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해병이 말하는 ‘채 상병 사건’ 그날

이은기 기자 2024. 5. 1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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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일 ‘채 상병 특검법’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시사IN〉은 생존 해병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사고 당일 상황을 재구성했다. 생생한 당시 증언은 ‘채 상병 사건’의 본질을 선명하게 가리킨다.
2023년 7월19일 해병대 동료들이 경북 예천군에서 수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실종된 채 아무개 상병의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7월19일 경북 예천군 보문교 일대는 위태로웠다. “깊은 곳이 아니어도 자주 휘청거렸다” “강 수심이 오락가락해서 계속 긴장하며 수색했다”. 당시 보문교 부근 내성천에서 수해 실종자 수색 작전에 나섰던 해병대원들의 진술이다. 해병대 제1사단 포7대대 소속 채 아무개 일병도 이날 수색 작전에 투입됐다. 2003년생 채 일병은 지난해 3월 해병대에 입대했다. 지난해 7월19일은 그가 입대한 지 4개월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이날 오전 8시경 작전 투입 명령을 받은 해병대 소속 130여 명이 보문교 인근에 모였다. 한 조에 병사 4~5명과 간부 1명이 배치됐다. 조별로 나뉘어 삽이나 갈퀴로 땅을 찍으면서 전진하는 방식으로 수색을 시작했다. 채 일병 부근에서 함께 실종자 수색 작전을 했던 간부와 병사는 10여 명이다. 이날 작전 중 채 일병이 사망했다. 순직한 채 일병을 군은 채 상병으로 추서 진급했다. 〈시사IN〉은 채 상병과 함께 작전에 나섰던 생존 해병들이 당일 해병대 수사단에 진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해 7월19일 상황을 재구성해보았다.

생존 해병들의 생생한 당시 증언은 ‘채 상병 사건’의 본질을 선명하게 가리킨다. 채 상병 사망이 막을 수 있는 ‘인재’였다는 점, 그래서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의 사망 원인을 더 철저하게 조사해야 했다는 점 등이다. 그런데 채 상병 사망사건을 조사하던 해병대 수사단장이 돌연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채 상병 순직 앞뒤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사IN〉이 당시 생존 해병들의 진술에 주목한 이유다.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은 전날 밤 채 상병이 속한 포병 부대를 질책했다. 지난해 7월18일 수색 작업이 마무리되던 오후 4시20분, 현장을 지휘한 대대장 4명의 단체 대화방에는 임성근 전 사단장의 5가지 지시 사항이 전달됐다. 그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복장 착용 미흡” “4인 1개 조로 책임 주고, 찔러가면서 확인할 것(1열로 비효율적으로 하는 부대장이 없도록 바둑판식 수색 정찰을 실시할 것)(특히 포병이 비효율적임)” “군 기본자세 유지 철저(특히 방송 차량이 올 시)”. 이날 현장에서 해병대원들을 감독했던 임성근 전 사단장은 포병을 콕 집어 수색의 효율성을 강조한다.

채 상병 사건이 나기 하루 전인 2023년 7월18일 오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서 해병대1사단 장병들이 수해 실종자 수색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안전 장구류는 주지 않았다”

임성근 전 사단장의 지시는 수색 작전에 나선 해병대원들에게도 전파됐다. 생존 해병 A씨는 “(지난해 7월18일) 밤에 카톡으로 사단장님이 포병대대 수색 작업이 마음에 안 든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왔다고 좀 더 열심히 하라는 보고를 받았다”라고 했다. 생존 해병 B씨는 “이런 식으로 지시(사단장의 지시와 허리 아래까지 입수가 가능하다는 포11대대장과 포7대대장의 지시)가 되다 보니 중대장과 대대 간부들은 압박을 받은 듯하고 중대장이 내일 7대대 총원 허리까지 강물에 들어간다고 설명해줬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19일, 해병대원들이 목격한 보문교 일대 내성천 강물의 유속은 빨랐다. “보문교 부근에 도착해 강가를 봤는데 생각보다 유속이 빨라서 쉽지 않은 하루가 되겠다고 후임들이랑 이야기했다(생존 해병 C씨).” 강물의 높이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흙탕물이라 강 밑이 안 보여서 찌르고 수심을 파악하면서, 강물이 허리까지만 오게 유지했다(생존 해병 D씨).”

그래도 수색은 계속됐다. 현장 간부 중 한 명은 임성근 전 사단장이 내린 ‘바둑판식 수색 정찰’ 지시가 “조별로 뿔뿔이 흩어져서 수색”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작전에 나선 병사들도 “수색 중간중간 간부들에게 ‘왜 이렇게 붙어 다니냐. 흩어져라’ ‘떠들지 마’라고 통제를 받았다(생존 해병 E씨).”

생존 해병들은 별다른 안전조치나 안전 장비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물살이 빠르니 조심하라는 것과 허리보다 깊게 들어가지 말라는 것 외에는 들은 것이 없다(생존 해병 A씨).” “구명조끼나 튜브 등의 안전 장비는 없었고 여러 간부가 허리 높이까지만 가라고 했다(생존 해병 F씨).” “안전 장구류는 딱히 없었고 주지도 않았다. 그냥 안전하게 허리 밑으로 작업하라고 지시받았다(생존 해병 C씨).”

생존 해병 G씨는 상관의 지시를 믿었다. “간부들이 붙어 다니지 말고 간격을 두고 수색하라고 했다. 인원이 많은 상황에서 간격을 벌리다 보니 자연스레 가장 끝에 있던 해병들은 물살이 세고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7대대장, 포11대대장 지시 사항으로 ‘허리까지는 상관없다’라는 말과 중대장이 전날 밤 ‘총원 허리까지 들어가야 한다’고 한 카톡이 생각나서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지난해 7월19일 오전 9시께, 채 상병은 뭍에서 가장 먼 하천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수색 중이었다. 생존 해병들이 기억하기에 그때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땅이 꺼졌다. 채 상병 바로 옆에 있던 병사의 목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나가기 위해 수영을 해봤지만 물살이 너무 강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병사의 눈에 살려달라고 외치며 발버둥 치는 채 상병이 보였다. 채 상병을 포함해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던 병사까지, 해병대원 5명이 순식간에 급류에 휩쓸렸다.

“힘 빼!” “숨 쉬어!” “배영 해!” 강물에 빠진 병사들을 향해 동료들이 소리쳤다. 병사 두 명은 자력으로 헤엄쳐서, 두 명은 간부가 구조해서 무사히 물가로 나왔다. 그런데 남은 한 명, 채 상병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채 상병이) 살려달라고 외치며 머리만 나왔다 들어갔다 하다가, 머리가 안 나오고 사라졌다. 유속이 너무 빨랐다. 머리가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채 상병이) 엄청나게 멀리 갔다(생존 해병 D씨).”

병사들은 채 상병을 구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얼마나 힘들고 무섭고 패닉이 왔으면 ‘살려줘’라고 말했을지 마음이 아팠다. (채 상병이) 물에 계속 떠 있을 줄 알고, 강물이 흐르는 쪽 지면으로 계속 달렸다. 어느 순간 (채 상병이) 보이지 않았고, (다른 병사가) 수영해서 구조하려다 보이지 않아 돌아왔던 게 기억난다(생존 해병 B씨).”

생존 해병 G씨도 “(채 상병의) 정찰모가 계속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정찰모가 떠내려가는 속도에 맞춰서 계속 뛰었다. 하지만 (채 상병이) 한 번도 물살에서 보이지 않아서 사고 현장으로 되돌아갔다. 주위를 둘러봐도 튜브나 스티로폼, 로프가 없어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채 상병과 함께 강물에 휩쓸렸다 간부의 도움을 받아 물가로 나온 생존 병사들도 채 상병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었지만, 결국 그를 찾지 못했다.

“멘탈이 나간 상태로 몇 시간 동안 울고 멍때리며 채 해병이 구조되기를 기다렸다(생존 해병 A씨).” “그 순간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바보 같았다. 전우이자 후임이 떠내려가고 있는데 선임으로서 아무것도 못하는 내 자신이. 난 그저 하염없이 (채 상병의) 이름만 힘차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20대, 그 꽃다운 청춘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면서 정작 본인은 보호받지 못했다. 선임이었는데 아무것도 못해준 내가 한심하다(생존 해병 C씨).”

채 상병은 후임에게 따뜻한 선임이었다. “힘들 때는 격려해주고, 농담도 던져주었다. 실수해도 화 한번 내지 않고 오히려 위축되지 말라고 더 잘할 수 있다고 다독여주는 고마운 분이었다(생존 해병 H씨).” 선임에게는 든든한 존재였다. “나중에 아토피에다 수영할 줄 몰라서 물을 싫어했다고 들었다. 우리한테 그걸 말도 안 하고 징징대지 않고 선임들과 간부들이 들어가니 자기도 들어왔다. 평상시에도 기합이 가득 차 있고 뭐든지 열심히 하고, 지금까지 본 해병 중에 가장 해병답고 멋있었다(생존 해병 B씨).”

2023년 7월19일 경북 예천군 호명면 선몽대 인근 하천에서 채 아무개 상병을 찾기 위한 야간 수색을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채 상병이 실종되고 약 11시간 뒤인 지난해 7월19일 밤 10시30분쯤 소방 드론 화면에 빨간색 티셔츠가 잡혔다. 그 뒤 소방대원들이 하천 가장자리 물가에서 의식을 잃은 채 엎드려 있는 채 상병을 발견했다. 심정지 상태였다. 해군포항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다음 날인 2023년 7월20일 오전 2시13분 사망진단을 받았다.

수사 외압 의혹, 밝혀질 수 있을까

박정훈 대령은 채 상병 사망사건을 조사하던 해병대 전 수사단장이다. 박정훈 대령은 채 상병이 사망한 지난해 7월20일, 영안실에 안치된 채 상병의 시신을 마주했다. 수해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됐다 주검으로 돌아온 스무 살 해병 앞에서 박정훈 대령은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하고 다짐했다.

개정된 군사법원법과 신설 법령에 따라, 군은 사망사건 조사 중 범죄 혐의를 인지하면 ‘지체 없이’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전 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할 예정이었다. 임성근 전 사단장이 실종자 수색 작전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임무를 작전 투입 부대에 제대로 전하지 않았고, 안전을 확보하지 않은 채 병사들을 급하게 작전에 투입했으며, 병사들의 수중 수색 사실을 알면서도 안전 확보를 방관했고, 외부에 보이는 모습만 강조했다는 등의 이유다.

한 해병대 1사단 간부는 해병대 수사단에 “(채 상병 실종 전날인) 지난해 7월18일 저녁 사단장 주관 VTC(원격 화상회의)에서 사단장이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보면서 찾아야 한다’라고 했다. … 사단장이 물에 들어가라는 말은 없었으나 ‘밑에 내려가라’ 가슴 장화 같은 물자를 언급한 것을 미루어볼 때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라고 진술했다. 임성근 전 사단장 측은 당시 작전통제권이 1사단장에게 없었고, 해병대 수사단에서 특정한 혐의는 사실이 아닌 데다 사망사건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해 7월30일 국방부 장관 보고와 7월31일 언론 브리핑을 마친 뒤 8월2일 경북경찰청에 수사 기록을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7월31일 낮 12시경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돌연 전날 결재를 번복하고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박정훈 대령은 같은 날 오전 11시쯤 윤석열 대통령이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한 뒤부터 수사 외압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와 언론 보도로 대통령실과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사이 연관성이 드러나고 있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공수처 수사의 핵심 피의자다. 지난해 7월31일 오후 3시18분부터 다음 날까지 유재은 관리관과 박정훈 대령 사이에 다섯 차례 통화가 오갔다. 유재은 관리관은 사건 혐의자가 적힌 사건인계서·사건기록 목록 등을 확인하고, 혐의자와 혐의 사실을 빼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박정훈 대령에게 반복해서 말했다(박 대령은 ‘죄명을 빼라, 혐의자·혐의 내용을 빼라’는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5월2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통과된 후 해병대 예비역들이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시사IN 신선영

그럼에도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해 8월2일 오전 10시30분경 예정대로 경북경찰청에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기록을 넘겼다. 그러자 오후 1시50분쯤 유재은 관리관이 전화를 걸어와 회수 의사를 밝혔고, 결국 당일 저녁 7시20분께 국방부 검찰단이 기록 일체를 되찾아 갔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이후 사건을 재검토하고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대상자가 8명이 아닌 두 명이라고 발표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임성근 전 사단장과 박상현 당시 7여단장 등을 제외하고, 포11대대장과 포7대대장만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지침을 위반하고 허리까지 입수를 직접 지시했다는 이유에서다. 8월24일 국방부는 재검토 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한 박정훈 대령은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고 있다.

‘순직해병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일명 채 상병 특검법)’은 채 상병 사망사건과 이와 연관된 수사 방해,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검사를 임명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6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지정됐다. 7개월이 지난 5월2일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4월25일 한 생존 해병은 경찰과 공수처에 임성근 전 사단장 등의 처벌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동료 채 상병의 죽음에 대해 국가가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지, 생존 해병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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