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미투’라고? 모욕 글에 팩트로 대항하는 방법
얼마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과 허위 미투’라며 피해자와 연대자를 모욕하는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2019년 ‘대학 내 미투’로 학생들 대상의 성희롱 등을 한 사실이 드러난 성신여대 교수가 결국 해임된 건과 관련한 글이었다. 글 쓴 이들이 내세운 근거는 2022년 5월의 1심 선고 결과를 다룬 단 한 건의 기사였는데, 시기상 법원의 최종판결이 내려졌을 만큼 시간이 흘렀고 실제 그들의 주장대로 ‘허위 미투’였다면 후속 기사가 안 나왔을 리 없다고 생각해 바로 판결서를 찾아봤다.
‘허위 미투’라던 가해 교수, ‘해임’ 확정 판결
판결서를 확인해보니 대학의 해임 처분이 부적절했다는 1심 판단이 2심에서 뒤집혀 확정됐다. 피해자들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고, 원고인 교수의 행위는 ‘성희롱’ 등 징계사유에 해당하며, 그를 토대로 내린 해임 처분은 적절하다는 것이다. 판결서 검색과 분석은 개별 사건에 대한 확인부터 사법시스템 전반에 대한 감시까지 그 활용도가 매우 높다. 따라서 시민 대상으로 재판 모니터링 교육(제1503호 ‘단 한 명이라도 곁을 지키고 있다는 확신’)을 할 때도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직접 판결서를 검색, 사본제공신청, 열람신청 등을 하는 방법을 알리고 있다. ‘판결문 톺아보기’라는 프로그램으로 집중 분석하는 교육도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비판은 촘촘해지며, 아는 만큼 바꿀 수 있다.
판결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법원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대한민국법원’ 사이트의 ‘대국민서비스’에서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진행 중인 사건’ 및 ‘2013년 이전에 확정된 사건’의 경우 ‘판결서사본제공신청’을 활용하면 된다. 사건번호를 알아야 하고, 일정 시간 기다려야 하며, ‘진행 중인 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불허하면 사본을 받아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사건을 따라가는 상황이라면 확정 전이라도 내용 파악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2013년 이후 확정된 사건(형사, 민사, 행정 등)’이나 ‘2023년 1월1일 이후 선고된 사건(민사, 행정 등)’의 경우 ‘판결서인터넷열람’을 활용하면 된다. 사건번호를 몰라도 다양한 ‘임의어’를 넣어 검색할 수 있다. 특히 판사, 검사, 피고인 변호인 등의 이름도 검색어로 활용할 수 있다.
판결서를 확보했다면 판결서의 구조를 파악해 읽어내야 한다. 형사판결서를 예로 든다면 결과에 해당하는 ‘주문(형종, 형량, 보안처분 등)’과 주문에 도달하는 과정인 ‘이유(범죄사실, 증거의 요지, 법령의 적용, 소송관계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 양형의 이유)’로 구성되는데, 시민들이 집중해서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주문의 경우 ‘형종’에서 ‘금고형’과 ‘징역형’의 차이, 형량에서는 형종별 집행유예 기준(징역 3년, 벌금 500만원 등), ‘보안처분’의 종류(전자장치부착, 보호관찰, 보호처분, 신상정보등록, 신상정보공개·고지, 취업제한, 수강·이수명령 등)와 의미 등이다.
‘사망피해자에게 책임 돌린 판결’ 분석 통해 감시
‘이유’ 부분 중 ‘범죄사실’은 대개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을 적거나 별지로 첨부하는데, 일반 시민이 읽기에는 고통스러울 수 있다. 강간, 살인, 상해 등 강력범죄의 범행 수법이나 경위 등이 상세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건과 거리 유지가 어려운 시민은 굳이 꼼꼼하게 읽을 필요는 없지만, 간혹 재판부 직권으로 공소장 변경 없이 범죄사실을 재구성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분석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확정된,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191회 찔러 살해한 ‘류찬하 살인사건’ 1심 재판부(춘천지법 영월지원 제1형사부: 김신유, 여동근, 강명중)는 공소장 기재 범죄사실을 재판부 직권으로 변경하면서 사망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검찰에 따르면) 해당 사건의 범행 동기는 살인범죄 양형기준상 제3유형(비난동기살인)에 속할 소지가 있지만, 재판부가 판단하기에는 범행 동기가 위 양형기준상 제2유형(보통동기살인)의 동기(피해자로부터 인간적인 멸시를 받았다고 생각해 앙심을 품고 살인 또는 이에 준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고 한 것이다. 재판 중 양형 조사과정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들었다고 말한 모욕적인 발언을 토대로 한 판단이다.
시민들이 특히 집중해서 분석해야 할 부분 중 하나가 ‘법령의 적용’이다. ‘진주 편의점 여성혐오 범죄’ 1심 판결문에서 재판부가 ‘법률상 감경’으로 ‘심신미약’을 든 것이나, 법정형이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의 유기’인 ‘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 제1항(성착취물 제작 등)’에 해당하는 사건들에 여전히 ‘재판상감경(작량감경, 정상참작감경)’을 적용하는 사례 등을 발굴하고 지적해야 한다. 특히 ‘재판상감경’은 판사 재량으로 법정형 하한의 절반을 깎을 수 있는 것인데, 이를 적용하면서도 그 이유를 판결서에 구체적으로 적지 않고 대부분 ‘양형이유’ 중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갈음한다. 언론에 등장하는, 시민들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각종 사유가 이와 관련이 있고, 이를 통해 선처받은 다수의 여성 대상 폭력 및 살인사건 가해자들이 일찍 사회에 복귀한다.
‘양형이유’의 경우 양형기준에 의거한 권고형과 그를 토대로 최종적으로 내리는 선고형이 기술되며, 형량을 결정할 때 적용한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과 불리한 정상이 나온다. 아동·청소년 대상의 각종 성폭력 사건에서 권고형 하한보다 낮은 형으로 선처받은 사례들을 볼 수도 있고, 아주 드물게 반대 사례도 확인할 수 있다. 그중 성범죄 등 강력범죄 가해자를 조력한다는 법인들이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 중인 각종 “꼼수 감형자료(부당감형자료)” 등(제1422호 ‘성범죄자가 결혼하면 형량 깎아준다고?’)이 실제 적용됐는지 분석해야 한다.
피해자 입장은 반영되지 않은 연구보고서
2024년 법원은 ‘판결서 간이화·적정화’ 작업에 들어갔다. 2024년 초 사법정책연구원이 ‘법조일원화 시대에 걸맞은 제1심 판결서 작성 방식의 개선 방안’ 연구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쉽고 간결한 판결서 작성을 시도해 법관의 업무 과중 해소와 신속 재판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해당 연구보고서를 보면 ‘피고인’과 ‘검사’를 중심으로 한 형사판결서 작성 방향에 대해서만 언급했을 뿐 실질적 당사자인 ‘피해자’나 ‘시민’의 입장은 반영하지 않았다. 형사재판에서 재판부에 따라 구술심리의 충실도가 달라지고, 피해자의 절차 참여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재판기록 등에 대한 피해자의 접근성도 떨어지는 현실은 무시한 것이다. 형사재판의 절차적 문제와 함께 판결서 분석을 이어나가는 시민사회의 사법 감시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지점이다.
마녀 D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마녀 D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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