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90] 고흥 가리맛조갯국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2024. 5.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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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맛조개를 뽑기 위해 갯벌로 들어가는 어민

1일과 6일이 동강장이다. 인근 벌교장이나 과역장이 더 크지만, 동강장이 연휴와 시간이 잘 맞았다. 어디나 오일장은 아침 장이다. 특히 농번기철에는 장꾼이나 주민들이나 일찍 장을 보고 점심 무렵이면 파장 분위기다. 오이, 고추, 가지 모종까지 몇 개 사서 나오다 어물전에서 가리맛조개를 발견했다. 오뉴월에 가리맛조개 맛을 아는 사람은 지나칠 수 없다. 게다가 여자만 펄밭에서 뽑아온 것들이라니. 가리맛조개는 캐는 것이 아니다. 호미도 삽도 무용지물이다.

가리맛조개를 뽑는 모습

펄배를 타고 들어가 조개 구멍에 얼굴이 닿을 정도로 팔과 어깨를 집어넣어 뽑는다. 산란을 앞둔 지금이 맛이 좋다. 조개는 물이 들어오면 표층으로 입수관을 내밀어 부유물을 여과해 섭취하고 출수관으로 물을 뱉어낸다. 이 과정을 통해 여자만 바닷물을 정화시키는 일을 한다. 참꼬막은 생산량이 크게 줄었지만, 가리맛조개는 여자만에서 그나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어민들은 가리맛조개를 뽑으러 갈 때는 간단한 끼니를 준비한다. 조개를 뽑다 말고 점심을 먹겠다고 펄밭에서 나올 수 없다. 그렇다고 밥과 찬을 갖추고 밥을 먹을 수 없다. 미숫가루를 탄 물을 얼리거나, 떡이나 빵이면 충분하다. 비닐봉지에 꼭 싼 끼니를 펄배 위에 올려두고 간단하게 해결한다. 물도 맘껏 먹을 수 없다. 바다가 허락한 시간에 맞춰 인간의 시간을 거스르며 일을 한다. 많이 뽑을 때는 몸무게보다 2·3배 무거운 가리맛조개를 펄배에 싣고 나온다. 물 빠진 갯골을 따라 무거운 펄배를 밀며 나오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세척장에서 가리맛조개를 깨끗하게 씻고 크기별로 나누어서 상인에게 넘겨야 끝난다.

가리맛조개찜

가리맛조개는 찜, 구이, 국, 회무침에 잘 어울린다. 다만 조개류가 그렇듯이 하루 정도 해감을 해야 한다. 동강장에서 구입한 가리맛조개를 찜기에 올려 살짝 익혔다. 조가비가 입을 열자, 불을 끄고 꺼내 살을 발라냈다. 조갯살만 아니라 국물을 이용하기 위해 찜기를 사용했다. 찜기 밑으로 빠진 육수에 부추와 마늘을 다져 넣은 후 살짝 끓였다. 가리맛조갯국이다. 조갯살은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육즙은 재첩보다 담백하고 맛이 깊다. 백합이 조개의 귀족이라면, 가리맛조개는 조개 맛의 황제다.

가리맛조갯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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