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스승께 예를 갖추고 선 곱향나무
스승과 제자의 예를 증거하며 서 있는 나무가 있다.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 딸린 암자, 천자암 경내에 서 있는 한 쌍의 근사한 이 나무는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국가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국가자연유산 고유 명칭으로 괄호 속에 표기한 식물 종류인 곱향나무는 잎의 생김새에서 향나무와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눈에 띌 만큼의 차이는 아니어서 식물 분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정확히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
70㎝의 간격을 두고 닮은꼴로 자라난 한 쌍의 곱향나무는 얼핏 한 그루로 보인다. 나무 높이 12m의 크기도 생김새도 꼭 닮아 쌍둥이 향나무라는 뜻에서 오랫동안 쌍향수라고 불러왔다.
가장 눈에 띄게 들어오는 것은 이 곱향나무의 독특한 줄기 모습이다. 두 마리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똬리를 풀며 용틀임하는 듯 배배 꼬인 모습은 경이롭다. 한때 이 나무줄기에 손을 대고 살짝 흔들면 극락에 든다는 전설이 전해졌지만, 나무가 쇠약해져 이제는 나무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다.
천자암 쌍향수에는 생김새에 맞춤한 전설이 전해온다. 800년 전쯤, 중국 금(金)나라 태자였던 담당 스님이 금나라를 찾았던 지눌 스님과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고 고려에 들어왔을 때의 이야기다. 두 스님은 용맹정진할 기도처를 찾던 중 이 자리를 암자 터로 정하고,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나란히 꽂았다. 그 두 개의 지팡이가 곱향나무로 크게 자라면서 한 그루는 기품을 지키며 우뚝 섰고, 다른 한 그루는 가벼이 고개를 숙여 스승께 예를 갖추는 듯한 모습으로 자랐다. 스승 지눌께 제자 담당이 예를 갖추고 서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바람 따라 햇살 따라 나뭇가지를 기울였을 뿐인데, 나무의 모습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예를 먼저 떠올린 옛사람들의 생각이 고마울 따름이다. 세상의 모든 자연물에서 삶의 지혜를 얻으려 애쓰며 살아온 배움의 태도를 스승의날 즈음에 되새겨본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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