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천 칼럼]트럼프 2기의 대중정책은 '정권교체'?

여론독자부 2024. 5. 1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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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서울경제]

냉전이 끝난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미국의 대중 정책은 ‘관여(engagement)’가 대세였다. 중국에 관여하여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적극 지원했고, 중국에 최혜국(MFN) 지위를 부여해 미중 교역 관계를 심화했다. 중국을 죽의 장막에서 끌어내기 위해서는 중국의 경제자유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중국의 경제자유화는 결국 정치자유화로 이어질 것으로 믿었다. ‘봉쇄(containment)’도 대중 정책의 한 축을 이뤘는데, 중국의 아시아 패권국가 부상은 어쨌든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관여와 봉쇄를 혼용해 구사했기 때문에 탈냉전기 미국의 대중 정책을 ‘봉쇄적 관여(con-gagement)’라 부르기도 했다.

2000년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져있을 때, 중국은 비약적 성장을 이뤄냈고 아시아의 패권을 넘어 미국의 지위를 넘보게 되었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순응하기보다는 기존의 질서를 자국의 구미에 맞게 고쳐 쓰려는 ‘수정(修正)주의’ 국가 진영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2008년 집권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여전히 대중 관여에 미련을 보였다면, 2016년 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여정책과의 결연한 단절을 선언했다. 미국의 대중 정책에서 모호성이 사라졌고, 봉쇄가 대세를 이루며 이런 기조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중 봉쇄정책의 궁극적 전략 목표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충분한 압박을 가해 중국 공산당 정권의 강압적인 외교안보 정책에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공산주의 정권을 자유주의 정권으로 변환시키겠다는 것인지, 전략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 2기의 대중 봉쇄정책의 전략 목표는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매튜 포틴저 전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마이크 갤라거 전 하원의원은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의 대중 정책은 중국의 “정권붕괴(regime collapse)”를 촉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1970년대 대소련 유화책인 ‘데탕트(détente)’에 비유해 비판했고, 차기 미국 행정부는 중국과의 더 큰 갈등을 감수하더라도 1980년대 구소련의 붕괴를 초래한 레이건의 ‘힘의 외교’를 구사해 중국의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레이건의 힘의 외교 때문에 구소련이 궁지로 내몰린 것은 사실이지만, 냉전의 국제질서가 해체된 중요한 이유는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위시한 구소련의 새로운 지도자 그룹이 공산주의 이념의 한계를 깨닫고 자유주의 정치·경제 질서를 받아들이는 대결단을 내린 데 있다.

미국은 1893년 벤자민 해리슨 행정부가 당시 독립국가였던 하와이를 침공해 왕정을 전복시키고 친미 정권으로 교체한 이후, 여러 차례 타국의 정권교체를 시도했다. 정권교체에 대한 정당성과 국내외 지지가 확보됐다고 판단할 경우, 공공연한 군사개입으로 정권교체를 도모했다. 9·11테러 이후 충분한 명분을 확보했다고 판단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해 탈레반과 후세인 정권을 교체했다. 정권교체에 대한 국내외 지지 확보가 어렵고 군사개입의 인적·물적 비용이 과다하다고 판단할 때는 중앙정보국(CIA)을 동원해 암암리에 정권교체를 도모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그리 신통치 않다.

미국의 정권교체가 성공한 사례를 살펴보면 교체하려는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이미 심각하고 정권의 대안세력이 상당한 세를 형성했을 때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이 독재정권임은 분명하지만, 백년국치(百年國恥)를 끝내고 중국 역사상 유례없는 부와 성장을 인민에 가져다준 것 또한 사실이다. 중국은 현재 120여 개국의 최대 무역파트너이고, 이 국가들 대부분은 중국과 우호적 관계 유지를 희망한다. 미국의 대중 정권교체 정책은 미중관계를 파탄낼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이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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