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 식구 모두 죽이고 세상 뜨겠다"…친딸까지 살해하려 한 '광기'

박태훈 선임기자 2024. 5. 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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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붓딸·처조카 성폭행후 살해…딸까지 마수 [사건속 오늘]
재혼 권유한 처가에 원한…7시간 동안 3명 살인 '희대의 악마'
ⓒ News1 DB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09년 5월 14일 낮 전남 영암경찰서 112상황실로 '아빠가 죽일지도 모른다'는 다급한 목소리의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이향열(1966년생)을 체포하고 공포에 떨고 있는 A 양을 안심시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찰은 이향열이 어떤 짓을 했는지, 친딸까지 성폭행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아내와 의붓딸, 처조카를 성폭행한 뒤 살해하고 친딸에게 '목욕이나 같이하자'고 강요하고 성폭한 이향열. 그에 대해 변태, 성도착증 환자, 섹스 중독자로 규정하고 분석하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죄질은 극히 나빴다.

다음은 사형을 선고한 광주지법 목포지원 제1형사부, 그의 항소를 뿌리치고 역시 사형을 내린 광주고법 제1 형사부 판결문을 요약한, 이향열의 악행 보고서다.

◇ 1심 "아무리 살펴도 극형 선고가 불가피"· 2심 "잔인무도, 사형이 마땅"

2009년 10월 15일 광주지법 목포지원 제1형사부는 "주문,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면서 이향열이 저지른 악행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재판부는 선고문 말미에 "사형 선고 양형 기준을 아무리 엄격하게 적용하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을 충분히 참작해도 극형 선고는 불가피하다"며 사형 외에는 그를 벌줄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2010년 3월 25일 항소심인 광주고법 제1형사부도 "국가는 때로 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가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며 "피해자들을 성적으로 유린하고 냉혹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3명의 목숨까지 빼앗은 피고인을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하는 극형 선고는 불가피한 선택이다"고 역시 사형을 선고했다.

이향열은 상고를 포기, 14일 현재 24년 1개월 50일째 사형 대기 중이다.

ⓒ News1 DB

◇ 죄목만 6개…살인· 사체은닉· 강간살인· 특수강간· 청소년강간· 집단흉기감금

이향열은 하나하나 모두 벌이 무거운 6가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의 아내 A 씨(2009년 당시 41세), A 씨가 F 씨 사이에서 낳은 의붓딸 B 양(당시 19세), A 씨 오빠의 딸 즉 처조카 C 양(당시 16세)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살인, 강간살인, 청소년 강간)를 받았다.

또 C 양의 시신을 가방에 넣은 뒤 영암군의 한 야산에 버린 혐의(사체은닉), 처조카 C 양의 언니 D 양(당시 18세)을 흉기로 위협, 성폭행하고 옷장에 감금한 혐의(청소년 강간, 특수강간, 집단흉기감금)도 있다.

여기에 더해 친딸 E 씨(당시 22세)도 성폭행하고 감금한 혐의(특수강간)까지 있다.

◇ 절도죄 집행유예 중 16세 소녀 성폭행 징역 2년 6월, 또 여중생 강간 징역 15년형

이향열은 18살 때인 1984년 12월 A 씨와 만나 동거에 들어갔다.

이듬해 7월 절도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던 이향열은 A 씨가 임신 8개월이던 1987년 1월 27일 같은 동네 16살 여학생을 강간, 집유 취소와 함께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살이(형기 종료 1990년 9월 20일)를 했다.

1989년 12월 23일 가석방된 이향열은 1991년 6월 1일 마을 사람 G 씨가 자신을 푸대접한다며 앙심을 품고 G 씨의 여중생 딸(당시 15세)을 성폭행,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형기 만료 7개월을 앞둔 2005년 10월 28일 가석방됐다.

ⓒ News1 DB

◇ 재혼한 아내, 재혼 권유한 처가에 원한…빗나간 복수심으로 처조카를

A 씨는 이향열이 1987년 감옥에 갇히자 몇 달간 옥바라지를 했지만 친정어머니와 오빠가 울산에 사는 F 씨와 재혼을 권유하자 새출발했다.

F 씨는 A 씨와 이향열 사이에 난 E 씨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는 등 호의를 베풀었다.

1989년 말 출소한 이향열은 A 씨가 울산으로 재혼해 떠났다는 사실을 듣자 '아내와 처가가 나를 배신했다'며 복수를 다짐했지만 다시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악행을 상당 기간 뒤로 미뤘다.

2005년 10월 말 출소, 전남 영암의 한 조선업체에 취업한 이향열은 2007년 설날 때 친딸 E 씨 소식을 듣기 위해 장모 집을 찾았다가 A 씨가 F 씨와 별거 중이라는 사실을 듣게 됐다.

이에 '의붓딸 B 양, 딸(E 씨)을 데리고 와라, 함께 살자'며 A 씨에게 연락해 그해 8월 영암에서 동거에 들어갔다.

그때 A 씨에게 재혼을 권했던 처가가 '잘됐다'는 반응을 보이자 '이것 봐라'며 반발심에 사로잡혀 "아내, 장모, 의붓딸, 처남, 처조카, 내딸까지 모두 죽이고 세상을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그 첫 대상을 처조카 C 양으로 택한 이향열은 2009년 5월 5일 C 양을 "우리 집에 놀러 가자"며 데려온 뒤 성폭행했다.

성폭행 사실이 알려질 경우 무거운 벌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이향열은 C 양의 몸과 입을 꽁꽁 묶은 뒤 가방에 넣고 코란도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다가 C 양을 질식해 숨지게 했다.

◇ 의붓딸 강간 후 살해, 4시간 반 뒤 아내마저 이향열은 2015년 5월 12일 밤 7시쯤 의붓딸 B 양에게 설거지시켰으나 말을 듣지 않는 것에 격분, 성폭행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

B 양 시신을 작은방에 팽개친 이향열은 곧장 아내 A 씨가 일하고 있는 식당을 찾아가 강제로 관계를 가진 뒤 12일 밤 11시30분쯤 "너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한다"며 목을 졸라 죽였다.

◇ 또 다른 처조카 "고모가 보고 싶어 한다"며 유인 후 성폭행…친딸까지

이향열은 이렇게 된 바에 '다 끝장내 주겠다'며 아내 시신을 차 트렁크에 놔둔 채 차를 몰고 전남 목포로 가 처조카 D 양을 "고모가 보고 싶어 한다"며 불러내 영암의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뒤 5월 13일 새벽 1시 30분 무렵 흉기로 위협, 성폭행했다.

D 양을 안방 옷장에 감금한 이향열은 1시간 30분 뒤인 13일 새벽 3시쯤 PC방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한 친딸 E 양이 B 양 시신이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려 하자 "엄마와 B를 죽였다. 너도 죽이고 안방에 있는 D도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위협하고 손발을 묶고 입을 테이프로 봉했다.

ⓒ News1 DB

◇ 친딸에게 "샤워 같이하자" 겁탈…"다 성폭행했는데 내딸 놔두면 부당한 대우 받을까 싶어"

이향열은 13일 오전 9시쯤 E 양을 풀어준 뒤 "마지막 소원이니 샤워를 같이하자"고 하는가 하면 자신의 눈앞에서 속옷을 여러 차례 갈아입게 하고 이 장면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

E 양은 '설마 아버지가' 했지만 이향열은 친딸마저 겁탈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이향열은 재판 때 "내 딸을 성폭행할 생각 없었지만 내가 모두 성폭행하고 죽였는데 내 딸만 놔둘 경우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걱정이 됐다"며 횡설수설했다.

딸을 범한 이향열이 정오 무렵 담배를 구입하기 위해 잠시 집을 비우자 E 양이 경찰에 신고, '이향열의 악행 보고서'를 끝맺게 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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