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친화적인 英도 처벌보다 벌금...중처법 반드시 유예돼야” [헤경이 만난 사람-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2024. 5. 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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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완화·노동개혁·세제개선
경제 재도약 경영환경 개선 필요
여야 ‘나라·경제 생각’ 같은 마음
중대재해 예방 집중이 실질효과
노동선진화 글로벌 표준 맞춰야
손경식 경총 회장은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동 선진화는 더이상 늦출 수 없는 중요한 과제”라며 “경총도 노동개혁추진단을 신설해 활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상섭 기자

대담 : 권남근 뉴스콘텐츠부문장 겸 산업부장

“국내 기업들이 혼자 문 잠그고 사업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에서 사업을 한다. 이렇게 전체가 한묶음으로 같은 배를 타고 있다.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서로 이해하고 지원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최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노동법제가 너무 경직돼 있어 마음이 무겁다”면서 국내 기업이 직면해 있는 어려운 경영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2월 회원사 만장일치로 네 번째 경총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동선진화와 노동개혁 중요성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확실성이 빠르게 증대되면서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출발점에서부터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경총이 국내 200개 기업 임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 10곳 중 9곳이 ‘급변하는 산업구조, 미래세대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노동개혁이 필수적’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 간 정쟁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경총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손 회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나라와 경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면서 “총선 당선자 분들을 한분씩 만나 경영계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해 나가겠다”고 했다.

특히 올해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기 시작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손 회장은 “미래 혁신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영세사업장의 경영 의지까지 꺾어버릴 수 있는 법안”이라고 유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손 회장과의 일문일답.

-최근 국내 경영계가 처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노동법제가 너무 경직돼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 전 세계가 지금 ‘어떻게 경제성장을 하느냐’, 이를 위해 ‘노사관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느냐’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기존의 관성적인 노동관계 속에서만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노동시장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많다. 경제 재도약을 위해 규제 완화, 노동 개혁, 세제 개선을 통해 경쟁국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반도체·인공지능(AI) 등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커 국가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산업인데, 노동시장이나 세제 등 경영환경이 이러한 산업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경총 회장으로서 올해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둘 것 인지 궁금하다.

▶4월 총선이 마무리됐다. 이제 모든 국민이 화합해 경제발전에 매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앞으로 노동시장 선진화와 산업재해 예방, 조세제도 개편 등에 역량을 집중하고 22대 국회에도 다양한 정책 건의를 할 것이다. 당선자분들을 계속 만나면서 경영계 입장을 전달해 가겠다.

다음달 국회가 개원하면 경총이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매우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 의원 가운데 131명(43.6%)이 새롭게 배지를 달았다. 이들의 총선 공약을 살펴보면 경제 활성화 방안보다는 노동계 요구를 반영한 내용이 많아 우려되는 지점이 있지만, 경영계의 의견을 적극 전달하겠다.

-1월 27일 시행된 50인 미만 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와 근로시간 유연화가 최근 주요 화두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응이 쉽지 않은 50인 미만 기업의 적용 유예를 요구할 것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여러차례 읍소했던 부분이다. 실제 소규모 사업장에 중대재해 문제가 생길 경우 경영자는 사법적인 절차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열심히 사는 ‘자영업 사장님’까지 범법자가 돼선 안 된다. 경영자가 구속돼 종업원이 직장을 잃게 되는 결과가 생겨서야 되겠는가.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그렇다. 이 법이 2022년 1월 시행되고 2년이 지났지만, 산업재해 예방 효과는 여전히 미비하다는 결과가 통계로 입증되고 있다. 법이 시행된 후 2022년 말 기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업장의 사고 사망자는 전년 대비 8명 증가(248명→256명)했고, 시행 2년 차인 지난해 말 사망자 수는 12명 감소(256명→244명)에 그쳤다. 2021년 대비 2년간 비교하면 지난해말까지 4명밖에 줄지 않았다.

지금 선진국은 중대재해 예방 활동에 집중하면서 문제 개선에 주력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진보정당인 노동당이 집권할 정도로 노동친화적인 영국에서도 처벌보다는 벌금에 방점이 찍힌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사망자 발생 시 경영자 개인은 처벌하지 않고 법인에 대한 벌금만 부과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숙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근로시간제도 개편안 등을 추진했지만 결국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참 아쉬운 대목이다. 정부가 원래 추진했던 안은 전체 근로 시간을 늘리자는 것이 아닌데, 일부 노동계에서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는 주 69시간제’라는 왜곡된 여론을 조성하면서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사회적 대화가 다시 시작된 만큼 노사정이 함께 현재의 경직된 근로 시간 제도를 개선해 각 상황에 맞게 노사가 근로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일부 기업에서는 주문량 증가, 업무량 폭증 등 업무집중이 필요한 경우 현행 주 12시간 연장근로 제도 운용으로는 업무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3월 발표한대로 연장근로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해야 한다. 산업현장에서도 획일적인 주 52시간제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야권에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조·3조 개정안) 입법을 다시 추진 할 것으로 보인다.

▶노란봉투법은 산업현장의 혼란과 죄형법정주의 위반을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이다. 다수당으로서 야당이 재입법 추진을 신중하게 재검토해 주길 당부드린다.

현재 우리 노사관계는 일부 강성 노동운동 세력이 주도하고 있어 서로 대립적인 양상을 띤다. 노동법제도도 노동조합에 부여된 권리들에 비해서 사용자의 대응수단은 부족하다. 선진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산업현장의 법질서 확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경총이 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해 직접적으로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노동시장 선진화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경총도 노동개혁추진단을 신설해 활동할 예정이다.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노동 개혁이 좀 더 효율적으로 추진되도록 지원할 것이다. 앞서 설치된 ‘중대재해 종합대응센터’ 운영에도 속도를 내겠다. 종합대응센터는 여러 차례 지방에서 중처법 관련 강연을 하고, 기업의 산업재해 예방을 적극 지원해 왔다.

-경쟁국 대비 높은 법인세, 상속세도 기업들이 부담을 호소한다.

▶국내 상속세와 법인세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해 세부담이 과도한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고 국가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평균 22%인데 반해, 한국은 24%다. 최소한 평균에는 맞춰야 한다. 낮아진 법인세 만큼 기업의 투자 여력이 생긴다. 연구개발(R&D) 등에 투자하고 미래 수익 창출에 쓸 수 있는 것이다.

상속·증여세도 문제다. 국내 최고세율은 50%에 달하고, 기업을 승계받을 경우에는 할증으로 최고 60%까지 높아진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이런 상속·증여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없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OECD 평균인 25%수준으로 낮추고, 과세방식도 유산전체가 아닌 실제 취득한 자산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유산취득세’를 도입해야 한다. 정리=양대근·김성우 기자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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