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었다” ‘혼신의 죽음 연기’ 펼치는 동물들, 왜?

김지숙 기자 2024. 5. 1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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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죽은 척하고 있는 걷는잎개구리. 위키피디아 코먼스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Q. 이솝우화 ‘곰과 나그네’를 보면 곰을 만난 사람이 죽은 척을 해서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로 북아메리카주머니쥐는 포식자를 만나면 죽은 척을 해서 ‘주머니쥐인 척 하기’(Playing Possum)이라는 표현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다른 동물도 이런 행동을 하나요? 죽은 척은 왜 하는 건지, 실제로 적을 피하는 효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북아메리카주머니쥐는 위험에 처했을 때 죽은 척하는 걸로 아주 유명한 동물이죠. 주머니쥐는 적이 다가오면 입을 벌리고 쓰러지면서 죽은 척을 하는데, 때로는 혀를 빼물고 항문에서 고약한 냄새의 체액까지 분비합니다. 이때 호흡이 30% 정도 느려지고, 심장 박동 수도 느려져 최대 6시간까지 죽은 척을 지속한다고 하니 정말 ‘혼신의 연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독특한 필살기’를 쓰는 동물은 주머니쥐뿐이 아닙니다. 적을 피하기 위해 죽은 척 연기를 하는 동물은 곤충, 어류, 파충류부터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합니다. 과학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2021년 보도를 보면, 동물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음을 거짓으로 꾸며냅니다.

북아메리카주머니쥐는 위험에 처했을 때 죽은 척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상 당한 북아메리카주머니쥐가 죽음을 연기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코먼스

과학자들은 이런 행동을 ‘죽음 연기’(Death Feigning 혹은 Thanatosis), ‘강직성 부동’(Tonic immobility)이라고 부릅니다. 동물들은 대체로 적의 공격이나 포식을 피할 때 이런 행동을 하고, 일부는 짝짓기와 관련해 이런 전략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 죽음 연기가 관찰된 동물은 거미, 메뚜기, 개구리, 뱀, 야생오리, 상어와 기니피그, 토끼, 주머니쥐 등입니다.

동물들의 죽은 척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철저합니다. 최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대 연구진이 남유럽 국가 북마케도니아의 골렘그라드 섬에 사는 주사위뱀 수 백 마리를 관찰했는데요, 뱀은 단순히 죽은 척을 할 뿐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자신의 죽음을 더 효과적으로 속이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번 연구는 지난 8일(현지시각)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공개됐습니다.

적을 피하기 위해 죽은 척 연기를 하는 동물은 곤충, 어류, 파충류부터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유혈목이의 죽은 척. 위키피디아 코먼스

서유럽에서부터 중국 서부까지 넓게 서식하는 주사위뱀은 독이 없지만, 독사로 보이기 위해 머리를 납작하게 만들거나 몸을 부풀리고, 무는 등의 방어전략을 취해왔습니다. 또 주요 포식자인 새에게 잡혔을 때 죽은 척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이에 연구진은 뱀의 죽은 척이 적을 피하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뱀 263마리를 포획했습니다. 그런 뒤 뱀의 방어행동을 유발하기 위해 뱀의 뒤를 쫓거나 뱀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머리 뒤쪽이나 몸의 가운데를 움켜쥐는 등의 위협을 가하고 30초 동안 뱀의 행동을 관찰했습니다.

그러자 포획된 뱀의 대부분은 움직임을 멈추고 입을 벌린 채 사후강직이 일어난 것처럼 몸을 굳혔습니다. 또 절반은 진짜 동물들이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배설물과 분비물을 내뿜었고, 그것을 온몸에 묻혀 죽음을 연기했습니다. 나아가 10%의 뱀은 벌린 입안에 피거품을 무는 생생함까지 선보였습니다.

뱀은 왜 이렇게까지 죽음을 연기했던 것일까요. 빨리 도망쳐도 모자랄 순간에 꼼짝 않고 죽은 척하는 건 무모한 것이 아닐까요. 부카신 비엘리카 베오그라드대 박사과정생은 뱀의 이러한 생존 전략을 “고위험, 고보상 시나리오”라고 미국 뉴욕타임스에 설명했습니다.

주사위뱀의 죽음 연기. 입을 벌리고 혀를 빼물었을 뿐 아니라 10%의 뱀은 피를 토하는 모습도 보였다. 부카신 비엘리카/바이올로지 레터스 제공

이런 죽음 연기는 주로 성체 뱀들에게서 관찰됐는데,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배설물과 분비물을 뒤집어쓴 뱀은 그렇지 않은 뱀보다 죽음을 연기하는 시간이 평균 2초나 짧았습니다. 연구진은 포식자가 피나 배설물을 묻혀 거부감이 드는 뱀보다는 그렇지 않은 뱀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고, 그 사이 뱀들이 탈출할 기회를 얻어 왔을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비엘리카 박사과정생은 “사람에게 2초가 길지 않을 수 있지만 뱀이 포식자에게서 빠져나오는 것은 1초면 충분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탈출 전략’은 원하지 않는 짝짓기 혹은 성적 동종포식을 피하는 데에도 유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 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이 유럽산 산개구리의 짝짓기 행동을 관찰한 결과, 관찰 대상인 암컷 개구리의 33%가 짝짓기를 위해 몰려드는 수컷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연기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와 반대로 수컷 닷거미는 짝짓기 뒤 암컷에서 먹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온몸에 먹이를 잔뜩 붙이고 죽은 척을 합니다. 그런 뒤 어떻게 하냐고요? 수컷이 죽은 줄 알고 다가온 암컷이 먹이를 먹는 동안 기습적으로 짝짓기를 시도한다고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피거품을 무는 뱀도, 마지막 짝짓기를 위해 죽음을 연기하는 거미도 정말 놀라운 생존전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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