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착한 사람이 지닌 힘
‘착하면 손해 본다’는 게 통념이다. ‘착하다’는 말이 자기주장 없이 남의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한다는 뜻으로 흔히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면의 욕구를 무시한 채 부모의 기대에만 부합하려고 애쓰다 보면 성인이 되어 병리적인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가 더해져서, ‘착함’은 더 이상 추구할 덕목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어휘사 연구에 의하면, ‘질서정연한 모양이나 동작’을 가리키는 ‘착’이라는 만주어가 17세기 후반 우리말에 유입되어 ‘분명하고 바람직한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는 형태소로 쓰이기 시작했다. ‘착하다’는 18세기 중엽 <주해 천자문> 등에서 ‘선(善)’의 풀이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善’이라는 한자가 ‘말다툼의 옳고 그름을 판정해 주는 양’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처럼 ‘착하다’의 본디 의미 역시 ‘옳다, 훌륭하다’ 등이었다. 현대의 국어사전에 ‘착하다’의 뜻에 ‘바르다’가 들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얼마 전 방영된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다른 내용들에 비해 사소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김민기씨가 연천 지역에 농사지으러 갔을 때 함께했던 동네분들의 회고담이 나에게는 유독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참 착하고 좋았지. 여기 사람들이 다 좋아했어, 김민기씨를.” 알량한 지식으로 판단하고 가르치려 들었다면 듣지 못했을 표현이다. 그저 말없이 같이 일하고 같이 먹으면서 따뜻하게 함께했기에, 농사라곤 지어보지 못한 서생이 그들과 그렇게 어울릴 수 있었을 것이다.
다들 능력을 내세우고 높은 봉우리에 오르려 애쓰는 세상에서,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를 향해 묵묵히 걸어온 뒷것의 삶.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기에 견지할 수 있었던 착함, 그것이 지닌 무한한 힘을 떠올린다.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정말 착한 건 바른 거라는 사실, 그리고 바로 그게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의 삶에서 본다. 한없이 착해서 진정으로 강한 분, 김민기님의 건강을 기원한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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