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관심 끌려고 ‘미확인 사실’ 사실인양 발표한 경찰
“딸 목소리와 같았다” 진술에 ‘AI 딥보이스’ 공표
“시선끌기 경쟁에 무리하게 의미 부여한 탓” 지적
경찰이 전화금융사기범을 검거한 뒤 “인공지능이 범죄에 이용됐다”고 거짓 발표해 물의를 빚고 있다. 검거실적을 언론에 부각하려고 무리수를 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오후 1시30분쯤 A씨(60대·여·부산 금정구)는 딸의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에서 “엄마, 친구 보증을 섰는데...친구가 연락 안 돼서 잡혀 왔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A씨는 곧장 은행으로 달려갔고 현금 2000만원을 인출했다.
이 모습을 수상하게 여긴 은행원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를 의심했고, 해당 여성에게 경찰 도움이 필요한지 물은 뒤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전화금융사기라고 확신하고 현금 수거책을 잡기로 했다.
한차례 접선 장소가 바뀐 뒤 현금 수거책 B씨(60대)가 모습을 드러냈고 현금이 오간 뒤 B씨는 곧바로 경찰에 체포됐다. 2000만원도 회수됐다.
경찰은 14일 이 사건을 ‘AI 보이스피싱 범죄’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AI 목소리 재연’ 영상까지 만들어 공개했다. 공개한 영상을 보면 ‘재연 영상’이라는 자막을 달았으나 자칫 AI가 표준말을 의도적으로 구사하려는 20~30대 여성의 부산사투리까지 구현했다고 느끼기에 십상이었다. 영상까지 만들어 검거실적을 홍보하려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나 범죄에 이용된 음성이 인공지능(AI)으로 흉내를 낸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전화를 받았을 때 녹음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딥보이스(인공지능이 흉내 낸 목소리)라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 “딸이 엄마에게 전화를 한적이 없고, ‘딸의 음성과 똑같았다’는 엄마의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인해 이날 오전 ‘AI로 딸 목소리 합성 보이스피싱범 검거’, ‘딸 목소리, 알고 보니 AI 이용 보이스피싱’ ‘딸 목소리 흉내 낸 AI 보이스피싱’과 같은 제목의 오보가 매체마다 쏟아져 나왔다.
한 경찰 간부는 “피의사실공표가 금지돼 있어 경찰의 검거실적이 과거보다 언론에 주목받지 않는 상황”이라며 “보이스피싱과 같은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예외로 하고 있어 이 같은 사건을 해결하면 뉴스에 나오기 위해 무리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기정 기자 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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