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관의 마약 파는 사회] ‘펜타닐 좀비’는 美 FDA가 승인한 알약 하나로 시작됐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2024. 5. 1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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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작은 알약이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다. 거기다 1990년대부터 자본주의 천국답게 소비자 전성시대가 열리며, 환자는 소비자로 의사와 병원을 평가하기 시작했고, 의약품 광고 또한 허용되었다. 이에 환자들은 의사에게 돈이 많이 드는 검사와 치료보다는 당장 아프지 않을 것과 함께 TV 등에서 광고하는 특정 약을 요구했다. 이때 혁신적인 신약이 등장했다. 새로운 진통제인 옥시콘틴이었다. 기존의 진통제는 4시간밖에 효과가 지속되지 않아 많은 환자들이 고통 속에서 잠을 설쳐야 했다. 하지만 신약은 특수 코팅을 통해 약의 효과가 12시간 지속되어 아파서 깰 일이 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했다. 마약성 진통제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약물 농도가 서서히 상승하여 중독이나 의존성이 매우 낮다고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옥시콘틴의 지연 흡수는 약물 남용의 가능성을 줄여준다”며 옥시콘틴을 승인했다. 1995년 12월이었다. 옥시콘틴을 출시한 제약회사 퍼듀 파마는 TV 광고는 물론이고, 의사에게 적극적인 로비를 했다. 의사뿐 아니라, 영업 사원에게도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퍼듀 파마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퍼듀 파마는 옥시콘틴으로 20년간 350억달러(약 48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옥시콘틴이 출시된 지 2년도 되지 않아 미국에 신종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옥시콘틴 중독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제약회사는 옥시콘틴이 서서히 몸에 흡수된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예를 들어 옥시콘틴 10㎎과 160㎎을 복용했을때 실제 몸속 최고 농도 차이는 12배에 달했지만, 그래프상으로는 2배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으로 교묘히 전문가들을 속였다. Y축의 농도 숫자를 ‘10, 20, 30′으로 하지 않고 ‘1, 10, 100′으로 해 착시를 일으킨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꼼꼼하게 보지 않고 넘어갔고, FDA는 옥시콘틴을 승인했다. 이에 기존의 마약성 진통제 용량이 5~10㎎였다면, 옥시콘틴은 무려 160㎎ 고용량까지 출시되었고 실제로 옥시콘틴을 복용한 이들은 급격한 혈중 농도 상승으로 마치 마약을 한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거기다 많은 이들이 더 빠른 효과를 위해 코팅을 벗기거나 씹어 먹고, 심지어 한 번에 여러 개를 복용했다. 과다 복용, 고용량, 빠른 흡수는 내성과 중독으로 이어졌다. 일부 의사들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옥시콘틴에 대한 수십 건의 소송이 진행되었다. 미국 법무부뿐 아니라 뉴욕타임스 등 언론에서 옥시콘틴 중독에 대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던 2001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 터졌다. 9·11테러였다. 9·11테러는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렸지만 한 회사를 살렸다. “이번 국가의 비극으로 전국 신문의 1면에서 옥시콘틴이 삭제될 수 있었다.” 9·11 테러 당시 퍼듀 파마의 영업 담당자가 남긴 메시지였다.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 대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는 동안 퍼듀 파마는 돈으로 전문가를 사들였다. 9·11 테러가 있기 8개월 전에 미국 FDA는 옥시콘틴과 관련하여 자문위원회를 열었는데, 거기에 모인 전문가 10명 중 8명은 퍼듀 파마와 다른 제약회사의 대변인이거나 강연료를 받고 있었다. 심지어 옥시콘틴을 허가해준 FDA의 검시관 두 명 또한 FDA를 떠난 후 퍼듀 파마에서 일하고 있었다. 퍼듀 파마를 위해 일한 가장 대표적인 이는 2001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이자, 9·11 테러 당시 뉴욕 시장으로 영웅 대접을 받았던 루돌프 줄리아니였다. 2001년 12월 31일 뉴욕시장에서 물러난 그는 다음 해에 퍼듀 파마에 입사했다.

그래픽=김성규

하지만 진실은 숨길 수 없었다. 2007년 5월 퍼듀 파마는 효과를 과장하고 중독과 남용 등의 부작용을 축소하는 등 마케팅과 판매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6억3400만달러(약 8701억원)의 벌금을 지불하기로 검찰과 법원에서 합의했다. 이에 의사들은 심각성을 느끼고 옥시콘틴을 비롯한 마약성 진통제의 처방을 서서히 줄이기 시작했다. 마약성 진통제에 의한 사망자 수는 2010년과 2011년을 정점으로 주춤하기 시작했다. 1995년 옥시콘틴이 출시된 지 15년 만이었다. 이것으로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문제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두의 착각이었다. ‘1차 옥시콘틴 파동’은 재앙의 시작에 불과했다.

옥시콘틴 40㎎을 의사에게 처방받으면 4달러(2001년 기준) 정도였다. 하지만 의사가 옥시콘틴 처방을 꺼려 하자, 가격이 폭등하여 암시장에서 무려 6~10배 비싼 25~40달러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에 마약상들은 구하기 어려워진 마약성 진통제 대신 가짜 알약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겉은 같았지만, 속은 달랐다.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 대신 진짜 마약인 헤로인이 들어 있었다. 금단 증상을 겪고 있던 이들은 가짜든 진짜든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헤로인 중독자 5명 중 4명이 그렇게 마약성 진통제로 시작한 이들이었다. 결과는 비참했다. 헤로인 관련 사망자 4명 중 3명이 마약성 진통제 한 알로 중독되어 목숨을 잃은 것이다. ‘2차 헤로인 파동’이었다.

그래픽=김성규

2010년대부터 마약상은 헤로인 대신 펜타닐을 원료로 사용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헤로인은 들판에서 양귀비를 키워 여러 단계를 거쳐 생산해야 했다. 하지만 펜타닐은 클릭 몇 번으로 중국에서 펜타닐 원료를 수입하여 멕시코 내 작은 ‘마약 공장’에서 합성해 만들 수 있었다.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훨씬 싸고, 구하기 쉬웠으며, 효과도 50배나 좋았다. 헤로인이 사골을 오래 끓여낸 육수라면, 펜타닐은 인공 조미료였다. 펜타닐은 마약 카르텔에는 혁신 그 자체였다. 극소량으로도 강력한 효과를 내는 펜타닐의 장점은 생산자에게는 복음과도 같지만, 소비자에게는 저주와도 같았다. 더 쉽게 중독되고, 조금만 과다 투여해도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2년 10만9680명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는데 이중 7만5217명이 펜타닐 등의 합성마약 중독 때문이었다.

그래픽=김성규

우리가 방송에서 본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의 ‘좀비 거리’는 1차 옥시콘틴 파동에 이은 2차 헤로인 파동을 거쳐, ‘3차 펜타닐 쓰나미’ 결과였다. 문제는 옥시콘틴 한 알로 시작된 이 펜타닐 쓰나미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언제 끝날지 모르며, 더 강한 약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실패를 배워야 한다

펜타닐로 인해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는 미국은 중국이 펜타닐과 펜타닐의 원료를 수출하고 있다며 중국을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갈등을 ‘21세기 아편 전쟁’ 또는 ‘신아편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만약 중국의 펜타닐 원료 수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면, 미국의 펜타닐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다. 인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이 중국 대신 펜타닐의 원료를 공급할 것이다.

거기다 새로운 마약이 지금도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나올 것이다. 더 강하고, 더 싼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검사에 걸리지 않는 신종 마약, 일명 ‘디자이너 드럭(Designer drug)’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생산과 유통 측면에서 마약을 만들어서 파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 어떤 상품보다 더 큰 이윤을 남기는 최고의 고부가가치 사업이기 때문이다.

중독이라는 특성상 수요가 있는 한, 공급은 막을 수 없다. 미국은 1차 옥시콘틴 파동 당시, 옥시콘틴 처방을 막는 것에만 신경 쓴 나머지 적극적인 중독 치료와 재활을 하지 않았다. 방치된 옥시콘틴 중독자는 헤로인을 거쳐 펜타닐로 넘어가 결국 마약 좀비가 되었다. 우리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양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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