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등장한 2000명…의료계 "외부 누군가 정한 숫자"
"의사인력전문위 회의서도 '2000' 없어"
"복지부 보정심서 2000명 증원 첫 언급"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이번주 의대 증원 집행정지 여부에 대한 법원의 결정을 앞두고 의료계가 의대 증원의 근거로 정부가 내세운 각종 자료들을 검증한 결과 "의대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었다"고 밝히면서 '숫자 2000'을 둘러싼 의구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14일 의대 증원 관련 소송을 대리하는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 측에 따르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결정과 의대별 배정 과정에서 의견 수렴과 협의 절차가 없어 절차적 위법성이 지적된다.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 "의료계가 참여하는 ‘의료현안협의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와 보정심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등 다양한 협의 기구를 통해 37차례에 걸쳐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인력 확충 및 재배치 방안을 협의했다"고 밝혔지만 의료계는 이를 정면 반박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보건복지부가 참여한 의료현안협의체의 경우 "증원 규모에 대한 협의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는 의정 협의에 따라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기로 했다며 회의 결과를 정리한 보도자료 모음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의협에서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보고서에는 '필수 의료 인력 재배치 및 양성'이라는 문구만 있을 뿐 '의료 인력확충'이라는 문구는 없다.
보정심에서 의대 2000명 증원을 최종 심의하기 전 이를 검토하는 의사인력전문위원회 회의 내용에서도 "적정 증원 규모에 대한 논의 도출 과정은 부재하고 2000명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의사인력전문위원회 5차 보고서를 보면 조규홍 복지부 장관의 출석 하에 각 위원이 증원 규모를 말하는 내용이 있다.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의 근거로 밝힌 연구 보고서의 저자(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 박사)를 비롯해 노동자협의회, 소비자단체 관계자, 교육부 공무원 등 위원들이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이다.
정부가 지난 2월6일 심의를 열고 의대 2000명 증원을 결정한 보정심과 의사인력전문위에서도 "의대 증원 규모, 2000명 증원의 안건 회부는 고사하고 타당성과 실효성을 논의한 회의는 없었다"고 한다. 정부는 의대 증원 관련 주요 회의록 중 보정심 회의록을 유일하게 법원에 제출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2월6일 보정심 3차 회의에서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가 처음으로 복지부에 의해 언급됐다"면서 "정부로부터 2000명이라는 숫자를 처음 들은 일부 위원들의 반응이 그대로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 보정심 회의록을 보면 "2000명 증원 발표를 굉장히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의과대학들이 제대로 의대생을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의견처럼 350명 정도입니다"(위원1), "2천명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위원2), "의약분업 때 줄어든 정원부터 시작해서 약 500명에서 1000명 사이인 700명 정도가 맥시멈(최대)입니다"(위원4), "내년부터 당장 2000명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위원10)는 발언이 나온다.
이 변호사는 "24명으로 구성된 보정심 구성원 중 의협 측을 포함한 4명의 반대에도 정부, 소비자 단체, 다른 직역 단체의 압도적인 수적 우세로 2000명 증원은 이날 심의를 통과했다"며 "대한민국 의료를 관통해 온 관치 의료의 정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복지부는 지난 2월6일 보정심 회의 직후 의대 2000명 증원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전국 40개 의대에 의대 2000명 증원분을 배분한 것도 논란거리다. 교육부 산하 ‘의대정원배정위원회(배정위)'는 지난 3월14일 구성된 후 이튿날 첫 회의를 열었고, 총 세 차례 비공개 회의를 가졌다. 첫 회의 이후 5일 만인 3월 20일 전국 32개 의대별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 정부는 위원 명단, 결정 과정을 도출한 회의록 등을 모두 공개하지 않았고, 배정위 회의록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충북도청 소속 보건복지 업무 담당 간부가 배정위에 참석했다"면서 "충북대 의대에서 49명이던 정원이 200명으로 증가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사게 하는 정황으로, 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나머지 위원들의 구성도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의대별 증원분 배분도 "인위적"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전국 32개 의대 정원을 보면 끝자리가 '0'으로 끝나지 않는 의대는 강원대(132명) 한 곳이다. 또 의대별 교육 여건과 지역별 의료 여건 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거점 국립대 9곳 중 7곳(강원대·제주대 제외)은 모두 정원이 200명이다.
이 변호사는 "정부는 열명 단위 배분에 대해 '일선 학교에서 (10의 배수로 떨어지지 않는 경우) 학과 운영의 비효율을 고려했다'고 하는데 성적 미달로 인한 유급, 제적이 항시 일어나는 의과대학 학사에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의 2000명 증원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외부"에서 누군가가 결정한 숫자이고, 이를 복지부 장관이 보정심에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요식 절차만 거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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