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칼럼]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건가

김명수 기자(mskim@mk.co.kr) 2024. 5. 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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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연령대별 선호도가 공개됐다.

그들의 자식 세대이자 세금 부담을 떠안는 30대도 2안에 찬성표를 많이 던진 연령대다.

자신들이 그동안 부은 막대한 보험료를 생각하면 연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은 40·50대의 선택은 이해할 만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총선 때 제시한 '전 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도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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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 부담 아랑곳 않고
20대마저 퍼주기 연금 선호
野는 현금살포 법안 쏟아내
전국민 '공돈 중독'의 길로
나라 빚 증가세 너무 가팔라
위기 닥치면 한방에 훅 간다

지난달 말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연령대별 선호도가 공개됐다. 그 결과는 의외였다.

국회 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 시민대표 중 최고령층인 60대. 이들은 재정 안정을 추구하는 2안에 찬성표를 더 많이 던졌다. 표결에 참여한 한 60대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덜 주는 방안을 택했다"고 한다. 60대는 자식의 대학 졸업은 물론 결혼까지도 대개 부모 책임이라고 여기는 세대다. 이미 보험료 납부가 끝난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의 자식 세대이자 세금 부담을 떠안는 30대도 2안에 찬성표를 많이 던진 연령대다. 2안은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2%로 올리고, 소득대체율(보험료 납부기간 중 평균 소득 대비 수령 연금소득 비율)은 40%로 유지하는 방안이다. 쉽게 말해 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수령 연금은 늘리지 않겠다는 방안이다. 2안은 기금 고갈 시점을 2063년으로 현행 제도보다 8년 정도 늦추면서 2093년까지 기금 누적 적자를 1970조원이나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2안은 전반적으로 1안보다 인기가 없었다. 60대와 30대를 제외한 40·50대와 20대가 모두 '조금 더 내고 많이 더 받는' 1안(보험료율 13%로 인상, 소득대체율 50% 상향)에 찬성표를 던졌다. 2093년까지 기금 누적 적자가 702조원 더 늘어나는 안이다.

자신들이 그동안 부은 막대한 보험료를 생각하면 연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은 40·50대의 선택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20대가 재정 안정보다 소득을 중시한 1안에 찬성표를 더 많이 던진 점은 특이하다. 사연을 알아보니 "결혼 생각도 없고 자식을 낳을 생각도 없는데, 굳이 후세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결국 전 연령대의 표결을 합한 결과는 재정 안정보다는 소득을 중시한 1안이었다. 거위의 배를 갈라서 알을 꺼내 먹자는 것이다. 이런 심리를 가장 잘 아는 더불어민주당도 1안을 지지한다. 1안에 반대하는 국민의힘과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개혁은 물 건너갈 판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총선 때 제시한 '전 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도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조치다. 소요 예산만 13조원. 돈 뿌리는 도관을 만들어 전 국민에게 중독성 마약을 투여하는 행위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수요 대비 초과 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사주면 연평균 1조원 소요된다.

선거 때마다 이렇게 퍼주기 선심정책을 경쟁적으로 추진한다면 나라 재정은 어떻게 책임질 건가. 지난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면서 국가채무는 400조원이나 늘어났고 지금도 그 여파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 1126조7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50.4%를 기록했다. 문 정부 초반인 2017년말 이 비율은 36%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주요8개국(G8) 가운데 일반정부 부채비율 증가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로 꼽았다. 2020년부터 2029년까지 이 비율이 10.7%포인트 급증할 것으로 분석한 것.

그래도 다른 선진국 대비 재정 투입 여력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이나 일본, 영국은 국가채무 비율이 100%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나라와 다르다. 비교 대상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여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국가채무 비율을 지난해 43.3%까지 끌어내렸다. 아일랜드는 재정 불안의 최후를 알고 있다. 금융위기나 외환위기가 왔을 때 재정이 튼튼하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다. 재정준칙을 도입하거나 강화한 이유다. 우리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재정이 튼튼하지 않았다면 조기에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 증가 속도는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다. 지금은 거위의 배를 가를 때가 아니다.

[김명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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