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금고에 파수꾼은 없다 : 새마을금고 1500억 불법대출의 전말

김지우 2024. 5. 1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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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임직원의 일탈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시중은행에서 수백억 원대 횡령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금융당국이 금융사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했지만, 크고 작은 금융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다. 금융 산업의 근간인 신뢰가 흔들린다.

1970년대 설립 이래 서민의 대표 상호금융기관으로 자리 잡은 MG새마을금고는 최근 금융계 사고의 정점이다. 뇌물수수 비리로 중앙회 회장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부실 대출 문제로 일부 지점에서 뱅크런 사태가 발생했다. 지점 통폐합, 연체율 상승 등으로 서민 금융소비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되고 있다.  

뉴스타파는 최근 경찰 수사 등을 통해 드러난 새마을금고 1,500억 불법대출 사건을 추적했다. 불법대출의 수법을 보여주는 내부 자료와 범행 가담자들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 등을 입수해 분석했다. 또한 사건 관련자들도 두루 만났다. 

그 결과, 이 사건은 특정 사채업자와 일부 직원의 일탈이 만든 일회적 범죄가 아니었다. 신뢰보다 돈벌이를 우선하며 금융계 전반이 덮어두었던 구조적 부실이 문제였다. 

'명의 빌려주면 월 200만 원' 사채업자의 함정

▲ 경남 창원시 양덕동 KC월드카프라자. 지하 2층부터 지상 7층까지 연면적 3만 평에 이르는 규모다.

경상남도 창원시 양덕동에 있는 KC월드카프라자는 영남권 최대 규모의 중고차 매매 단지다. 지하 2층부터 지상 7층까지 총 3만 평에 이른다. 2021년 12월 준공됐지만 공실이 많았다. 전체 152개 사무실 중 75개 사무실 수분양자가 사업 중간 이탈하면서 시행사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자금 상환에도 차질이 생겼다. 시행사는 추가 자금 조달을 하려 했지만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면서 자금조달 시장이 얼어붙어 있었다.

시행사 측은 결국 한 사채업자를 만났고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자신이 잘 아는 새마을금고가 있으니 비어있는 75개 사무실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자는 것이었다. 사채업자는 명의를 빌려줄 사람만 구하면 된다고 말했다. 

절박한 사정 탓에 시행사는 사채업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채업자가 60명, 시행사 측이 15명의 명의 대여자를 모았다. 시행사 측이 모은 명의 대여자는 시행사 측 임직원과 친인척이었다. 사채업자는 다른 대부업자나 사채 고객들의 명의를 빌렸다. 

취재진이 만난 사업가 양 모 씨는 사채업자에게 명의를 빌려준 60명 중 한 명이다. 양 씨는 본래 사채업자의 고객이었다. 사업 자금을 빌리러 온 양 씨에게 사채업자가 제안을 했다. 명의를 빌려주면 양 씨가 필요한 돈도 해결하고 매달 명의 대여료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양 씨는 사채업자와 계약서를 썼다. 대출의 원리금 상환은 사채업자 측이 맡고, 명의 대여료 명목으로 매달 200만 원씩 지불한다는 내용이었다. 1년 뒤에는 다시 소유권을 사채업자 측으로 넘긴다는 환매 조항도 있었다. 계약서 내용에 문제가 없고, 몇 달간만 명의를 빌려주면 된다는 말에 양 씨는 서명을 했다. 

▲ KC월드카프라자 명의대여 계약서. 갑(김ㅇㅇ 측 대부업자)이 200만 원을 지급하고 원리금 전액을 상환하겠다고 적혀 있다.

또 다른 명의 대여자 윤 모 씨도 사채업자 측 모집책의 제안으로 계약을 맺었다. 윤 씨는 지난해 3월 대출 서류 작업을 위해 청구동 새마을금고 2층을 찾았다. 사채업자와 새마을금고 지점장이 앉아 있었다. 지점장이 내주는 수십 장 서류에 이름을 적었다. 주요 내용이 빈칸인 전표도 있었다. 윤 씨는 새마을금고 지점장이 시키는 서류 작업이니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채 30분이 안 돼 서류 작업은 끝났다. 

대출 서류 작업은 2022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계속됐다. 총 75명의 명의로 718억 6,000만 원의 대출이 실행됐다. 빈 사무실 하나당 9억 6천만 원의 대출금이 나왔다. 대출 이자율은 11.45%, 월 이자로 치면 900여만 원이었다. 

처음 석 달은 문제없이 지나갔다. 거액의 대출금이 집행됐지만 명의 대여자들은 대출 통장조차 보지 못한 상태였다. 문제는 그다음에 터졌다. 사채업자가 약속했던 원리금 상환이 중단됐다.

뒤늦게 확인한 대출금 통장에는 돈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PF 상환금과 대출 이자, 사채업자 몫 수수료 등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지난 3개월간 상환된 원리금도 사채업자 측이 대납한 것이 아니라 해당 통장에서 지출된 것이었다. 사기였다. 

▲ 불법대출에 활용된 KC월드카프라자 사무실. 현재까지 공실 상태다.

명의 대여자 대부분은 월 900만 원에 이르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사태가 불거진 이후,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원금 상환까지 이들에게 독촉하기 시작했다. 사업가 양 씨는 당장 사업이 좌초되는 것을 막으려고 7달 치 이자를 직접 냈지만 지금은 자포자기한 상태다.

명의 대여자가 떠넘겨 받은 KC월드카프라자 사무실은 여전히 공실이다. 인근 부동산 업자는 채권자 새마을금고가 임대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건물은 단전 상태다. 공실인 사무실이 부담해야 할 전기료와 관리비를 시행사와 입점 상가들이 떠안고 있다가 결국 3개월 치를 연체했다. 상가운영위원회 총무는 “정상적으로 돈 내고 분양받은 우리들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사채업자를 '작은 아버지'로 모신 금융인들

KC월드카프라자의 공실에서 700억 원대 불법 대출을 일으킨 사채업자의 이름은 53세 김ㅇㅇ이다. 뉴스타파는 판결문을 통해 그의 지난 행적을 확인했다. 

김 씨는 20대 시절 고물상을 운영했다. 30살이 된 2002년 사업이 실패했고 신용불량자가 된다. 그때부터는 그는 줄곧 범죄의 길을 걸었다. 신분증이나 인감증명서를 훔쳐 통장과 휴대폰을 만들고, 이걸 토대로 대부업체 등에서 대출을 받았다. 나중에 드러난 사기 피해액은 11억 원이 넘었다. 허위 세금계산서 수취로 48억 원대 탈세를 방조했다는 혐의도 드러났다. 지난 2016년 그는 13개 죄목으로 징역 6년형, 벌금 12억 원을 선고받았다.    

출소 이후에 그는 사채업자로 활동했다. 2022년 레고랜드 여파로 돈줄이 막힌 위기의 시행사들이 주된 고객이었다. 김 씨는 청구동 새마을금고 지점장과 두터운 관계를 맺으며 해당 새마을금고의 대출을 알선했다. 창원 KC월드카프라자의 시행사와 접촉한 것도 이때쯤이다. 

중개한 대출금의 10%는 김 씨가 떼어갔다. 경찰에 따르면, KC월드카프라자 불법대출 사건에서 김ㅇㅇ이 챙긴 돈은 85억 원이 넘는다. 부동산 감정가를 부풀린 '업 계약서'부터, '바지 차주'를 이용한 차명 대출, 그리고 거액의 불법 알선수수료 수수까지 온갖 불법 수단으로 부당 이득을 챙겼다. 

일개 사채업자에 불과한 김ㅇㅇ은 어떻게 금융사들의 내부 통제망을 넘나들며 거액의 금융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배경에는 김ㅇㅇ의 범죄를 도우며 이익을 챙긴 다수의 전문직·금융인들이 있었다.

▲ 김ㅇㅇ 일당의 범행 개요. 청구동 새마을금고와 무궁화신탁 직원 등이 범행을 도왔다. 

김ㅇㅇ과 청구동 새마을금고는 감정평가 기관을 바꿔가며 KC월드카프라자 사무실의 감정가를 높였다. 2022년 분양가가 7억 5천만 원이었지만 감정가는 12억 5천만 원으로 평가됐다. 

원래 새마을금고는 ‘감정평가 기관 무작위 추출 시스템'을 이용해 감정평가 기관을 선정한다. 담보 부동산 주소를 입력하면 연계 기관이 무작위로 뜨는 방식이다. 시스템 상 같은 주소는 한 번밖에 입력할 수 없다. 감정평가 기관을 미리 섭외해 감정가를 부풀리기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김ㅇㅇ 일당은 간단한 수법으로 이러한 제약을 피했다. 온점과 띄어쓰기를 추가해가며 김ㅇㅇ 측과 가까운 감정평가 기관이 나올 때까지 같은 주소지를 계속 시스템에 입력했다. 취재진은 해당 감정평가사들에게 접촉했지만 취재를 거부했다. 

▲ 전 모 지점장이 현금을 봉투에 담아 청구동 새마을금고를 빠져나가는 CCTV 장면 (출처 : 경기북부경찰청)

김ㅇㅇ 범행의 핵심 공모자는 청구동 새마을금고의 지점장 전 모 씨다. 명의 대여자들의 서류 작업을 맡았던 당사자다. 해당 새마을금고의 최고 결정권자가 사실상 김ㅇㅇ의 일당으로 가담하면서 서민 금고의 내부 통제망은 사실상 무방비가 됐다. 

전 씨는 부풀려진 감정평가 기관의 감정가를 받아 담보 인정 비율 최고치인 80%로 대출을 승인했다. 1년 가까이 공실이었던 사무실에서 각 9억 6천만 원의 대출금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또 차명으로 된 대출 통장들을 관리하며 각 통장에서 김ㅇㅇ 몫 알선료 1억 5천만 원씩을 떼어 전달하는 역할도 맡았다. 돈을 빼돌리기 위해 서류 작업 당시에 미리 서명을 받아놓은 '백지 출금 전표'를 이용했다. 

직원이 없는 밤에 인출한 현금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는 전 씨의 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이 경찰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르면, 5천만 원 이상의 현금 인출은 금융정보원에 보고해야 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점장인 전 씨가 보고를 막았기 때문이다.

대가로 전 씨는 김ㅇㅇ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 김ㅇㅇ은 전 씨에게 고급 외제차를 제공하고, 전 씨 아내에게 가게를 차려줬다. 가족 여행 경비를 지급하는 한편, 대출팀 직원들에게 술자리를 제공하며 관계를 유지했다. 

▲ 청구동 새마을금고. 폐업 후 현재는 신당1.2.3동 청구지점으로 바뀌었다.

일당은 담보신탁대출 방식을 악용했다. 담보신탁대출은 부동산 소유권을 신탁사로 이전하고 신용도를 보강해 대출을 받는 방식이다. 신용도가 낮아도 대출이 가능하고 한도도 크다. 신용도가 낮은 명의 대여자도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알선 수수료도 높게 받을 수 있어서 김ㅇㅇ 일당에게는 적격이었다.

이를 위해 신탁사 직원도 가담했다. 무궁화신탁 IB 사업부 소속 김 모 대리는 이러한 담보신탁대출 방식을 통해 김ㅇㅇ 일당의 부실 매물을 신탁사가 관리하는 우량 담보로 둔갑시켰다. 취재에 따르면, 김 대리는 김ㅇㅇ이 가져온 담보 부동산 매물에 대한 현장 실사를 하지도 않고, 채무자의 상황 능력도 검증하지 않았다.

2023년 3월 KC월드카프라자 대출 이후, 청구동 새마을금고의 지점장 전 모 씨가 사내 감사를 받게 되면서 김ㅇㅇ 일당의 돈줄이 막힌다. 이때부터 김 대리는 전 씨를 대신해 대출기관을 물색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ㅇㅇ이 사채 고객의 인적 사항을 김 대리에게 보내면, 김 대리가 대출기관을 연결해 회신하는 식이었다. 김 대리는 매일 저녁 9시 진행 상황을 김ㅇㅇ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김 대리 역시 김ㅇㅇ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김ㅇㅇ은 김 대리에게 수차례 최고급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법조계, 금융계 고위 인사를 동석시키고 김 대리에게 승진과 특혜를 약속하기도 했다. 김 대리가 저지른 횡령 사건을 덮는 일도 김ㅇㅇ이 도왔다. 김 대리는 본인이 관리하던 고객 자금 9억 원을 빼돌렸다가 적발된 일이 있었다. 김 대리는 김ㅇㅇ을 '회장님', '작은 아버지'라고 불렀다.

전국 부동산에서 1500억 불법대출... 피해는 금융소비자에게

경찰은 지난 5월 8일 KC월드카프라자 사건에 가담한 금융인,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 등 총 76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사채업자 김ㅇㅇ과 청구동 새마을금고 지점장 전 씨 2명은 구속 기소됐다. 수사는 진행 중이다. 이들이 공모한 불법대출 범행은 창원 KC월드카프라자 건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입수 자료를 토대로 김ㅇㅇ 일당의 불법대출을 일어난 부동산 매물들을 조사했다. 일당은 창원 KC월드카프라자 718억 원을 비롯해 이태원 고급빌라 147억 원, 평택 다세대주택 66억 원, 용인 오피스텔 11억 원 등 전국 각지의 부동산에서 불법 대출을 벌였다. KC월드카프라자 사례처럼 김ㅇㅇ의 사채업을 매개로 연결된 부동산들이었다. 

▲ 이태원 고급빌라 관련 새마을금고 9개 지점의 공동대출 내역. 채무자 전OO는 김ㅇㅇ의 가족이다.

불법 대출이 이뤄진 대출기관도 청구동 새마을금고만이 아니었다. 147억 원이 불법 대출된 이태원 고급빌라 건의 경우, 총 9개 새마을금고가 공동대출을 일으켰다. 공동대출은 복수의 대출기관이 동일한 조건으로 대출을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김ㅇㅇ은 이 대출 건에서 자신의 가족 명의를 이용했다. 그의 가족은 개인회생 절차에 실패했을 정도로 신용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해당 대출기관 어디에서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김ㅇㅇ 일당이 받은 불법대출 총액은 총 1,496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경찰이 발표한 718억 원보다 2배 이상 큰 규모다. 이 중 1,100여억 원은 미회수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불법 대출이 일어난 부동산 대부분은 압류돼 공매에 넘어간 상태다. 공매가 진행 중인 일부 매물은 유찰을 거듭하고 있어 채권자 새마을금고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큰 피해는 새마을금고를 이용하는 서민 금융소비자들이 겪었다. 약 1,100억 원의 대규모 불법대출  사고가 발생한 청구동 새마을금고는 아예 법인 해산 후 인근 새마을금고에 흡수 합병됐다. 40년 이상 새마을금고 해당 지점을 이용해 온 인근 상인들은 지점 통폐합 소식에 허탈해했다. 인근에서 50년 넘게 잡곡을 팔아온 서 모 씨는 “일평생 자식 용돈부터 잔돈까지 맡겨온 이웃집 같은 곳"이라며 "(부실 대출) 같은 것은 의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 2022년 10월 8.01%, 2022년 12월 6.1%, 2023년 2월 5.5%, 세 차례 예금특판이 이뤄졌다.

서 씨는 최근까지 해당 새마을금고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최대 연 8%의 높은 금리를 적용한 예금 특판 때문이었다. 취재진의 확인 결과, 실제 청구동 새마을금고는 2022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연 5.5~8.01% 특판 예금을 내놨다. 해당 시기는 김ㅇㅇ 일당이 연 11.45% 금리로 주선한 불법대출이 한참 이뤄지던 때였다.

당시 이 예금 특판 상품은 온라인상에서도 전국 최고 금리로 화제가 됐다. 청구동 새마을금고는 경영 평가 2등급(전체 9등급)을 받은 우량 점포라는 점도 홍보에 내세웠다. 이로 인해 2021년 말 735억 원이던 해당 점포의 자산 규모는 1년 만에 1,870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렇게 불어난 자산의 상당액 약 1,359억 원이 김ㅇㅇ 일당의 불법 대출금으로 지급하는데 충당됐다. 결과적으로 이 대출금이 대규모 손실로 처리되면서 해당 점포는 해산에 이르게 됐다.   

각각 10억 원대 미회수금이 발생한 나머지 7개 새마을금고도 경영난을 겪고 있다. 참여 금고 중 하나였던 청계 새마을금고는 동대문 신평화시장 상인들의 금고다. 신평화시장 오남식 회장은 “청계 새마을금고는 시장 건물 옥상에 있는 만큼 외부인이 이용할 일은 거의 없다”라며 “올해는 배당이 하나도 없어 이상하게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13억 원을 대출한 금남 새마을금고도 마찬가지다. 두 금고의 작년 연체율은 각각 7.93%와 12.02%로 새마을금고 평균 5.07%을 한참 웃돌았다.

▲ 청계 새마을금고는 신평화시장 5층 옥상 구석에 있다. 시장 상인이 아닌 일반인은 찾기 어려운 곳이다.

불법대출 사건을 주도한 김ㅇㅇ은 구속 상태에서 법률 대응 중이다. 김ㅇㅇ 측 변호인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애초에 김ㅇㅇ에게 원리금 상환 의무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담보신탁대출 과정에서 명의 대여는 원천적으로 무효이기 때문에 결국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이나 대출의 상환 책임은 어디까지나 명의 대여자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140억 원 규모의 수수료 송금 내역에 대해서는 청구동 새마을금고 지점장이 집행한 금융 컨설팅 비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입수한 사건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김ㅇㅇ은 무궁화신탁 김 모 대리와의 통화에서 “이 건 터지면 작은 아버지(김ㅇㅇ) 구속된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새로운 대출기관을 찾아서 청구동 새마을금고의 대출 흔적을 지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KC월드카프라자 명의 대여자 신분증과 인감증명서 등을 이용해 차명 대출을 하라고 지시하는 발언도 있다. 정상적인 계약이나 대출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이다.

또 하나의 공범 금융회사들, 이익 노리다 범죄 방치

김ㅇㅇ 일당은 2년에 걸쳐 서민 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를 '사금고'로 삼았다. 중견 부동산 신탁회사를 수하처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가 진행될 때까지 이들의 범행에 제동을 거는 금융사 내부통제 장치는 없었다. 사건의 일부를 포착하고도 내부의 문제 정도로만 덮고 지나치기도 했다. 

그사이 새마을금고 창구는 고금리 예금 특판으로 성황을 이뤘고, 신탁사는 신탁 부동산 매물을 늘리며 실적과 수수료를 챙겼다. 이 사건을 일부 임직원의 일탈 행위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새마을금고의 경우, 작년 7월 뱅크런 사태 이후 지배 구조의 취약성과 내부통제의 엉성함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새마을금고는 동일 법인·동일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다른 시중은행들과 달리 개별 지점이 독립 법인으로 운영되는 구조다. 다른 금융기관들이 금융위원회의 관리를 받는데 반해, 행정안전부 소관으로 되어 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지점의 최고 결정권자인 상무가 주도한 사건이라 사전에 발견하기 어려웠다”라는 입장이다. 새마을금고가 청구동 지점장에 대한 감사에 나선 것은 이미 대출 실행이 마무리된 지난해 3월, 명의 도용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부터였다.  

청구동 새마을금고의 경우, 독립 법인의 지배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불법대출 당시 청구동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18년에 걸쳐 감사와 이사장직을 겸직한 상태였다. 새마을금고법 19조에 따르면, 분기별로 1회 이상 금고 업무 집행 상태를 감사해야 하지만, 장기간 같은 자리에 있었던 이사장은 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실무 책임자인 지점장이 공범으로 가담하면서 이들을 견제할 감사 기능은 무력화됐다. 

▲ 새마을금고중앙회의 청구동 새마을금고 징계 공시.

낮은 징계 수위도 반복되는 새마을금고 부실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이 사건으로 청구동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직무 정지 6개월 처분을 받았다. 임기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사실상 징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점 대출팀 직원들에게는 감봉 2~3개월의 처분이 내려졌다. 취재 결과, 이들은 합병된 인근 새마을금고 지점으로 옮겨 계속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측은 “감봉 조치도 수위가 센 처벌”이라고 말했다.

청구동 새마을금고에서 시작된 불법 대출이 공동대출 방식을 통해 다른 새마을금고까지 전이됐지만, 제대로 대출 심사를 한 기관은 하나도 없었다. 공동대출에 참여한 새마을금고 측은 뉴스타파에 “주관 금고가 아닐 경우에는 채무자 상환 능력 등 보다는 담보 부동산을 검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자신 또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새마을금고중앙회 측은 “공동대출이라도 채무자 검증을 종합적으로 하는 것이 내부 규정”이라고 밝혔다.

신탁은 고객이 맡긴 부동산 등의 자산을 목적에 맞게 관리해 주면서 수수료를 받는 금융 서비스다. 중견 부동산 신탁회사인 무궁화신탁 역시 이번 사건을 통해 내부통제 부실을 드러냈다. 

무궁화신탁 소속 김 모 대리는 사채업자 김ㅇㅇ과 긴밀히 소통하며 자신의 회사에서 관리하는 부동산 정보를 김ㅇㅇ 측에 정기적으로 전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ㅇㅇ 일당이 차명 부동산을 마련해 오면 담보신탁대출로 연결해 주는 일도 100여 건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채무자의 상환 능력과 부동산 매물 현황은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다.

▲ KC월드카프라자 담보신탁대출 등기부. 75개 사무실 모두 청구동새마을금고가 우선수익자(대출기관)고 무궁화신탁이 수탁자로 되어 있다.

김 대리는 회사로부터 부당 영업 행위에 대한 징계를 받지 않았다. 김 대리와 함께 김ㅇㅇ 범죄에 명의를 빌려줬던 신탁사 동료들도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징계는 없었다. 신탁사는 이 건과 별건인, 김 대리의 횡령에 대해 면직 처리했다. 

김 대리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채무자를 검증하는 것은 신탁사 직원의 의무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신탁사는 실적이 중요하기에 브로커든 사채업자든 친하게 지낸다”라며 “계약 수가 100건도 되지 않는 KC월드카프라자 건은 회사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 사안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무궁화신탁 측은 “직원이 어디서 어떻게 계약을 따오는지 알 방법이 없다”라는 입장이다. 대출 실행 자체는 대출기관이 하기 때문에 신탁사가 별도로 직원에 대한 내부통제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궁화신탁의 현행 내부통제 기준은 금융투자협회에서 제공하는 예시안을 그대로 쓰고 있다. 금융투자협회는 해당 예시안이 “그대로 사용하는 걸 의도한 것이 아니다”라며 “각 금융사가 사정에 맞게 예시안을 변경해서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감독 기구 개편, 내부 통제와 처벌 강화해야”

이 같은 신탁사의 내부 통제의 공백은 금융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2022년 A 신탁의 직원은 사채업자의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546억 원을 횡령했다가 적발됐다. 해당 신탁사는 1년 넘게 횡령이 진행될 동안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B 신탁의 부실 담보신탁대출이 전세사기 피해로 이어졌다. 전세 임대인이 담보신탁대출을 이용해 대출을 받고 임차 보증금까지 챙겨 도망쳤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신탁사의 부실 심사를 주장하며 소송을 벌이는 중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이러한 담보신탁 관련 피해 상담 건수가 2018년 212건에서 2022년 354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현행 신탁법상 신탁회사에 대한 감독은 금융감독원 업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기검사 대상에서 제외되고, 특정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사후적으로 수시검사를 받는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감독국은 올해부터 금융회사 책무구조도 법이 시행된다고 밝혔다. 임원 개개인에게 영업 및 경영 관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책무가 부여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신탁사를 포함한 금융사 전반의 내부통제가 강화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다만 신탁사에 이 법이 적용되는 것은 2년 뒤인 2026년부터다. 

▲ 지난 4월 23일, 민변과 참여연대는 새마을금고 부실대출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안전부의 감사를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상호금융기관 감독 주체를 통일하고, 임직원이 내부통제 기준을 준수하도록 유인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마을금고법을 연구한 이상복 서강대 교수는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기구 일원화가 급선무라고 말했다. 현재는 새마을금고-행정안전부, 신협-금융위원회 등 감독 주체가 달라 규제가 느슨하다고 지적했다. 2015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이 통과됐지만, 정작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기관은 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정용건 전 사무금융노조연맹 위원장과 노미리 동아대 교수는 ‘강력한 사후 처벌’을 요구했다. 내부통제 시스템이 있어도 반복되는 금융사 임직원의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후 처벌이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동원 전 금융기관 내부통제 혁신 TF 위원장(성균관대 교수)은 더 이상 신탁사 직원의 일탈적 영업을 허용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ㅇㅇ 사건에 대해 “회사가 대리의 담보신탁 업무를 구체적으로 모른다는 것은 이상하다”라며 “개인의 일탈을 막기 위해서는 신탁사 역시 내부통제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뉴스타파 김지우 fellow_jw@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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