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조작에 사기" vs "가치 투자"…한국계 미국인 '빌 황' 재판

박신영 2024. 5. 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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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설립한 개인투자사 아케고스 캐피털 통해
총수익스와프(TRS)와 차액 거래(CFD)로 자산 5배 투자
주가 떨어지면서 마진콜 이어지자 디폴트 선언
크레디트스위스 55억 달러 손실 보며 UBS에 매각
미국 검찰 "빌 황, 주가 조작에 사기"
빌 황 측 "넷플릭스와 같은 성공 투자라 믿어"
사진=AP


한때 미국 월스트리트를 쥐락펴락하던 한국계 미국인 투자가 빌 황(한국명 황성국)이 사기 혐의 사건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됐다.

뉴욕 남부연방법원은 13일(현지시간) 형사 재판을 위한 본격적인 심리 재판에 들어갔다. 뉴욕남부지검은 지난 2022년 4월 아케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 설립자인 황 씨를 사기 등 혐의로 기소했다.

 투자손실로 크레디트스위스(CS) 등 무너져

아케고스 캐피털은 파생상품인 총수익스와프(TRS)와 차액 거래(CFD) 계약을 통해 보유자산 100억 달러의 5배가 넘는 500억 달러 상당을 주식에 투자했다.

CFD는 개인이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진입가격과 청산 가격의 차액만 현금으로 결제하는 장외파생 계약이다. TRS는 금융회사가 차입을 일으켜 대출해 주고 매매에 따른 익은 투자자가 가져가는 신종 파생상품이다. 투자자는 투자 자산을 보유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보유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증권사는 투자 수수료 혹은 이자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2021년 3월 23일 아케고스가 자금을 빌려 투자한 주식이 급락하자 황 씨에게 투자한 금융회사들은 현금을 추가로 요구했다. 펀드의 투자 원금에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될 경우, 이를 보전할 수 있도록 증거금을 더 요구하는 이른바 ‘마진 콜’이 발생한 것이다. 마진콜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아케고스는 결국 디폴트를 선언했다.

아케고스의 마진 콜 사태로 투자은행들이 입은 손실은 100억 달러에 달했다. 크레디트스위스(CS)는 55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본 뒤 파산 직전 자국 스위스의 경쟁사인 UBS에 인수됐다.

 美 검찰 “주가 조작”

아케고스가 마진 콜 사태 당시 집중 투자한 회사는 비아콤CBS, 디스커버리 등 미국 미디어 회사와 바이두, 텐센트뮤직, RLX 테크놀로지, GSX테크에듀 등 중국 회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아케고스가 총포지션 규모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TRS와 CFD를 활용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아케고스가 금융회사를 통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투자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주식의 가격이 내려갈 땐 금융회사를 통해 추가 매입을 하도록 해 손실을 헷지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재판을 맡은 알렉산드라 로스만 검사는 “아케고스가 스와프 거래를 통해 한 회사에 3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으며, 매도를 막기 위해 하루에 10억 달러의 매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모두진술에서 “황 씨가 위험을 감수한 것은 더 많은 돈과 성공, 권력을 원했기 때문”이라며 “커튼이 걷혔을 때 그의 사업은 ‘카드로 만든 집’이자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판사가 검찰에 황씨가 ‘수요를 부추겨 주가를 부풀린 뒤 갑자기 팔아서 돈을 버는(pump and dump) 전략’을 썼느냐고 물었을 때 앤드류 토마스 검사는 황씨가 ‘끝없이 사들인 후 과시하는(pump and brag)’ 쪽이었다고 설명했다.

 제2의 넷플릭스라 믿어

반면 황 씨 측 변호인인 배리 버크 변호사는 “그는 자신의 투자에 용기와 신념을 가졌다”며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사기 목적이나 주가조작 계획을 가진 게 아니라 투자 대상 주식의 가치를 믿고 투자한 가치투자자였다는 것이다.

버크 변호사는 “비아콤CBS와 기타 보유 주식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인한 비디오 스트리밍 및 기타 디지털 기술 붐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과거에 넷플릭스와 같은 성공적인 투자와 유사하다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버크 변호사는 또 황 씨가 뉴저지주 집에서 사치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으며, 평소 자신이 설립한 재단을 통해 자선 기부를 많이 해왔다고 소개했다.

황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2년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왔다. 이후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UCLA) 캠퍼스와 카네기멜런대 경영대학원(MBA)을 나와 2001년 헤지펀드 타이거 매니지먼트를 이끈 유명 투자자 줄리언 로버트슨에게 발탁됐다. 황 씨가 로버트슨의 도움으로 출범시킨 ‘타이거 아시아 매니지먼트’는 월가의 아시아 전문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로 성장했다. 하지만 2012년 홍콩 투자와 관련해 내부자 거래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결국 4400만달러를 지급하고 사건을 종결해야 했다. 이후 2013년 그는 개인 투자회사인 아케고스를 설립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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