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사자의 사냥’을 보려다 ‘사자의 사랑’을 보고 말았네

정지섭 기자 2024. 5. 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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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킹 30주년 특집 2탄
’백수의 왕’으로 추앙받는 사자, 약점도 많아
호랑이보다 왜소하고, 표범보다 둔하고 치타보다 느려
이런 단점 불구하고 협업과 사회성으로 최강 맹수 등극
암수의 외모가 뚜렷이 구분되는 건 인간-유인원과도 비슷해
숫사자가 암사자에게 교미하려 접근한다. / 페이스북 @Latest Sightings - Kruger

올해는 월트디즈니의 만화영화 ‘라이온킹’이 개봉한지 30주년되는 해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이야기의 뼈대를 얻어 아프리카 사바나 짐승들을 의인화한 이 작품은 등장 짐승들의 생태와 습성이 사실과 전혀 다른 터무니없는 설정으로 오류와 억지가 넘쳐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원작 만화영화에 이어 뮤지컬, 실사영화, 관련 캐릭터 산업으로 무한 반복·확장하며 월트디즈니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습니다. 라이온킹을 빛냈던 주·조연급 짐승 캐릭터들의 적나라한 속살을 연중 게재합니다. 하쿠나 마타타~ -수요동물원장

가족 애니메이션을 표방한 라이온킹이지만 이 작품에는 끈적한 흘레신(scene)이 등장합니다. 고양이 만한 새끼 사자 시절에 헤어진 뒤 당당한 수컷과 암컷이 돼서 만난 심바와 날라가 재회한 뒤 그날 밤 바로 달콤한 개미탑을 쌓는 장면이죠. 이 장면에서 사자들의 의인화는 극대화됩니다. 날라(암사자)의 고혹적인 눈빛에 심바(수사자)가 헤벌레 침을 질질 흘리며 그들은 한몸이 돼 정글바닥을 뒹굽니다. 실제 사자들도 이렇게 정을 나눌까요?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남아프리카 크루거 국립공원의 일상을 소개하는 온라인 매체 ‘레이티스트 사이팅스(Latest Sightings)’에 등장했어요. 우선 동영상부터 보실까요?

투어가이드가 운전·안내하는 차에 오르는 사파리 관광객들의 목표는 한결같습니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각본없는 드라마를 보는 거죠. 거침없이 내달려 먹잇감을 거꾸러뜨린뒤 피와 살이 흥건한 채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본능의 발산 현장을 두눈으로 보고 싶은 거죠. 살점과 내장이 뜯겨져나가며 절규와 포효가 엇갈리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길 바랐을 겁니다. 그런데 웬걸요. 이날 관광객들은 예상치 못한 광경과 마주쳤어요. 한 무리의 사파리 투어 차량들 사이에서 여보란듯 버젓이 흘레붙는 한쌍의 암수사자를요. 이런 상황을 단타를 기대했다 3루타를 친 셈, 2루타인줄 알았더니 그라운드 홈런인 상황이라고도 비유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내셔널 지오그래픽 와일드·BBC 어스에서도 볼 수 없는 백수의 왕 사자들의 짝짓는 장면을 눈앞에서 본것만큼 횡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비록 찰나의 순간에 마무리됐지만 말이죠. 이 장면을 코앞에서 지켜본 사파리 차량에선 어떤 반응들이 나올지도 궁금해요. 침을 꼴깍 심키며 지켜보는 사람들, 어색한 침묵과 의미없는 너털웃음, 어쩌면 각자 나라의 언어로 ‘얼레리 꼴레리’를 떼창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암사자 두 마리가 기린 사냥에 성공한 뒤 포식 전 사체 앞에서 즐거워하고 있다./Desert Lion Conservation

이 사례가 보여주듯 사자만큼 그들의 일상이 낱낱이 뻥튀기처럼 부풀려진 동물도 흔치 않을 거예요. 이 족속을 속속들이 낱낱이 탐구해봅니다. 호랑이·표범·재규어·퓨마·치타와 함께 위풍당당한 ‘고양잇과 6대천왕’을 이룹니다. 표범·치타·하이에나·리카온과 함께 아프리카 사바나의 5대 맹수이기도 하죠. 호랑이랑은 맹수의 지존을 다투는 영원한 맞수이기도 해요. 무엇보다도 백수의 왕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유일한 짐승입니다. 개별 피지컬만 놓고 보자면 사자의 능력은 짐승 기준으로 보면 보잘것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나머지 6대 천왕의 다른 다섯 멤버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래요.

암사자가 물소 등에 올라타 등골을 가격하고 있다. 물소는 사자가 사냥 중에 목숨을 많이 잃는 위험한 먹잇감 중의 하나이다./Africa Wildlife Detective

우선 덩치부터 봅시다. 머리몸통길이는 2m에 이르는 우람한 몸집이지만(수컷 기준) 호랑이 중 최대종인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또는 백두산호랑이)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야생에선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사자와 호랑이가 1대1로 맞짱을 뜨면 십중팔구 호랑이가 이기고, 사자가 나가떨어져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지는 까닭입니다. 어쭙잖게 나무에 오르는 재주가 있긴 하지만, 제 몸뚱아리만한 먹잇감을 사냥해 물고 휙휙 올라가는 표범의 능력에는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내달릴 때 순간 최고속도는 시속 80km까지 찍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분야의 최강자인 치타(시속 110km)와는 비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평지를 내달리며 먹잇감을 몰아가는 단조로운 사냥법을 보면 속이 터질때도 있죠. 고산지대부터 정글 늪지대까지 지형지물을 활용하며 신묘막측한 사냥법을 선보이는 퓨마·재규어의 다채로운 기술에 비하면 ‘핵노잼’입니다.

굶주린 사자가 강에서 수달을 사냥하는 드문 장면이 포착됐다. 사자는 사실상 먹잇감을 가리지 않는다./Earthtouch News Network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자에 대해서는 ‘가장 진화한 고양잇과 맹수’라는 타이틀에 학계의 이견이 없습니다. 비록 개별 피지컬 능력면에서는 절대파워가 딸릴지언정 살아가는 형태 만큼은 선진화·차별화됐다는 것이죠. 사자가 진화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암수의 구별이 뚜렷하다는 거예요. 덥수룩한 갈기를 두른 수컷과 밍숭밍숭한 머리를 가진 암컷… 사자처럼 한눈에 암수를 구분할 수 있는 경우가 고양잇과 맹수 중엔 없습니다. 이처럼 암수의 뚜렷한 구분은 고릴라·오랑우탄처럼 고도로 지능이 발달한 유인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물론 그 정점에 있는게 사람일테고요.

사자가 얼룩말을 쓰러뜨린 직후의 모습. 얼룩말은 사자가 가장 즐기는 사냥감으로 꼽힌다./Lion Recovery Fund

이렇게 확연히 외모가 다른 암수에겐 성별에 따른 역할이 확실하다는 건 ‘동물의 왕국’을 통해 익히 알려진 바이죠. 생각했던 것보다는 보잘것없는 신체 능력을 가진 사자의 최대 생존 무기는 사회성이에요. 그 어느 고양잇과 맹수에게서도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고도로 체계화된 무리 생활 본능 덕에 동급 최강으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암사자들이 전담하는 협업 사냥의 과정은 매혹적입니다. 사냥꾼은 바람이 불어가는 쪽의 풀숲이나 덤불에 꼼짝 않고 숨어있습니다. 그 사이 바람잡이가 먹잇감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겁을 줘요. 사냥꾼과 먹잇감의 거리가 30m안쪽으로 좁혀지면 사냥꾼은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로 냅다 질주해 먹잇감을 거꾸러뜨립니다.

심바를 연상케 하는 갈기가 덥수룩한 수사자가 하이에나를 물어죽이고 있다. 사자는 먹잇감을 다투는 하이에나를 보는대로 죽이려는 습성이 있다./Latest Sightings

통상 암컷들이 사냥을 해서 백수의 왕의 자비로움으로 먹잇감의 숨통을 끊어놓으면 놀고먹던 수컷이 갈기를 휘날리며 나타나 야들야들하고 쫀득한 내장부터 먹어치우고, 다시 암컷과 새끼들이 남은 피와 살점과 고기를 먹은 뒤 그래도 남은 것들은 스케빈저들(하이에나·대머리수리·산미치광이 등)이 처리하는 게 공식처럼 알려져있는데요. 공식은 공식일 뿐 수많은 ‘그때 그 때 달라요’들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실제 사냥의 모습에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냥의 통념과 다른 장면도 등장합니다. 어느 사냥꾼 짐승이 그렇듯 사자의 사냥도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이런 낮은 성공율은 사자로 하여금 조바심을 내게 하면서 횡액을 자초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곤 해요. 다음에 보실 동영상(latest sightings facebook)처럼요. 우선 동영상을 보실까요?

한 마리는 일격을 준비하고 한 마리는 바람을 잡는 암사자 특유의 협업 사냥 매커니즘이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이들은 서투르고 무식하게 용감했습니다. 더구나 사냥감이 ‘풀뜯는 괴수’ 중 하나로 꼽히는 물소였다면 더욱 신중하고 진중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바나의 삶에서 ‘자칫’이란 없습니다. 실패는 죽음이에요. 퇴로를 차단당한 암사자 한마리가 물소 떼 안에 갇힙니다. 그리고 처절한 복수의 의식이 시작됐어요. 수백마리의 물소들이 사자를 날카로운 뿔로 꿰고 들이받고 공중으로 내던지며 켜켜이 쌓여있던 종족의 응어리를 발산합니다. 받히고 밟히며 사자의 몸뚱아리가 곤죽이 됩니다. 뼈가 부서지고 속이 터지고 뭉개지면서 불소의 뿔과 발길질에 종내에는 카페트처럼 납작해지겠죠. 그래도 눈만은 치켜떠있을 것이고, 양쪽 귀로 분노한 물소들의 쩌렁쩌렁 음메소리를 들을 거예요. 해석하자면 이렇겠죠. “죽어라 이 사자X아~ X져라. 이 사자 XX야.” 풀을 뜯어먹고 사는 초식짐승에게 이 죽음은 실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식자의 종족 번성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는 의미, 그리고 무리의 단합을 굳건히 다지는 신성한 역할의 의식도 충분히 했을 것으로 보여요. 이처럼 사바나에서 일어나는 ‘약자의 일격’은 의외성과 함께 복수의 서사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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