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스타강사 삽자루’ 추모 물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13년 주말판에 한국의 억대 재벌 강사 이야기를 실었다. 탐사보도 기자 아만다 리플리가 한국의 사교육 실태를 다룬 책을 소개하는 이 기사는 한국의 스타강사들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에는 연 수입 40억원의 스타강사가 있다. 교사들과는 달리 그는 강의 능력에 따라 돈을 받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한 입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학원 강사는 동아줄 같은 존재다. 가장 인기 있는 강사를 가리키는 ‘1타 강사’는 국민 대부분이 들어본 보통명사다. 1세대 1타 수학 강사 우형철씨는 ‘삽자루’라는 수강 기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삽자루는 숙제를 안 하는 수강생들에게 삽자루를 휘두른다고 해서 붙은 별칭이다. 우씨는 쉬운 강의법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무료 스키캠프를 열고, 필기노트를 보내면 무료 수강권을 제공하는 등 ‘통 큰 서비스’로도 유명했다.
우씨는 2017년 자신이 속한 입시업체가 ‘댓글 알바를 고용해 경쟁 학원이나 강사를 깎아내리는 글을 올리고, 검색순위를 조작한다’고 밝힌 후 전속계약을 해지했고, 송사에 휘말리며 어려움을 겪었다. 법정 다툼 중 쓰러져 투병하던 그가 지난 13일 세상을 떠났다.
‘사이버 조문관’에는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제자라고 소개한 이들은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수학 공부했다” “댓글 알바, 조작, 범죄가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등의 글을 올렸다. 학생들은 그를 ‘강사’가 아닌 ‘선생님’으로 생각한다.
학원가에 우씨 같은 ‘스승’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별난 강사 취급을 받은 게 현실이다. 학교 교사는 사교육 강사의 보조 매니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성적만 오를 수 있다면 삽자루보다 더 험한 연장을 휘둘러도 용인되는 세상에 한국의 공교육이 팽개쳐져 있다.
교사들의 사기도 최악이다. 15일 스승의날을 앞두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교사 10명 중 2명 정도만 ‘다시 태어나도 교직을 선택하겠다’고 응답했다. 현장에선 학생인권·교권 보호를 두고 갑론을박 중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이래저래 우울한 스승의날이다. 우씨의 발인도 이날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카네이션 한 송이를 모든 스승에게 바친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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