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에 희생돼" 경고…'라인 강탈' 시도 처음 아니었다 [김일규의 재팬워치]

김일규 2024. 5. 1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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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위기' 닛산 구해놨더니
"일본서 축출 당했다"
"일본은 외국인 차별
정부·기업 공모에 희생됐다" 4년 전 곤의 경고
닛산자동차 되살린 카를로스 곤 전 회장
영향력 강해지자 배임 혐의로 축출
일본 사회 깊숙이 침투한 네이버도 미운털
"일본의 공격적인 배외주의 또 드러냈다"

“나는 닛산과 일본 정부의 공모로 희생됐다.”

일본에서 형사 재판을 앞두고 레바논으로 탈출한 카를로스 곤 전 닛산(日産)자동차 회장이 2020년 1월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곤은 “일본은 닛산과 르노의 싸움 과정에서 닛산에 대한 르노의 영향력을 없애기 위해 나를 제거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가 네이버의 라인야후 지분 매각을 압박하면서 4년 전 곤의 ‘일본 탈출’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 영향력을 키운 외국 기업, 외국인이 쌓은 것을 빼앗기고 ‘축출’ 당했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곤은 프랑스 르노자동차에서 경영 위기에 빠진 닛산으로 파견돼 1999년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됐으며 다음 해 사장으로 취임, 철저한 경영 합리화를 추진했다. 이후 닛산의 실적을 ‘브이(V)자’로 회복시킨 ‘카리스마 경영자’로 평가받았다. 한때 르노·닛산얼라이언스를 세계 2위까지 올려놨다.

그러나 2018년 도쿄지검에 배임 혐의 등으로 전격 체포됐다. 닛산의 유가증권 보고서에 자신의 보수를 축소, 허위 기재한 혐의였다. 이후 보석으로 풀려나 가택연금 중 악기 케이스에 몸을 숨겨 일본을 탈출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유죄를 전제로 차별이 횡행하고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부정한 일본 사법제도의 인질이 더 이상 아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의 곤 축출은 프랑스가 쥐고 있던 르노·닛산얼라이언스의 주도권을 일본이 가져오기 위해서였다는 해석이 많다. 1999년 경영 위기에 처했던 닛산에 르노가 출자하면서 르노는 닛산 지분 43.4%를 보유하고, 닛산은 르노 지분 15%를 갖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르노는 닛산에 대한 의결권을 가진 반면 닛산은 르노에 대한 의결권이 없어 불만이 컸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가 르노와 닛산의 통합을 주문하면서 일본의 경계심이 더 커진 것이다.

곤의 일본 탈출은 일본의 공격적인 배외주의(排外主義)를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곤이 ‘메이드 인 재팬’이란 뜻을 가진 일본 대표기업 닛산의 최고위직에 올라 품질 결함 등 그동안 닛산이 감추고자 했던 문제점을 직시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시각이다. 네이버 라인도 마찬가지다. 일본 최대의 메신저로 성장해 일본 사회에 깊숙이 침투했다. 외국 회사가 자국 정보기술(IT) 인프라가 된 데 대해 일본은 불만이 컸다는 해석이 많다.

자국 기업·기업인과 외국 기업·기업인을 차별적으로 대우한다는 인상도 비슷하다. 일본은 곤에게 했던 엄혹한 대우와 달리 과거 조 단위 분식회계를 했던 도시바와 올림푸스의 일본인 경영진에는 면죄부를 줬다. 지난해 일본에선 개인 정보가 100만건 이상 유출된 사고만 여덟 차례 터졌는데, 51만건이 유출된 라인야후에만 두 차례 행정지도를 하며 네이버에 지분 매각 압박까지 했다.

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일본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고 외국 기업·기업인을 쫓아내려는 모습도 닮았다.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에 이어 곧바로 라인야후, 소프트뱅크가 이를 뒷배 삼아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곤 사건과 라인야후 사태 모두 일본 정부와 기업 사이에 ‘몰아내기’ 사전 각본이 있었을 것이란 의심까지 들게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전기차 전환이 급했던 르노는 결국 24년 만에 닛산 지배권을 포기했다. 지난해 르노가 닛산의 지분율을 43%에서 15%로 낮춰 두 회사가 서로 동일한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르노가 닛산 지분율을 대폭 낮추기로 양보한 것은 경영난과 전기차 전환 계획에 따른 자금난 때문이다.

네이버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은 △지분 전량 매각 △일부 매각 △현상 유지 등이 거론된다. 일부 지분을 넘겨주고 협력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방향이 현재로선 가장 유력하다. 네이버는 “중장기 전략에 기반해 지분 매각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김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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