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구제 後지원’ 최대 4조 필요… 법리 모호·형평성 논란 일어

이강진 2024. 5. 1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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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전세사기특별법’에 난감
巨野 주도로 28일 국회통과 유력
재원은 ‘주택도시기금’에서 투입
무주택 서민 기금 사용 놓고 ‘논쟁’
박상우 “손실 다른 국민 부담될 것”
회수 가능 자금 액수도 불분명해
정부선 공공임대주택 제공 선호
피해자들 “정부 정책이 원인” 반발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이 담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의 21대 국회 통과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당장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필요 재원 규모 및 법안의 모호성 등을 고려할 때 현행 법 테두리 내 해결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대구대책위원회 관계자 등 대구지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13일 대구 중구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열린 대구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13일 국회 등에 따르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28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 선구제 후회수란 공공기관이 피해자의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을 우선 매입해 보증금 일부를 돌려준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주택을 매각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필요한 재원은 주로 주택도시기금에서 충당된다. 국토교통부는 최대 3조∼4조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매 등을 통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을 뺀 비용이 최종 재정 투입액이 된다.

정부는 이 방식에 대규모 국가 재정이 투입되기에 추가적인 사회적 논의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주택도시기금이 무주택 서민이 내집마련을 위해 개설한 청약통장 돈으로 마련된 것인 만큼 이를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지원하는 것도 기금 본래 취지와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기금은 쉽게 말해 청약가입자 등에게 돌려줘야 할 부채성 재원이다. 따라서 이를 채권 매입 재원으로 활용하는 게 적절한지부터가 해결되어야 할 논쟁거리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주택도시기금 여유 자금은 2021년 49조원에서 지난 3월 13조9000억원까지 감소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금은 언젠가는 국민에게 돌려드려야 하는 교체성 자금”이라며 “무주택 서민이 잠시 맡긴 돈으로 피해자에게 직접 지원하면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이 다른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대신 “전세사기 피해자가 살던 집에서 내몰리지 않도록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주택 사업자가 경매에 적극 참여해 피해주택을 낙찰받아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함으로써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장기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이와 같은 방법은 현행 법으로도 추가적인 법 개정 없이도 (피해자 구제가)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민간 쪽에서도 정부 사이드와 비슷한 견해가 있다.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의 김인만 소장은 “기금으로 선 지원을 해주더라도 구상권으로 회수할 수 있는 돈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제2, 제3의 사기가 계속 발생할 수 있어 기금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일각에선 사인 간 계약에서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구제하는 것이 적절한지와 보이스피싱 등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언급된다. 서진형 광운대 교수(부동산법무학)는 “(전세사기는) 다른 사기 사건들과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이뿐만 아니라 채권 가치 평가와 최저 매입 가격 기준 등 법리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많아 법 통과 후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공포 후 1개월 뒤부터 법을 바로 시행하기엔 예산과 재원, 조직 등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 피해자 외면하는 국민의힘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피해자들은 정부 정책에 전세사기의 구조적 원인이 있다며 특별법이 꼭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 회견에서 “(전세사기는) 미약한 임차인의 권리와 무자본 갭투기가 가능한 제도적 환경을 이용한 사기”라며 “오랫동안 축적된 부동산 정책의 결과”라고 정부 책임론을 주장했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 역시 “전세사기 피해는 구조적으로 예견된 재난”이라며 “개정안 통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실제 통과된다고 해서 논란이 끝나는 건 아니다. 대통령의 거부권 때문이다. 박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거부권 건의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조 단위 손실이 있는데 제가 뭐 거부권 건의 여부를 말할 수 없지만 (특별법 개정안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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