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30년 전엔 5억, 작년엔 40억… 입장 다른 매수자들의 ‘재건축 싸움’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2024. 5. 1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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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건축은 많은 사람 의견이 일치했을 때만 가능하다. 건축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일이 아파트 재건축이다. 여러 이해 당사자가 전 재산을 걸고 투쟁하기 때문이다. 두 명이 점심 먹으러 가면 식당 결정하기 어렵지 않다. 셋이 가면 좀 복잡해진다. 여덟 명이 가면 모두 행복한 의견 일치는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크고 작은 아파트 재건축을 경험하면서 의견 일치가 어려운 여러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첫째, 주민들의 의견 차가 크다. 대단지는 각 동 위치가 다르고 차수별로 건축 시기가 다르다. 시대별로 아파트 면적을 계산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같은 평형인데도 토지 소유 비율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5억원에 구매해서 30년 동안 산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1년 전에 40억원에 구매한 사람이다. 이 둘은 개발 부담금에 대한 인식 차가 크다.

둘째, 아파트 주민과 상가 주인의 입장 차다. 재건축 조합은 대부분 주민 중심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상가 주인도 만만치 않게 많아 이들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셋째, 재건축 때 상가 분양으로 돈을 벌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저층부 상가를 분양하려면 33제곱미터 정도로 작게 쪼개서 7억~10억원 정도로 분양해야 한다. 그보다 액수가 커지면 분양이 안 된다. 문제는 상가를 3.3제곱미터당 1억원 정도에 구매하면 임대료가 몇 백만 원은 나와야 수지 타산이 맞는다는 점이다. 그런 높은 임차료를 감당할 업종은 부동산 중개소뿐이다. 신축 아파트 1가구만 매매를 성공시켜도 한 달 임차료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당은 100제곱미터 정도가 필요한데 임차료도 감당할 수 없고, 소유주가 다른 여러 상가를 묶어서 임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 보니 새로 지은 아파트 상가에는 부동산 중개소만 중간중간 있고 나머지는 이 빠진 빈 상가가 된다. 빈 상가 때문에 장사가 더 안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중심지에 있는 아파트 재건축은 백화점이 들어오면 좋은데, 문제는 백화점은 저렴하게 입주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조합으로서는 상업 시설 개발로 수익 내기가 어렵다. 개발 부담금이 올라간다. 진퇴양난이다.

넷째, 공사비가 늘었다. 건축가로서 내가 체감하는 공사비는 지난 5년간 거의 2배에 가깝게 올랐다. 과거 아파트는 3.3제곱미터당 500만원이면 잘 짓는 거로 생각했다. 지금은 아파트도 공사비를 3.3제곱미터당 900만원, 1000만원 요구한다. 일단 착공하면 건설사가 갑이 된다. 나중에 공사비를 더 요구하면 개발 부담금이 늘어난다.

다섯째, 정책과 시장의 악순환이다. 이처럼 재건축이 어려워지면 정부는 재건축 촉진을 위해 여러 규제 완화 정책을 낸다. 그러면 그 호재가 즉각 반영되어 집값이 올라간다. 오른 값에 사서 입주한 주민은 이미 비싸게 구매해서 개발 부담금 부담이 늘어난다.

여섯째, 조합을 둘러싼 정치 싸움도 문제다. 대부분 주민은 복합적 상황 이해와 건축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 일부 거짓 소식을 퍼뜨리면서까지 비대위를 구성하려는 사람들도 생긴다. 주민들은 거짓말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강남 어느 재건축에서는 착공 때까지 조합장이 15번 바뀌기도 했다.

일곱째, 공익과 사익의 줄다리기다. 조합의 이익 추구와 허가권자의 공익 추구 사이 팽팽한 줄다리기에 의견 차가 좁아지지 않는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한다. 대형 아파트 단지 개발이 안 된다면 소형으로 쪼개서 재건축하면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여의도의 두 동짜리 아파트 재건축은 종전 평형대가 단순하고 상가가 없어서 훨씬 수월하다. 앞으로 아파트 재건축은 같은 단지에서도 세분되어 소규모로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 대형 아파트 단지가 쪼개져서 개발되면 다양성은 더 늘어나고, 기존 도로망이 유지되어서 땅이 지닌 과거를 유지하는 장점도 있다. 반면 대규모 단지 개발로 도시적 스케일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기회가 없어지는 문제가 있다. 허가권자와 조합원들 각자가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제대로 된 재건축을 할지, 아니면 소규모로 다양한 주거 환경을 만들지 갈림길에 있다.

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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