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일병 사망 원인도 왜곡”…증거 가득한데

김애린 2024. 5. 14.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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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주] [앵커]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획보도, 두번째 순서입니다.

5·18조사위는 80년 5월 당시 계엄군 장갑차에 의해 숨진 것으로 확인된 고 권용운 일병의 사망 원인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공개된 보고서 안에서조차 두 개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애린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었던 1980년 5월 21일 오후.

당시 도청 앞에 배치됐던 11공수 62대대 이 모 대대장이 그린 계엄군 부대 배치도입니다.

금남로 가장 일선에서 시위대와 맞서고 있었던 부대는 11공수여단 61대대와 62대대였고, 그 뒤 15미터 분수대 앞에는 63대대가, 분수대 뒤 도청 앞은 35대대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대대장은 광주사태체험수기에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화염병이 날아와 장갑차에 불이 붙자 장갑차를 후진시키라고 했고, 뒷걸음치던 장갑차에 어느 병력 하나가 숨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썼습니다.

사실상 62대대를 지휘했던 대대장이 자신이 후진시킨 장갑차에 의해 권 일병이 사망했다고 인정한 셈입니다.

[이재의/5·18기념재단 연구위원 : "(이 중령이) 장갑차를 뒤로 가라고 지시했던 사람이거든요. 계엄군의 논리가 허위이고 조작됐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최초의 문서라고 할 수 있죠."]

앞서 광주고등법원도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항소심에서 "권 일병이 시위대 장갑차에 의해 숨졌다는 내용은 허위"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5·18 조사위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조사위는 여러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며, 권 일병을 숨지게 한 장갑차가 시위대의 것인지, 계엄군의 것인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결론 내렸습니다.

반면, 또 다른 조사 사건인 '발포 경위' 보고서에서는 권 일병이 계엄군 장갑차에 의해 숨졌다고 밝혔습니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 조사위 스스로 두 개의 결론을 내놓은 겁니다.

조사위는 종합보고서에서 바로잡겠다고 말합니다.

[허연식/5·18조사위 조사2과장/지난달 : "권용운 일병은 분명히 저희 위원회에서 조사결과보고서가 잘못된 거 인정합니다. 이거 반드시 수정할 겁니다."]

하지만 이미 누리집을 통해 공개된 조사결과보고서는 수정도, 폐기도 불가능해 결국 왜곡된 기록으로 남게됐습니다.

KBS 뉴스 김애린입니다.

촬영기자:신한비/영상편집:이성훈

김애린 기자 (thirst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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