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장애인 '속았다'… 헛걸음 만든 '모범음식점' [현장, 그곳&]

오민주 기자 2024. 5. 14. 08:0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식당 입구 계단에 ‘내부 진입’ 불가...불편 투성
장애인주차장·유도블록 등 시설 한 개만 있어도 모범음식점 선정
경기도 “식당 리스트 점검·시정할 것”
용인특례시 수지구의 한 음식점.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모범음식점으로 지정된 곳이다. 홍기웅기자

 

“휠체어를 탄 ‘장애인 이용 가능 모범음식점’이라고 안내돼 있었는데, 들어가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네요.”

13일 오전 10시께 용인특례시 수지구의 한 음식점. 이곳은 ‘경사로’가 있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모범음식점으로 지정된 곳이다. 하지만 상가 2층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5분여간 건물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경사로는 식당에서 50여m 걸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고 안전을 위한 난간대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더욱이 경사로를 이용해 음식점으로 가는 길에는 물건을 내놓고 영업하는 상점들이 많아 휠체어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통로가 비좁아져 있었다. 시민 이정실씨(60대)는 “휠체어를 탄 아버님을 모시고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음식점 입구에 계단이 있어서 건물을 한 바퀴 돌아왔다”며 “접근성과 시설 등이 충분히 갖춰진 곳을 장애인 이용 가능 모범음식점으로 지정해야 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경기지역 모범음식점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높은 계단 위에 있는 도내 한 장애인 이용 가능 모범음식점. 홍기웅기자

같은 날 수원특례시 팔달구의 한 장애인 이용 가능 모범음식점도 마찬가지. 식당 입구에 턱과 계단이 있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내부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식당 내부는 협소해 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고 이동할 수 있는 동선도 한정적이었다.

경기도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등을 위해 홍보하고 있는 ‘장애인 이용 가능 모범음식점’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선정 기준 자체가 허술한 탓인데,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경기도에 따르면 시장·군수가 위생, 서비스, 맛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 지정한 도내 모범음식점은 1천989곳이다. 도는 이 가운데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확보한 곳을 ‘장애인 이용 가능 모범음식점’으로 지정, 현재 705곳을 홈페이지에 공개해뒀다.

하지만 ‘장애인주차장’, ‘시각장애인 유도블록’ 등 편의시설이 한 가지만 설치돼 있더라도 장애인 이용 가능 모범 음식점으로 공개되는 탓에 정작 현장에서 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려운 식당들이 많은 편이다.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교통약자 등의 접근성이 높은 모범음식점만 선별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관점에서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휠체어를 타고 이용하기 불편한 음식점들이 공개돼 있는지 몰랐다”면서 “장애인 이용 가능 모범음식점 목록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오민주 기자 democracy555@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