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그 후 - 다시 찾은 미래] 7. 장성광업소 지킨 마지막 광부 3형제 2 -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광부들

오세현 2024. 5. 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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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석에 찢어지고 죽탄에 파묻히고 생과 사 경계의 나날들
광부 갱내 가스·먼지·지압에 시달려
낙석·추락·발파사고 등 위험성 상존
사고 당한 후 정신적·육체적 후유증
트라우마에 불안·악몽·공포 겪기도
▲ 김영문씨와 동료들의 작업 모습. 사진=박병문 사진작가·김영문씨 제공

생과 사를 가르는 것은 찰나였다. 그 찰나의 순간 덕분에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찰나에 떠나보내야 했던 동료들도 적지 않았다. 막장 안에서 보낸 김영구(53)·김석규(52)·김영문(47)씨의 지난 20여 년은 생(生)과 사(死)의 순간이었다. 

매 순간이 긴장

탄광은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위험이 도사린다. 갑자기 쇳덩어리가 굴러 광부들을 칠 수도 있고 아차하는 순간에 기계에 끼일 수도 있다. 어딘가에 걸려서 넘어져 크게 다칠 수도 있고 그때 기계라도 가동됐다면 팔, 다리가 잘려나갈 수도 있다.

갱 안으로 진입하는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경우도 다반사다. 길면 대기 시간이 30분, 40분을 넘어선다. 김영문씨는 “수직으로 900m를 내려가는 데 어느 날은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멈췄다가 갑자기 내려갈 때가 있다. 그러면 사람이 공중에 붕 떴다가 떨어지는데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못 견딜 때가 많다”고 했다.

가스와 먼지, 지압(地壓)도 광부들을 괴롭히는 요소다. 지상에서는 1분에 스무번씩 하던 곡괭이질도 지하 갱 안에서는 10번 하기도 벅차다는 게 광부들의 설명이다. 압력이 너무 세면 기계가 부러지거나 망가지는 일도 잦다.

 ▲ 막장 작업 초창기 모습. 골조가 단단하고 안정적으로 설치돼 있다. 사진제공=김영문씨
▲ 막장 후반기 골조 모습. 지압이 센 곳은 단 며칠 사이에 골조가 휘어진다. 사진제공=김영문씨

김영문씨도 입갱 보름 만에 사고를 당했다. 갑자기 굴러온 돌이 김영문씨를 친 것. 돌을 끌어안고 15m를 굴렀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빨리 나가라”는 말에 황급히 밖으로 나오니 누군가 “다리에서 피가 난다”고 했다. 다리가 찢어진 것도 모르고 내달린 셈이다. 영문씨는 “돌에 맞은 고통이 너무 세니까 찢어졌는지 어떻게 됐는지도 몰랐다”며 “병원 가서 꿰맸는데 그다음 날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렇게 2년을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사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이너마이트가 제대로 발파되지 않아 크게 다칠 뻔한 적도 있다. 그는 “발파가 덜 됐는지 머리 옆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파바박’ 터졌다”며 “뛰어나오는데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소리가 뒤통수 너머로 들리는데 조금만 내가 더 들어갔으면 다이너마이트에 바로 맞을 뻔 했다”고 회고했다.

가장 최근에는 돌이 머리를 가격, 이가 깨지고 뇌진탕 증세가 나타났다. 뇌진탕은 2년 간 그를 괴롭혔다. 안정제와 수면제를 먹어야했고 양약이 효과가 없자 한의원으로 눈을 돌려 침을 맞았다. 응급실에 한 번 갈 때마다 7만4000원이 들었는데 하루에 두 번 간 적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싶을 때도 많았지만 아내와 딸 둘을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영문씨는 “일은 힘들고 험해도 안정적이다”며 “막상 광부 일을 그만두면 태백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버틴 것 같다”고 했다.

▲ 광부 삼형제 김영구·김석규·김영문씨

 

사고 그 이후

광부 3형제 중 둘째 석규씨도 죽탄에 파묻힐 뻔한 일을 겪은 뒤 더이상 채굴작업을 이어가지 못한 사례다. 석규씨는 “죽탄이 터지고 굴 자체를 들어가지 못하겠더라”며 “갱 안에서 물 떨어지고 탄가루 버슬버슬 떨어지는 것은 흔한데 그것만 봐도 가슴이 막 뛰고 불안해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석규씨는 휴직계를 내고 안정을 취한 뒤 채굴 업무가 아니라 기계 정비 분야로 업무를 바꿨다.

첫째 영구씨도 석규씨와 비슷한 죽탄 사고를 당한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영구씨는 “갯벌에 들어가면 펄이 발목까지만 차도 움직이기 힘들지 않느냐. 죽탄은 그거보다 힘이 더 세고 아예 몸 전체가 파묻힌다. 나 같은 경우도 가까스로 어깨 정도에서 죽탄에 멈췄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화석으로 발견될 뻔했다”고 했다. 이 사고 이후 영구씨는 혈압이 널뛰고 대상포진이 생겼다. 정신과진료도 4개월 받아야 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서너번은 사고 당시의 상황이 꿈에 나올 정도다. 사실 광부들에게 부상은 일상이다. 목숨을 잃은 동료도 여럿이다. 그러다 보니 술을 마시고 입갱하는 광부들도 있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석규씨는 “그러면 안 되지만 술이 아니면 일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술을 먹으면 감각이 둔해지니 그 술 기운에 일하는거다. 그렇지 않으면 일 하기 어려워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지난 2022년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에서 매몰 사고로 고립된 후 221시간만에 생환한 박정하 광부도 사고 이후 1년이 지난 언론 인터뷰에서 사고 트라우마를 호소하기도 했다. 환청과 공포, 악몽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10년 발생한 칠레 산호세 광산 붕괴 사고는 지하 갱도에 갇힌 광부 33명이 69일만에 전원 생환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광부들은 사고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은 이들이 “밖에 나가 일을 하기도 어려워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도했다.

매일매일 생과 사를 오가는 광부들에게 ‘오늘 하루’가 주는 안도감은 크다. 영문씨는 “저도 그렇고 부상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공포감이 있다”며 “무사히 내려갔다가 무사히 올라오는, 그 하루가 굉장히 소중하다”고 말했다. 오세현·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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