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폐지’된 사전청약… 전문가들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 비판

세종=김민정 기자 2024. 5. 1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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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폐지된 사전청약 부활시킨 文정부
본청약 지연·분양가 상승 등 부작용에 다시 역사 속으로
2021년부터 99개 단지 중 13개 단지만 ‘본청약’
“실효성 없는 정책, 실수요자만 피해 본다.”

정부가 아파트 사전청약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하면서 부동산 시장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전청약은 입주 시기나 분양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제 청약이 이뤄지기 전 먼저 청약을 시행하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오르자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시행했다.

이 제도는 도입 당시에도 청약자가 예상했던 시기에 실제 입주할 수 있는지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되며 비판을 받았었다. 실수요자들을 ‘희망 고문’한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공공 사전청약 신규 시행을 중단하겠다고 14일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신(新)공공분양 모델인 '뉴:홈' 사전청약이 시작된 지난 2월 6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 고양창릉지구 현장접수처 내 홍보관에 '뉴:홈'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 토지 보상·문화재 발굴 등 리스크 산재한 ‘사전청약’

정부는 사전청약 제도가 한계점에 봉착했다며 앞으로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전청약은 지구단위계획이 끝나자마자 진행되는데, 지구 조성 과정에서 토지 보상 지연, 문화재 발굴, 기반 시설 설치 지연 등 사업적인 리스크가 그대로 드러나는 제도적 한계가 있었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이정희 국토부 공공주택추진단장은 “지금으로서는 청약 수요가 높다고 하더라도 사전청약 제도를 부활할 계획은 없다”며 “민간 사전청약도 1년 정도 시행한 뒤 제도적 한계로 2011년 11월에 이미 중단됐다”고 말했다.

사전청약 제도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보금자리주택을 대상으로 사전예약제도 형태로 처음 도입됐다. 당시에도 별 효과를 보지 못했고 지금과 비슷한 한계를 드러내며 2011년 폐지됐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7월 ‘패닉 바잉’(공황 구매) 등으로 집값이 급등하자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매수세를 묶고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사전청약 제도를 부활시켰다.

윤석열 정부도 공공 분양 아파트 브랜드 ‘뉴홈’을 사전청약으로 공급하는 등 제도를 활용했다. 그러나 사전청약 당시 예고했던 본청약 시기가 잇따라 늦춰지거나 분양 가격이 예상보다 비싸게 책정되는 등 예상했던 부작용이 그대로 드러났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사전청약 제도는 실수요자들이 언제 입주할지도 모르는데 오르는 분양가를 지켜봐야 하는 ‘희망 고문’ 같은 제도”라며 “제도 초기부터 많은 지적을 받았는데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효성 없는 정책을 내놓으면 그 피해는 오롯이 실수요자가 지게 된다”며 “시장의 신뢰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입주 예정일이 연기되는 등 사전청약의 문제와 한계는 도입 초기부터 명백하게 예상된 문제점들”이라며 “시행착오가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정희 국토교통부 공공주택추진단장이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공 사전청약 신규 시행을 중단하고, 기존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겪고 있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사전청약 시행단지 관리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본청약까지 수년 걸리는 사전청약… “본청약에 집중해야”

정부가 사전청약을 폐지하는 이유는 본청약까지 이어진 단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정책 실효성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전청약에 나섰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분양 단지들의 본청약은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1년부터 현재까지 사전청약을 받은 공공주택은 99개 단지, 총 5만2000가구다. 그중 본청약까지 진행된 단지는 13개뿐이다. 나머지 86개 단지는 대기 중이다. 대기 물량만 4만6000가구에 육박한다.

특히 LH가 예정일이 임박해서야 몇 년씩이나 지연된다는 사실을 통보해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일도 반복되는 중이다. 본청약에 맞춰 계약금, 중도금 등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갑작스러운 지연 통보에 ‘주거 계획’ 자체를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에 놓여서다.

분양가 상승 불안도 사전청약의 한계점으로 지목된다. 사전청약 당시에는 분양가가 확정되지 않는다. 사전청약과 본청약 사이 기간이 길어 본청약이 도래했을 때 분양가를 산정하면 기존에 생각했던 분양가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뉴홈은 사전청약부터 본청약 기간까지 통상적으로 40개월이 걸린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사전청약을 폐지한 만큼 본청약에 집중해 분양 물량을 늘리고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사전청약은 공급 증가 효과가 전혀 없는 ‘조삼모사’ 같은 정책인 만큼 정부는 앞으로 본청약에 매진해야 한다”며 “3기 신도시로 35만3000가구가 공급되지만, 수도권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60만가구 수준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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