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일 동안 800km 걸은 중년...원동력 어디서 얻었을까 [여책저책]

장주영 매경닷컴 기자(semiangel@mk.co.kr) 2024. 5. 13.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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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하는 사람들 / 사진 = 언스플래쉬
세상 무슨 일이든 얕봤다가 큰 코 다칩니다. 옛말에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각자 쓰임이 분명하기에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흔히 걷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들 간혹 보입니다. 달리기는 숨이 차올라 힘든 이미지가 강하지만 걷기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서인데요.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적극 공감할 ‘행군’이 좋은 예입니다. 군 입대를 해 가장 힘든 순간을 꼽으라면 ‘행군’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인데요. ‘고작 걷는 건데 뭐가 힘들지?’라 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30kg 가량의 완전군장을 한 채 일정한 속도로 5~6시간을 걷는 일은 지옥훈련이 따로 없습니다. 짧게는 10km, 보통 20km 이상 걷게 되는데요. 발에 물집이 잡히는 것은 예사고, 온 몸에서 ‘살려달라’는 신호가 빗발칩니다.

​그런데 이런 고통스러운(?) 걷기를 도전하고 즐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무려 6년간 6000km가 넘는 길을 걸은 여성부터 33일 동안 800km를 걸은 중년의 한 남성이 그 주인공입니다. 과연 이들을 걷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걷기를 하면서 무엇을 얻었을까요. 여책저책은 이들의 도보 여행기를 담은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와 ‘산티아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33일’을 만나봅니다.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
거칠부 | 더숲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 책 표지 / 사진 = 더숲
​거칠부. 작가 이름부터 특이하다. 물론 필명이다. 신라 번성기인 진흥왕 때 장군이자 재상을 지낸 거칠부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아마도 거침없이 걷는 여정을 도전하는 이미지가 장군의 그것과 맞닿아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서른아홉에 17년간 다녔던 직장을 그만뒀다. 이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산으로 떠났다. 그를 가장 매혹시킨 곳은 사진 속 네팔 무스탕이었다. 그 사진 한 장 때문에 히말라야를 꿈꾸기 시작했고, 2014년부터 매년 히말라야를 찾았다. 그는 그렇게 6년간 6000km가 넘는 길을 걸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히말라야 트레킹 도전에 나섰다. 그것도 오지만을 다니는 과감한 모험을 선택했다.

​안나푸르나 3패스를 거쳐 랑탕 간자 라-틸만 패스, 마칼루 몰룬 포카리, 마칼루 하이패스(3콜), 쿰부 2패스 1리, 무스탕 테리 라-사리붕 라, 안나푸르나 나문 라, 잘자라 패스-도르파탄, 하돌포 카그마라 라, 고사인 쿤드 18호수까지. 그 여정은 무려 194일, 거리는 1783km에 이르렀다.

​작가는 이번 책에서 소소하지만 때로는 아찔하고 특별했던 순간들, 산을 걸으며 남몰래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 트레킹에서 얻은 알아두면 좋을 정보들까지 살뜰히 담았다. ‘오지’에서 만난 사람과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 또한 솔직하고 담담하게 적었다.

“트레킹이 길어지고 오지로 향할수록 마음은 점점 단순해졌다.”“현실은 늘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특히 히말라야는 매번 그랬다.”“늘 그렇듯, 가보고 안 되면 되돌아오면 된다.”
히말라야 트레킹 / 사진 = 언스플래쉬
히말라야를 걸을 때마다 특별한 일로 가득했다. 저 멀리 보이는 호수와 산군, 그리고 흐드러지게 핀 랄리구라스 꽃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 여유를 즐기며 풀을 뜯는 야크와 순박했던 마을 사람들…. 여유를 즐기며 걷다가도 히말라야는 쉴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편하고 다듬어진 길이 아닌 오지의 험하고 가파른 산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발이 눈에 푹푹 빠지고, 안개로 사방이 희뿌연 산길을 미끄러지고 자빠지며 계속 올라갔다.

​이 책에는 히말라야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부록 두 가지를 마련했다. ‘직장인도 갈 수 있는 네팔 히말라야 오지 트레킹 코스’의 경우, 난도별로 차근차근 히말라야 오지 트레킹을 도전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 ‘거칠부의 네팔 히말라야 오지 트레킹 전체 일정’에서는 작가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픈 독자를 위해 책에 실린 트레킹 코스의 전체 일정, 소요시간, 거리, 걸음 수가 자세히 적혀 있다.

​“길은 열려 있어야 하고, 그게 길”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걷고픈 사람에게 이 책은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는 좋은 가이드북이자 여행 에세이가 될 것이다.​

산티아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33일
배정철 | 북랩
산티아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33일 책 표지 / 사진 = 북랩
​‘책의 이끌림’ ‘뇌가 섹시한 중년’ 등을 쓴 배정철 작가가 33일 동안 매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남긴 기록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32년간 교육자로, 작가로, 인문학 강연가로 살아 온 그에게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여행은 한 걸음 또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작가는 “그냥 걸었다. 매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걷는 내내 행복했다”며 순례길의 의미를 되새겼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버킷리스트로 꼽는 이는 의외로 많다. 그만큼 이 길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얘기다. 때문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마치 길 위에 서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전하고자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펼쳐진 낯설고 광활한 풍경, 따뜻하면서도 가슴 시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특히 프랑스 생장에사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이어지는 800㎞의 프랑스길 위의 마을, 성당, 다리, 성곽, 인물 등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는 책 읽는 재미를 더하게 한다.​

눈을 마주치며 서로를 격려하고, 같은 알베르게에서 잠을 자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길을 걷는 동무가 있어서 하루하루 행복했습니다. 길을 걸으며 삶의 무게와 고민을 그 길 위에 내려놓으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내 삶의 고통이 무엇인지 찾고 치유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걸었습니다.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이 기다려졌고, 매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걷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매일 길을 걷고 매일 글을 쓰는 내 생애의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33일이었습니다.​
​걷는 내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내다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게 했다는 그의 여정을 좇다 보면 저자가 말한 것처럼 ‘그냥 행복했다’는 마음이 절로 들지 않을까.
※ ‘여책저책’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여행 책’을 한데 모아 소개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출판사도 좋고, 개별 여행자의 책도 환영합니다.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 에세이나 포토북까지 어느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알리고 싶다면 ‘여책저책’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여행플러스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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