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아픔 속 핫라인 깔아준 친구에게… ‘친구’ 끊고 ‘라인’만 요구[10문10답]

이예린 기자 2024. 5. 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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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라인야후 사태
2011년 최악의 쓰나미 덮치고
“소중한 사람들 이어주자” 탄생
日 월간 이용자 9600만명 달해
메시지·송금·음악… 삶과 밀접
네이버-소프트뱅크 경영 통합
작년 개인정보 52만건 유출 후
네이버 CPO 해임·독립 선언
플랫폼 주도권 확보 의도 분석
정부 “네이버 판단 최대한 존중
부당한 조치땐 단호하게 대응”
브라운, 코니, 샐리 등 라인플러스가 보유한 캐릭터. 라인플러스는 라인야후의 자회사 Z인터미디어트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가 일본에 도입해 국민 메신저가 된 ‘라인’에 사태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일본 정부가 라인 메신저의 개인정보 유출을 이유로 네이버에 라인야후의 지분을 매각하라고 압박을 가하면서 불거진 갈등 때문이다. 예민한 한·일 간의 특수 관계로 인해 이번 사태가 기업 간 경영권 분쟁을 넘어 정치·경제는 물론 반일 감정으로까지 커지는 분위기다. 라인은 네이버의 성공한 해외 사업 모델로 평가되는 만큼 정부가 국내 기업이 해외 사업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라인 사태의 배경과 전망 등을 상세히 분석했다.

1. 라인은 어떻게 생겼나

라인은 지난 2011년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인 NHN재팬에서 개발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발 배경엔 일본인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동일본 대지진이 있다. 2011년 3월 지진 발생 후 일본에선 지진해일(쓰나미)로 친구나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는 대혼란이 발생했다. 지진 당시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던 이해진 당시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소중한 사람을 ‘핫라인’으로 이어주는 서비스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고, 3개월 후에 서비스가 나왔다. 현지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공격적인 마케팅 덕분에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일본 국민 메신저가 됐다. 2019년에 일본 1위 포털 사이트 ‘야후 재팬’을 운영하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온라인 비즈니스를 망라한 플랫폼을 완성하겠다며 네이버의 라인에 협업을 제안하면서 ‘라인야후’가 탄생했다.

2. 일본에서 라인의 위치와 영향력은

라인은 일본에서 월간활성이용자수(MAU·월간 1회 이상 사용자)가 9600만 명에 달하는 ‘국민 메신저’다. 한국의 카카오톡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용자는 라인으로 단순히 메시지를 주고받을 뿐 아니라 간편결제·송금·만화·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기업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다. ‘라인웍스’로 업무 프로세스를 지원하고, ‘라인 비즈니스’로 마케팅에도 활용된다. 공공 행정업무에 적용된 ‘라인 거버먼트’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진 등 정보 발신, 공공요금 납부, 수도 신청, 대형 쓰레기 수거 접수 기능까지 갖췄다. ‘라인 닥터’를 통해 진료 예약, 영상 상담, 진료비 결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원격 의료 영역에서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라인 캐릭터를 앞세워 ‘라인모’란 브랜드로 알뜰폰을 공급, 통신사 역할도 맡으며 사실상 국가·사회 전반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3. 일본에서 어떻게 운영됐나

라인은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NHN재팬’이 개발해 2011년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핫라인’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네이버는 2019년 소프트뱅크와 ‘경영 통합’을 선언하고 2021년 합작회사인 A홀딩스를 세웠다. 소프트뱅크가 운영하는 일본 최대 검색 서비스 야후 재팬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취지였다. 양 사의 이용자 수를 합쳐 1억 명이 넘는 거대 플랫폼이 만들어지는 만큼 구글과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를 뛰어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었다. 일본을 토대로 중국, 동남아시아 시장은 물론 미국, 유럽 시장까지의 확장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A홀딩스는 라인과 야후 재팬 등을 서비스하는 상장사 라인야후의 최대주주(64.5%) 역할로 두고,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이 회사 지분을 50%씩 나눠 가졌다. 다만 이사회는 3대 4로 소프트뱅크가 우세한 구조로 운영됐다.

4. 경영권 갈등은 어떻게 나왔나

이번 사건은 지난해 11월 라인야후에서 개인정보 약 52만 건이 유출되면서 시작됐다. 이 회사의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을 받아 생긴 일이다. 통상 이런 일이 생긴 경우 일본 정부는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책을 요구하는 선에서 마무리해 왔다. 하지만 이번 건과 관련해서 일본 총무성은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친 행정지도를 통해 라인야후에 네이버와의 자본 관계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후 라인야후는 지난 8일 결산설명회에서 네이버와 위탁 관계를 순차적으로 종료하고 기술적인 협력 관계에서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네이버 출신으로 이사회 내 유일한 한국인인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를 사실상 사내이사에서 해임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 원인과 기업의 지분 구조에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없고, 라인야후가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했음에도 두 차례 행정지도를 통해 자본 관계 재검토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라인야후의 경영권을 노린 조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휴대폰에 뜬 라인 메신저 앱 메인 화면 모습.

5. 왜 실질적 지배를 요구하나

일본 정부가 자본 관계 재검토를 통해 소프트뱅크의 라인야후 실질적 지배를 요구하고 나선 첫 번째 배경은 국가 안보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라인은 일본 국민의 80%가량이 사용할 뿐 아니라 각종 지자체 행정업무나 세금 납부 등 공적 임무까지 수행하고 있어 한국 기업이 이 같은 민감한 정보를 관리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의견이 일본에서 제기돼 왔다. 최근 데이터 주권과 플랫폼을 통한 국가 안보 문제가 전 세계 중요 이슈로 떠오른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이유로는 플랫폼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행보란 해석이 나온다.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국경 간 경계가 없는 플랫폼 서비스가 정보통신기술(ICT) 미래의 핵심 분야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대규모 플랫폼 기업이 없는 일본이 라인을 통해 플랫폼 경쟁력을 단번에 끌어올리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란 분석이다.

6. 비슷한 해외 사례는 없나

플랫폼 국경을 높이고 있는 건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데이터 보호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 영상 플랫폼 ‘틱톡’ 강제 매각법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틱톡은 1년 내 미국 기업에 운영권을 매각해야만 현지에서 서비스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국가 안보였다. 중국도 이를 내세우며 애플에 중국 앱스토어 내 미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앱을 지우라고 요구했다. 국산 플랫폼이 없는 유럽연합(EU)은 디지털시장법 등으로 자국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해 구글 등 해외 빅테크에 대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른바 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핵심인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7. 네이버의 입장은

네이버는 어떤 방식으로 협상해야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을지를 놓고 여러 안을 검토 중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3일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투자자 설명회)에서 “(라인야후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는 이례적”이라며 “(행정지도를) 따를지 말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분 매각은) 회사의 중장기 사업 전략에 기반해 검토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네이버는 10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회사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고자 회사 자원의 활용과 투자에 대한 전략적 고민과 검토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회사에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지분 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프트뱅크와 성실히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8. 정부 대응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3일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우리 기업이 해외로부터 어떠한 불리한 처분이나 불리한 여건 없이 자율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며 “우리 기업의 의사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부당한 조치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 보안 사고가 신고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네이버와 긴밀히 협의하며 의사를 확인하고 소통 중이라고 밝혔다. 또 외교 채널을 통해 일본 정부의 입장도 확인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정부가 네이버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해 대응해 왔다면서 네이버의 추가적 입장이 있다면 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성 실장은 “네이버가 라인야후 지분과 사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일 경우 적절한 정보 보안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9. 일본 현지 전망은

일본 주요 언론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A홀딩스 지분 재조정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총무성이 요구하는 자본 관계 재검토 실현은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영향력 약화를 우려하는 네이버 측이 소프트뱅크가 합작사인 A홀딩스의 출자 비율을 높이는 데 대해 난색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소프트뱅크가 네이버로부터 일정한 수의 A홀딩스 주식을 추가 취득하는 등의 안이 나오고 있다”면서도 “향방은 불투명하다”고 관측했다. 디지털 정책 전문가인 사토 이치로(佐藤一郞) 국립정보학연구소 교수는 아사히에 “라인야후는 기술 혁신을 추진했지만, 네이버 기술력과는 아직 차이가 크다”며 “1년이나 2년으로 (격차를) 메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 관계가 변하는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네이버에 의존하는 구도는 얼마 동안은 바뀌지 않고 본질적인 해결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10. 이후 예상 시나리오는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가장 유력한 안은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에 일부 지분을 넘기고 2대 주주로 내려오는 것이다. 현재의 ‘50대 50’ 구조에서 소프트뱅크는 네이버로부터 단 한 주만 넘겨받아도 최대주주가 되지만, 정관 변경 등을 위해 의결권 있는 주식의 3분의 2 수준까지 확보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려면 네이버로부터 최소 15%를 넘겨받아야 한다. 미야카와 준이치(宮川潤一) 소프트뱅크 CEO도 9일 “51%대 49% 정도는 (현 상태와 비교해) 크게 변하는 게 없다”며 더 많은 주식 취득을 원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당초 거론되던 ‘지분 전량 매각’은 가능성이 작다. 네이버가 보유한 라인야후 지분 가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으면 10조 원대로 추정된다. 소프트뱅크가 전부 사들이기에 비싼 금액이다. 지분 축소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있다. 라인야후가 네이버와의 시스템 분리를 통해 보안을 강화하되, 지분 구조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이예린·김성훈·황혜진·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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