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 사또’ 이재명 동기들, 여의도 중심부 섰다…협상력 입증해야
‘변방의 사또’. 과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스스로를 칭할 때 자주 사용하던 수사입니다. 경기 성남시장에서 출발해 중앙정치 경험 없이 두 차례 대선 후보에 도전했으니, 특수사례이긴 합니다. 지난 4월 총선 뒤 이 대표에겐 ‘변방 사또’ 동료들이 훌쩍 늘었습니다. 민주당 안에 기초단체장 출신 의원들이 17명까지 늘어난 까닭입니다. 전체 민주당 의원이 171명임을 고려하면 10%가 기초단체장 출신입니다.
단순히 기초 단위에서 행정을 경험한 공통점만 가진 것이 아닙니다. 이들 중 일부는 이 대표와 함께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민선 5~6기 기초단체장입니다.
초선 당선자 중엔 김우영(서울 은평구청장), 염태영(경기 수원시장), 황명선(충남 논산시장) 등이 눈에 띕니다. 재선 중엔 민형배(광주 광산구청장), 이해식(서울 강동구청장), 김영배(서울 성북구청장), 김성환(서울 노원구청장) 복기왕(충남 아산시장) 등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86세대지만 일찌감치 중앙정치에 입문한 86그룹 주류들과는 정치적 삶의 경로에 차이가 큽니다.
이 대표는 총선 후 대표 임기를 3개월여 남겨둔 상황에서 당직 인선을 단행했는데, 당직자 명단에선 이들 기초단체장 출신들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이해식 의원은 수석대변인을, 민형배 의원은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았고 김우영 의원은 이 대표 정무조정실장을, 황명선 의원은 조직부총장을 맡았습니다. 김성환 의원도 이 대표 체제에서 정책위의장, 총선 인재위원회 간사 등 주요 당직을 맡았지요.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 같습니다. 대선을 함께 치른 참모는 있지만 당내 정치적 동지는 많지 않은 이 대표에게 민선 5기 기초단체장 ‘동기’들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동료들인 까닭입니다.
2010년 민선 5기 시대를 연 6·2지방선거는 민선 자치 시대가 열린 뒤 15년 만에 지역 정치 실험이 본격화된 선거로 평가받습니다. 새로운 정치 지형을 열어내는 선거를 ‘정초 선거’라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일종의 정초 선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당시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에선 졌지만 광역단체장 7곳을 차지했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92곳에서 승리하며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82곳)을 눌렀습니다. 무엇보다 서울 25곳 가운데 21곳을 휩쓸며, 이후 총선에서 서울 지역 승리의 교두보를 만들었습니다.
민간인 사찰 등 전 분야에서 기성 질서가 퇴행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이때 승리한 지방정부들은 보수정권과 싸우며 지역에서 작은 자치의 실험들을 함께 했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이끌던 목민관 클럽,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마을만들기 협의회, 민주당 전국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KDLC) 등 다양한 모임을 꾸려 경쟁과 협업에 나섰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시대에 야당에 열린 공간은 지방정부뿐이었다. 일부러 모임을 많이 만들어 서로 경쟁하고, 교류하고 잘하는 정책들은 따라가기도 했다. 그때부터 여의도 중심이던 우리 정치의 흐름이 바뀌어간 게 아닌가 싶다.” 민선 5기 기초단체장을 지낸 한 의원은 한겨레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대표는 당시 기초단체장들 사이에서도 어찌 보면 ‘변방의 변방’이었습니다. 김영배·민형배 의원 등 다른 단체장들은 참여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노무현 키즈’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을 지내던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맞서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며 어금버금한 기초단체장들 사이에서 중심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표의 단식농성을 중심으로 야당 기초단체장들의 연대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행정가라는 공통점에, 투쟁의 경험도 공유한 셈입니다.
이 대표를 위시한 ‘변방 사또’들이 주류를 형성한 민주당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단체장의 경험엔 양날이 있습니다. ‘현장을 안다’는 게 강점이라면 ‘협상의 경험이 없다’는 건 약점입니다. 또다른 단체장 출신 의원은 “자치단체장은 행정으로 바로바로 성과를 내는데 국회에선 여야 협상에 매달리다 보면 될 것도 안 되고 정책이 삼천포로 빠진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 역시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지낼 땐 무상 교복 등 ‘무상 시리즈’로 즉각 효과를 내고 지지를 얻었지만, 국회에선 좀처럼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는 점을 갑갑해 하는 걸로 전해집니다. 정치와 행정은 다른 탓입니다.
유권자와 현장에서 직접 접촉하며 행정을 끌어온 경험을 가진 이들이기에 ‘대의 민주주의’보단 ‘당원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도 더욱 강한 듯합니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도 강하지요. 이 대표와 가까운 한 관계자는 “기초단체장 출신들은 ‘튀는 아이디어’를 관철시키는 경험을 해온 이들이고, 이들의 기획력의 원천은 지방 현장에서 만나온 유권자들과의 스킨십이다. 다만 그들이 중심에 섰을 때 타협과 협상이 필요한 기존의 정치문법을 통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만 할 수도 있다”며 “이런 한계를 어떻게 넘어서는 정치를 할지는 주류가 된 지금부터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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