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尹 저격수’ ‘盧 탄핵 선봉’…‘첫 女국회의장’ 노리는 추미애는 누구?

변문우 기자 2024. 5. 13. 20: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DJ 손잡고 정치 입문, ‘당대표’ ‘법무장관’ 경력 입증…‘明心’ 업고 유리 입지
“중립 없다고 한 만큼 든든한 野 지원군” vs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돈키호테”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더불어민주당에서 22대 상반기 국회의장직을 걸고 추미애·우원식 후보 간 '2파전' 경쟁구도가 확정됐다. 친명(親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조정식 의원 등이 '단일화' 선언으로 추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면서다. 정치권에선 추미애 후보가 '명심(明心·이재명 민주당 대표 의중)'을 얻으며 의장직에 한 발짝 다가섰다고 평하는 분위기다. 반면 당 일각에선 추 후보의 과거 '노무현 탄핵 찬성'이나 '문재인 저격' 등 논란들을 꺼내며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련해 시사저널은 추 후보의 30년 정치행보와 결정적 순간들을 정리해봤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장 후보가 지난 2021년 경기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사람이 높은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당론'이라고 따라야하나? '盧 탄핵' '환노위 사태' 秋의 돌발행동

1982년 사법시험 합격 후 판사로 이름을 알린 추 후보는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제안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이듬해인 1996년 서울 광진을에 출마해 43.77%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판사 출신의 첫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1997년 대선에선 본인의 고향 대구에서 '잔다르크 유세단'을 만들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을 지원사격하기도 했다. 이때 활약으로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추 후보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2년 전이었던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시절부터 노무현 대선 캠프 선거대책위원회에 참여하며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을 때와 달라진 태도를 보인 것이다. 당시 여파로 추 후보는 같은 해 열린 총선에서도 낙선했다. 이후 그는 2년 동안 미국 유학을 다녀오며 정계 공백기도 가졌다. 관련해 그는 2016년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서도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추 후보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역임했던 2009년에도 '환노위 회의장 잠그기' 사태로 당론에 반대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그는 민주당에서 반대했던 노조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뒷받침했다. 그 과정에서 자당 의견은 배제한 채 상대 당이었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과 중재안을 만든 것이다. 당시 압권은 회의장 문까지 잠그고 한나라당 의원들만 참여한 상태에서 개정안 표결을 강행한 장면이었다. 이로 인해 추 후보는 '당론을 어겼다'는 사유로 당원 자격 정지 2개월 징계도 받았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장 후보가 지난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찬성표를 던진 직후 신문을 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親文'→'親明' 환골탈태한 秋…'정권교체' 책임은 文에 돌리기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추 후보의 태도 변화도 주목할 포인트다. 당초 추 후보는 2015년 문 전 대통령이 대표로서 이끌었던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의 지도부에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들어가 친문(親문재인) 핵심으로서 문 전 대통령 곁을 지켰다. 이후 그는 2016년 전당대회에서 54.03%의 득표율로 민주당 대표에 선출됐다. 민주당계 정당의 60년에 달하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구 출신 여성 당대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는 당대표직 임기인 2년 동안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민주당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당시 최서원(최순실씨 개명 이름)씨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 사태에서 정치력을 발휘하며 '촛불정국'을 이끈 일등공신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문 전 대통령의 당선 후에도 부자 증세 등 각종 정책들을 당 차원에서 지원 사격했다. 이후 민주당계 정당에서 '임기를 꽉 채운' 첫 당대표로서 역사에 한 획을 긋고 2018년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추 후보는 '조국 사태' 직후인 2020년 1월엔 문재인 정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윤석열 대통령(당시 검찰총장)과의 '대립 국면'으로도 관심을 집중시켰다. 당시 그는 검찰·사법개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계속 대립각을 세웠다. 이후 검찰인사를 통해 내부의 '윤석열 사단'을 솎아내는 것은 물론, 윤 대통령의 정직 2개월 징계도 주도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징계를 이끌어낸 것이었다. 이후 그는 같은 해 12월 '법무부 장관으로서 소임을 다했다'며 문 전 대통령에게 장관직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이처럼 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추 후보는 정권 교체 후부터 점차 비명(非이재명)에서 친명(親이재명)계로 색채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2022년 대선에서 '앙숙'이었던 윤 대통령이 당선되자 SNS를 통해 윤 대통령을 적극 비판하며 '윤석열 저격수'로 이름값을 높였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정권교체 책임론'에 선을 그으며 문 전 대통령을 새로운 타깃으로 집중 공격했다. 그리고 이재명 대표의 단식 정국 등에서도 힘을 실어주며 새로운 친명계로 거듭났다.

노선을 바꾼 추 후보는 '비명횡사·친명횡재'로 통하는 2024년 총선 정국에서 경기 하남갑 전략공천을 받는데 성공했다. 이후 이용 국민의힘 후보를 접전 끝에 꺾고 민주당 내 최다선인 6선의 고지에 올랐다. 추 후보는 총선에서 당선되는 순간부터 본인의 30년 정치 경력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가장 강력한 국회의장 후보군에 거론돼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경기 하남갑 당선자(오른쪽)와 조정식 의원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국회의장 후보 단일화를 논의하기 위해 회동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秋 평가' 민주 내부도 엇갈려…"이재명도 컨트롤 리스크"

정치권에선 추 후보의 국회의장 등극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일단 당내 강성 친명계는 물론 계파색이 옅은 인사들도 '중립은 없을 것'이라는 추 후보의 기치에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한 22대 총선 당선자는 이날 시사저널과 만나 "추 후보는 센 분으로 인식되는 만큼, 국회의장에 등극한다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돌파해서라도 하시려는 의지가 클 것 같다"며 "민주당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여기에 조정식 의원도 지난 12일 추 후보와의 단일화 선언을 하며 힘을 실어줬다. 관련해 추 후보도 이날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 대표가 '이번만큼 국민 관심이 높은 의장 선거가 있었느냐. 잘 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며 '명심'이 본인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는 국민을 버리는 일은 절대 할 수가 없다. 저 추미애는 협치가 아니라 민치(民治)"라며 강경 노선을 재차 드러냈다.

반면 당내 일각에선 추 후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껏 추 후보의 정치행보를 보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확실성' 리스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추 후보는 '노무현 탄핵 정국'과 '환노위 사태'는 물론, '문재인 저격' 등 돌연 태도 변화를 하며 예측할 수 없는 '자기정치'를 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또 각종 정국에서 이견이나 의견 충돌이 발생할 경우 국회의장으로서 조율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특히 친명계 일각에선 이재명 대표의 입장에서도 추 후보의 리스크가 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의원은 시사저널에 "이 후보 입장에서 봐도 추 후보는 두 가지 리스크 요인이 있다. 첫 번째는 '노무현 탄핵 정국' 등 결정적 순간에 '자기정치'를 한다는 점, 두 번째는 추 후보는 통제가 안 되는 돈키호테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며 "거대야당을 이끄는 이 대표로서 추 후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통화에서 "추 후보에 대한 공통적 평가는 매우 저돌적이고 융통성이 없으며 독특하다는 점이다. 이런 개인적 특성이 있다 보니 사람들로 하여금 주저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며 "이 대표 입장에서도 추 후보가 불안할 것이다. 그렇지만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이라는 상징성도 있고, 본인을 대신해 선봉에서 피를 묻혀줄 사람으로서도 적격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추 후보도 개인적 욕심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돌변하고 급발진이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시사저널 양선영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제안으로 정치 입문.

*1996년- 판사 출신의 첫 여성 국회의원(서울 광진을)으로 국회 입성.

*1997년- 대구에서 '잔다르크 유세단' 구성해 대선 유세. 이때 활약으로 '추다르크 별명' 얻음.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가 역풍 직면. 이때 여파로 총선 낙선 후 2년 동*안 미국 유학을 다녀오며 정계 공백기 가짐.

*2009년- 국회 환노위원장 시절 노조법 처리 과정에서 당론 거부. 당시 회의장 안에서 문을 걸어 잠구는 등 논란도 발생.

*2015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당 지도부에 입성. 새정치민주연합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당선. 민주당계 정당의 60년 역사상 첫 대구 출신 여성 당대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초유 사태에서 정치력 발휘해 제1야당 위상 굳건히 만들었음.

*2017년-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 승리로 이끔. 문재인 전 대통령 당선 후에도 부자증세 등 각종 정책 지원사격.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 대승 이끔. 이후 민주당계 정당에서 처음으로 임기 완전히 채우고 당대표직 물러남.

*2020년- 문재인 정부 법무부 장관에 임명돼 검찰·사법개혁 주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립각 세우며 화제. 당시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징계 이끌어낸 후 장관직 사퇴.

*2021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으나 3위로 떨어짐. 이듬해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정치활동 잠정 멈추고 칩거 돌입.

*2023년- 총선 직전 스탠스 바꿔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정권교체 책임론' 저격 시작함. 자연스레 신(新) 친명계로 떠오르며 정치 활동 재개.

*2024년- 22대 총선에서 경기 하남갑 지역구로 출마해 민주당내 최다선인 6선 고지에 오름. 이후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경선에 출마.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