훼손하는 김 여사 구설에 지지층은 혀를 찼지만 대통령은 침묵으로 엄호했고, 대통령실 역시 “야당의 프레임”이라며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상대는, 조국을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로 둔갑시키는 선동의 귀재들이다. 2000명 의대 증원을 (이)천공 지령으로 연결시키는 ‘꾼’들이고, 최순실 트라우마를 이용해 ‘영부인 비선’을 확산하려는 음모론자들이다. 불행히도 용산 대통령실엔 이에 맞설 두뇌, ‘스핀 닥터’라 불리는 지략가들이 없다. 대통령은 격노하고 참모들은 우왕좌왕하는 사이 소문과 선동은 사실로 고착되고, 탄핵에 버금가는 총선 결과로 이어졌다.

대참패 후 대통령은 김 여사의 처신을 사과하고, 73분 동안 20개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면서 변화를 꾀하는 듯 보였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기자회견 직후 또다시 재래시장을 찾은 것이 대표적이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다면 해병대를 찾아 신뢰를 회복할 시간을 가졌어야 한다. 이태원 유가족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손을 잡아주고, 대통령 최대 ‘안티’인 20대 여성들과 만나 터놓고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야 한다.

검찰총장 시절 떠오르는 강렬한 장면이 있다.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열린 날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던 윤석열 총장이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의 얼어붙은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다. “오늘부터 강추위가 시작되니 이제 여기 나오지 마시라. 제가 그 마음 감사히 받겠다.” 고금리·고물가로 고통받는 국민들이 바라는 대통령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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